전시개요
동물은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친숙한 교감의 대상이다. 그렇게 인간 사회의 지탱과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동물은, 예술 장르 전반에서 주요 주제로 다루어진 지 오래다. 수 만 년 전 어느 동굴 벽에 그려진 동물그림이 우연히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동물은 인간의 예술작품에서 당대의 사회와 관념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간의 동반자로서 존재한다. 게다가 인간은 동물을 또 다른 생명체로서 존중한다. 게다가 동물의 생태에 많은 빚을 지게 되면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인도주의적 보호의 의지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의 삶의 방식이 사냥에서 농업으로 전환되고 자연 정복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강해질수록, 동물은 인간 세상에서 폭력과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해가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초 우리 사회가 목격한 끔찍한 사건들 몇몇을 되새겨보자. 살처분 된 수백만 마리의 동물, 더 높은 생산력을 강제 당하며 임신용 우리에 갇혀 지내는 암퇘지들, 인간의 기호에 맞게 유전자 개량되는 젖소 등의 현실에서 우리는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특별전 『Animalier 전』은 다양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무수히 회자되어 온 동물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성을 시각예술의 틀 안에서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다. 전시의 제목 "애니멀리어(Animalier)"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동물을 주요 제재로 다루었던 화가나 조각가에게 붙여졌던 호칭이다. (대표 작가로 앙투안느 루이 바리(Antoine Louis Barye)가 있다.) 당시 그들은 초상화• 종교화• 역사화에 비해 하찮게 취급 받고 있던 동물화(Animal Painting)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데 기여했다. "애니멀리어"는 이른바 동물-작가를 지칭하는 미술사 용어일 뿐만 아니라, "Animal"(동물) 단어와 인간 행위자를 뜻하는 접미사 "-ier"를 결합하여 동물-인간 사이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려는 본 전시의 주제어이기도 한다.
전시는 [인간의 동반자] [동물을 통한 자아성찰] [도구로서의 동물] [반인반수, 경계적 존재] 등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하였다. 전시에 참여한 현대 애니멀리어는 동물에게 새로운 상징성과 관념을 부여하고, 현대 문명이 초래한 혼돈과 위기 속에서 동물과 맺어 온 인연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소개한다.
전시구성
임민혁의 작품 < 인간과 개> 와 < 말과 가족> 에 등장하는 동물은 고독한 내면을 갖는, 인간과 닮은 또 하나의 존재이면서도, 인간이 고립과 고독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 그의 주제는 인간, 가족, 동물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유난히 가늘고 긴 팔과 손가락, 크고동그란 눈, 작가는 목탄의 거친 선을 써서 소통이 단절된 현대인의 모습으 과장된 방식으로 묘사함으로써, ' 소통' 과 ' 관계' 의 개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하게 표현한다.
김남표의 < Instant Landscape> 속 동물은 문명에 경도된 인류사에서 사물과 자연과의 대립보다는 유기적인 공존을 지향한다. 풍경 속의 각기 다른 형상들은 서로 긴장하고 대립하기보다는, 서로의 의미를 확장하여 관객에게 연상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인간문명을 상징하는 구두와 기와는 폭포수와 연결되고, 얼룩말은 언덕이 되며, 캔버스에 붙어있는 털은 촉감성을 유발한다. 그의 회화적 소재와 표현기법은 동서양의 경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종선은 < Men& Animal 시리즈> 중 선별된 사진과 슬라이드 영상을 통해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포착한다. 그는 인도, 파키스탄, 티벳 등을 오가며 사진을 찍는다. 피사체인 인간과 동물의 얼굴은 서로 비슷하다. 즉 카메라를 보는 눈빛과 순간의 감정 표정은 동물과 인간이 내면을 교환할 수 있는 가족임을 말하는 듯하다. 동물의 시선의 높이를 공유하는 관객은 인간 삶에 동행하는 반려자로서의 동물을 발견하게 된다.
박종호에게서 작품 속 주체인 돼지는 "스스로의 상징체이자 콤플렉스의 총체이며,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에 갇혀 있는 대중"을 의미한다. 그는 인간의 사육에 길들여지는 돼지의 일상에서 자신의 반복적이고 경쟁적인 삶의 모습을 우의적으로 비추어본다. < 우리가 병들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부정적 현실에 대해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애적인 태도를 취한다.
곽수연에게 ' 개' 는 곧 작가 자신이며, 인간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전통 만화 용품에 ' 충직성' 과 ' 비천함' 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 개의 모습은 현대인이 일상과 존재를 의인화한다. 그녀는 현대 소비문화의 전형적인 상징처럼 되어버린 애완견에게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 위안과 평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일상을 발랄한 이미지로 해석한다.
금중기는 인간의 머리를 관통한 사슴이나, 섬에 갇힌 어린 사자 그리고 인간의 머리 위를 유유히 기어다니는 거북이의 형성을 통해 자연, 생태, 환경의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현실에 대한 동물들의 분노, 그렇게 동물은 자연에 무관심한 문명인에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F.R.P 표면에 도색되거나 브론즈 위에 니켈도금으로 마감 처리 된 조각상은 인공적이고 장식적으로 느꺼져 원시성의 회복을 갈망하는 동물들의 고통스런 외침을 전달하는 듯 하다.
송상희의 < 변신이야기> 제16권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대서사시 < 변신이야기> 15권의 다음 이야기를 연필 드로잉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인간 형상의 생물체 아메바 ' 코오라' 와 공룡, ' 플라시오사울스' , 고래 ' 리바이어든' 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이야기의 이면에서 권력과 자본으로 석유를 착취하려는 인간사회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찾는다. 인간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지구의 질서와 순리를 무시한 대가로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사랑을 잃은 고래의 슬픈 포효는 깊은 반성을 이끈다.
양승수는 투견 경기에 나가기 위해 훈려하는 개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았다. 투견은 스스로의 투쟁 본능때문에 싸움을 원하는 것이라는 일반적 이해가 잔인한 훈련 화면을 통해 생생히 증언된다. 개는 인간의 조정에 따라 러닝머신 위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달리기를 무한 반복한다. 결국 의식을 잃고 침을 흘리며 쓰러져가는 개는 인간의 욕망에 갈팡거린 ' 피노키오' 이자 자립의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초라한 자화상 같다.
정정엽은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희귀 동물 드로잉 11점을 소개한다. 세필의 붉은 잉크로 그려진 동물은 자연적 소멸이 아닌 인간의 이기와 일방적 계발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지구 곳곳에서 직접 목격했던 소수의 존재를 그려 흔적을 남긴다. 죽은 세포가 다시 재생되는 것처럼, 소멸되어가는 동물들은 정정엽의 그리기 과정에서 다시 살아 숨쉰다.
성유진의 동물은 인간의 몸에 고양이의 얼굴을 가진 반인반묘의 모습니다. 인간화된 고양이는 유난히 큰 눈망울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의 초점은 방향을 잃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작가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동물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여 경계적 외연을 지닌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부정적 의미를 내표하는 까마귀나 고양이 인형은 또 다른 ' 나' 의 상징으로서 두 개로 분열된 내면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