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FFITI 더 그래피티展
*전시제목: Street Pop “The GRAFFIT”(더 그래피티)展
*전시장소: 갤러리 토스트
*전시기간: 2012년 2월 4일 (토) ~2월 26일 (일)
*오프닝 리셉션 : 2012년2월 4일(토) 오후 5:00
*오프닝 퍼포먼스: 비보이 공연(버닝 마인즈), 라이브 페인팅(반달+진스BH)
관객 참여 행사 : 케비넷에 테깅(Tagging)하기
*참여작가: 데칼, 레고, 반달, 산타, 스피브, 알타임 죠, 에라원, 제이 플로우, 진스BH,
찰스장, 코마, 홍삼, 후디니 (총 13명)
*협 찬: 나이키스포츠웨어, 신세계L& B, 몬타나, 크링크, 펠릭스 파버
* 취재문의: 장미연 02-535-6460, 010-2022-8766 / 이메일gallerytoast@naver.com
< 전시소개>
갤러리토스트는 작년 10월 말 “해골”전을 개관전으로 개최했으며, 12월 크리스마스 옥션자선파티에 이어 올해 첫 전시로 “Street Pop – The GRAFFITI (스트리트 팝 – 더 그래피티)” 展을 기획하였습니다.
‘Street Pop – The GRAFFITI’展은 2012년 2월 4일(토)부터 2월 26일(일)까지 약 3주간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는 Street Art 중 국내 그래피티 작가 13명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전시로서 ‘거리의 팝아트’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그 동안 힙합음악, 앨범자켓, 길거리 벽화 작업 등으로 친숙하기는 했지만 정작 알려지지는 않았던 그래피티 작가들과 캔버스 안으로 들어 온 그들의 회화작품 40여 점이 소개됩니다.
전시 오프닝에는 ‘버닝마인즈’의 비보이 공연과 그래피티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가 준비되어있습니다. 또한 관객 누구나 참여 가능한 “캐비닛에 태깅하기”는 그래피티용 마커로 관객들이 직접 그려보는 관객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모두가 잠든 사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가방 안엔 공업용 락카 스프레이 캔을 가득!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후드티를 입고 도시의 어딘가로 부지런히 가고 있다.
그들은 그림 그리기 좋은 벽을 찾아 나선다.
새 하얀 벽을 보고 반가운 여자친구를 만나듯 기뻐한다.
가방 안의 스프레이를 하나씩 꺼내어 벽에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들에겐 도시가 캔버스이고 놀이터이다” - 팝아티스트 찰스장
< 전시서문>
- 새로운 도시전설 또는 13인의 그래피티아티스트 -
■ 김노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ULL) 외벽을 무단으로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들이 화제였다. 그 사건에 참여한 그래피티 작가들 상당수가 이번 기획전에도 참가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그 일은 그렇게 과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의 의미는 그래피티 아트가 당대 시의성이 있는 의견이나 비평을 표현하는 괜찮은 예술적 형식과 방법으로 재고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그 사건은 어쨌든 이번 기획전과 연결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기획들은 오늘날 그래피티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1. 그래피티아트는 거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마침내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래피티는 이미 1980년대 영미권의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표현양식이며 문화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 시기 뉴욕 지하철은 물론 많은 대도시에 그래피티가 정착했다. 더욱이 1980년대 중반 화이트큐브의 전시에도 본격적으로 그래피티 형식의 작품들이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래피티는 일반적으로 1970년대 뉴욕 빈민가의 흑인문화로 등장한 힙합(Hip Hop)의 한 요소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해된다. 랩, 디제잉, 비보잉과 함께 힙합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피티는 미국사회의 대표적인 하위문화에서 독자적인 미학을 지닌 예술형식으로 고양되었다. 실제 계급성과는 상관 없이 그래피티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은 사회의 비주류나 문화적 계급성이 낮다는 사실을 강조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래피티는 화이트큐브가 아닌 길거리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사라진다.
비록 본격적인 예술작품으로 미술관 전시의 주제로서 주류문화와 융합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대 등장한 신표현주의와 연결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일상과 예술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새로운 반미학적 태도의 한 모델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래피티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스타일에서 드러난다. 자기 특이성이 드러나는 스타일을 통해 지속적인 작가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전설이 된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같은 이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바스키아의 경우 이미 요절한 위대한 페인터로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기도 했다. 미국 중산층 출신이자 혼혈인 바스키아는 스스로 길거리로 나가 자신의 정체성과 계급성을 예술가로서의 아우라로 전환시켰다.
그래피티는 조형이미지 뿐 아니라 문자이미지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언어(문자이미지)를 사용하여 사회, 정치적 논평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미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피티는 문자와 조형이 만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다. 또한 형식적 스타일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당대의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재현하는 미학적 표현으로서 진지하게 다뤄진다.
