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만화를 보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만화책’에 대한 향수의 정서가 있다. 《2013 아트선재 라운지 프로젝트 #2: 20세기 만화대작전 - 만화와 시대展》은 만화책을 향한 정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들여다 보는 전시다.
한국만화의 역사 100년이 훌쩍 넘는 기간은 사회문화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태동기, 초창기, 성장기, 발전기1, 발전기2, 새로운 도전기로 나눌 수 있다. ‘태동기’는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만평을 시작으로 1945년 8.15 해방이 되기 전까지이다. ‘초창기’는 한국의 현대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로서 해방과 전쟁, 그리고 혁명의 물결이 있었던 1945년 8월 15일부터 1960년 4.19까지이다.5.16 군사 쿠데타 이후인 1961년부터 1969년까지는 다양한 만화들이 등장하면서 ‘만화방 문화’가 활성화되던 시기로서 스타작가와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장르화가 이루어지던 ‘성장기’였다.
‘발전기1’인 1970년부터 1979년까지는 군사 쿠데타 이후 연장된 군부독재의 시절로서 한국사회의 70년대 문화가 만화 속에서도 잘 드러나던 시기였다. 신군부 시절인 1980년부터 1989년까지는 만화방의 시대 끝 무렵과 만화잡지의 시대 초창기가 중첩되며 발전하던 한국만화 ‘발전기2’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만화잡지의 시대인 1990년대와 웹툰의 시대인 2000년대는 뉴미디어의 출현과 트렌드의 빠른 순환으로 점철되는 ‘새로운 도전기’로 볼 수 있다. 만화라는 것 자체가 당 시대상을 잘 나타내는 표현물이지만, 이번 전시는 그 가운데서도 한국사회의 변화무쌍한 시대상이 엿보이는 두 시기인 ‘초창기’와 ‘발전기1’를 선보인다.
제1탄: 2013. 2. 21 (목) ~ 3. 17 (일)
70년대 만화의 다양한 세계 (1970년 ~ 1979년)
제1탄은 ‘발전기1’의 시기인 1970년대 만화를 먼저 선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을 통해 꺼벙이와 로보트태권V, 그리고 독고탁이 노닐었던 70년대의 만화는 현재의 만화독자들이 기억이나 추억의 자락에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만화들이다. 또한 1970년대는 유신체제의 각종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다양하게 일어났던 시기로서 만화 외적환경의 영향과 내용적 압박 등이 유기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유신헌법 발포 전후로 사회정화라는 명분 속에 불량만화 단속이 매년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린이 청소년의 탈선장소라는 오명을 쓴 만화가게는 계속 성행했고,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을 버티는 삶의 모습은 명랑, 액션,괴담, 순정만화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남아 우리들 마음속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2탄: 2013. 3. 21 (목) ~ 4. 7 (일)
초창기 만화의 새로운 모험 (1945년 ~ 1960년)
제2탄인 ‘초창기’는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혁명을 관통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던 시대를 선보인다. 해방 후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희망의 에너지가 진하게 뿜어 나오는 상황에, 한국전쟁으로 순식간에 초토화 되면서 그 에너지는 꺾이는 듯 보였다. 전후복구의 전선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살아내면서 되살아나던 희망의 에너지는 각종 부조리에 대한 저항 속에 혁명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쿠데타와 함께 급속도로 꺾이게 되는 숨가쁜 시기였다.
만화도 신문이나 잡지 속에 끼어 있는 도안의 형식이 아니라 만화책(만화단행본)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저널리즘 정신을 안고 만들어졌던 만화신문이 출현했다. 읽을거리가 그리 많지 않던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이들의 읽을거리로 만화책이 손에 손으로 전파되었고, 소설과 기사들이 다채로운 만화와 함께 만화잡지로 묶여져서 전후 복구의 생사에서 돌봄을 못 받아 알아서 커가야 했던 어린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채워주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일본문화의 흔적들은 완고한 어른들 눈에 몹시 걱정스럽게 비춰졌는데, 어린이 문화로 빠르게 뿌리내리던 만화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 불량만화 시비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만화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몹시 낯설게 보인다. 만화라는 큰 틀에서는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만화책의 형태와 표현방식, 그림 스타일 그 모든 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마치 골동품을 보는 느낌을 만화책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생소한 경험이 될 것이다.
《20세기 만화대작전 - 만화와 시대展》은 그때 그 당시의 실물자료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당시의 만화방에서 콧물, 침묻혀가며 한 장씩 넘기며 보던 그 당시의 그 책을 2013년에 다시 보게 된다. 만화책은 자생적 어린이 문화로 여전히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추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7대 사회악으로 한국사회를 좀먹는 주범이 되었었던 그 만화책을 2013년 현재의 우리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따라서 이 전시는 한국만화의 사료적 가치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만화에서 보이는 당 시대의 통속성을 통해 지난 시대의 삶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이 전시가 만화 속에서 시대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된 것은 전시에 선보이는 모든 실물자료가 한 만화키드의 소장품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방 문화에 푹 빠져 있었던 아이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성장과정에서 마음속에 깊이 담았던 그 만화들을 하나, 둘씩 모아왔고, 환갑을 바라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만화를 통해 사회를 보고 있는 그의 삶이 바로 이 전시의 가장 크고 중요한 실물인 것이다. 오랫동안 꾸준히 만화를 수집해 온 만화키드 김현식님의 약 5천여 권의 실물자료 가운데 이번 전시에서는 극히 일부만 선보이지만 향후 자료가 정리 되는대로 또 다른 이름으로 관객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