근래 그래피티 예술의 영웅 영국의 뱅크시(Banksy)를 생각해보면 그래피티 아트가 지닌 예술적 또는 정치적 미학적 가능성과 힘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기스타가 된 소수의 작가들 이외에도 무수한 익명의 그래피티 작가들의 열정과 성과가 그래피티를 20세기 중반 이후 매우 중요한 도시예술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늘날 그래피티는 도시화와 함께 자본주의시대 예술의 상품화와도 연결된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수많은 대도시들의 성장과 그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계급분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동시에 그래피티 또한 국적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국제주의양식처럼 확산되었다.
2. 다국적 다문화 시대의 새로운 예술형식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미 몇 년간 다양한 아트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성 미술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활동 방식과 영역을 만들어 왔고, 다양한 기성문화의 주체들과 아트 콜레보레이션을 통해 폭넓은 인프라를 만들어왔다. 이들의 작업은 그래피티의 기본적인 특징과 함께 최근 변화된 그래피티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만드는데 일정한 정도의 성과가 있다고 판단된다.
전형적인 문자그래피티와 만화 등을 결합한 후디니, 타투와 결합한 레고, 후드를 쓴 힙합스타일의 캐릭터를 양산하는 홍삼, 번개가 치듯 날카로운 빛의 공격적 이미지와 문자를 결합하는 에라원, 독특한 만화 이미지로 그래피티를 만드는 산타, 어두운 묵시적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스피브, 악마적 이미지 또는 고딕스타일을 고수하는 진스 비에이치, 동양적 환타지를 가미한 제이플로우, 기이한 공간과 기묘한 캐릭터가 난무하는 알탐조, 전형적인 힙합이미지와 그래피티를 선보이는 코마, 팝아트와 만화 캐릭터가 버무려진 찰스장, 몽환적 벽화이미지의 데칼. 우선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낯설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정체불명의 이름들은 그래피티아트의 현주소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독특한 예명은 한국 사회의 젊은이 문화의 국경 없는 혼성모방의 다국적, 다문화성을 반영한다. 초창기 그래피티작가로 활동하던 바스키아가 사모(Samo)라는 작가 명을 사용한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그래피티는 우리 사회로 수용될 때 기존의 하위나 저항의 문화라기보다는 외래문화로서 감각적으로 새로움을 제공한 젊은이 문화의 한 종류로 이해되었다는 점에서 스타일이 좀 더 강조되었다. 한국 사회에 그래피티를 처음 소개한 이들은 영미권에서 유학하거나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그래피티는 현지에서 체험한 이들을 통해 유입되면서 영어권의 감성과 일상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래피티 아트가 성공적인 스타일과 자기 고유의 미적 영역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시기상조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래피티는 단지 새로운 스타일의 하위문화나 외래문화로서가 아니라 젊은이 문화의 중요한 양식으로서, 힙합은 물론 만화,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게임, 나아가 팝아트까지 음악, 미술, 만화, 광고, 영화 등 대중예술의 전 분야가 폭넓게 결합되어 있다. 기성 예술계 또는 예술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존속하기 어려운 길거리 예술가들의 생존전략이란 면에서도 다른 장르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본격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지 않더라도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그래피티 스타일을 활용해왔다. 점차 본격적인 팝아트와 공공미술, 스트릿 아트 등 다양한 미학이 융합되어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을 잘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시기는 물론 참여작가들의 활동이력과 영역을 볼 때 이번 기획전은 한국 미술계에서 좀처럼 주목하지 못했던 그래피티 아트의 미학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비평적 작업의 전초전으로 보인다.
나는 이번 전시에 초대된 13명의 작가들을 보면서 한 영화를 떠올렸다. 1963년 작 13인의 자객이라는 일본영화다. 최근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수 백 명의 사무라이들을 거느린 권력자를 암살하기 위해 13인의 무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활극이다. 여기서 13이란 숫자는 매우 기묘한 인상을 준다. 13일의 금요일, 13인의 아해, 13층, 13인의 자객 등등 대부분 13이란 숫자를 제목으로 한 문학작품이나 영화들은 우선 그 의미가 명료하지 않고 기묘하며 현실과 환상이 마구 뒤섞이거나 자리바꿈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3세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입학하는 나이다. 또한 형법상 14세 미만은 미성년자로 형사상 책임능력은 없으나 만 12세 이상은 소년법에 의해 보호처분을 받는다. 13이란 수는 이런 현실적인 의미를 떠나서 12간지를 벗어난 최초의 수가 갖는 의미심장한 신화성과 파열의 힘을 배경으로 초현실적 사건이나 풍경처럼 펼쳐지는 수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13이란 수는 매우 불길한 수이기도 하다.
기획자가 이 13인이란 수를 의도적으로 맞추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연과 필연이 교묘하게 결합하는 예술의 현장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대단한 힘으로 의미의 파장을 만드는 일이 드물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