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광주 13:
이진명, 아트광주 13 예술감독
지난 2000년대의밀레니엄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하게된 아트페어들은 더이상 콜렉터와 갤러리스트들이 만드는, ‘상업적’인 기능만이 강조된 미술시장의 역할 이상을 하게된 것이 분명하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바젤 아트페어는 90년대부터 Art Unlimited, Art Statemen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작가 발굴과 신작 커미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Art Conversation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세계에 있어서의 다양한 미술시장의 역할과 그 다양한 역학관계 에 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2003년에 새로 시작한 런던의 실험적인 프리즈 아트페어는 2012년 뉴욕에 프리즈 뉴욕을 오픈하면서, 새로운 아트페어 브랜딩 파워를 만들어, 새로운 미술시장의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기존의 미술관을 통해서 발굴되던 작가들이, 이러한 아트페어를 통해 또 데뷔하게 되고, 갤러리들간의 우열이 더욱 이러한 아트페어 참가 여부에 따라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미술시장의 국면은, 미술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통해 더욱 가속화되어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격히 국제적인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며 지구의 다양한 장소에서 시작된 국제 비엔날레들은 분명히 이러한 새로운 글로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소통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각언어들과 글로벌 미술은 이제 서서히 글로벌 경제 자본으로서 국제 미술시장에서 운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흐름과지난 2008년 서구의 근본적인 경제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금융위기는 미술시장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한 지평에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를 만들었다. 17세기부터 시작하여 서구중심으로 구조화되어 20세기 국제 미술시장의 리더십을 가지고 가던, 뉴욕/런던 중심의 서구 미술시장의 영향력에 중국시장의 위력이 새로이 급부상하는 아시아의 이머징 마켓의 국제미술시장으로의 영입이 그러하다. 물론, 너무 급격히 확장되어 가는 아시아 마켓에 대한 우려와 미술의 상업화 등에 대한 염려도 있지만, 아시아도 이러한 미술시장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을 더욱 자각하는 시점인 것이다.
>' 놀이와 액막이, 그리고 우아한 냉혹을 위하여'
아트광주 13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다. 아트광주는 광주 비엔날레의 보편화된 세계성의 가치에 응대해서 지역의 미술시장과 신진 작가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거꾸로 관객에게 새로운 참신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지속시켜왔다.
아트광주 13이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광주라는 도시가 떠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다.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와 인문성은 세계 도처의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고 현재에도 더욱더 증폭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견인차 역할에서부터 예향이라는 이름의 낭만까지 머금은 빛의 도시 광주는 공교롭게도 미술의 시장이라는 경제성의 원칙에서는 다른 여타 도시에 상당히 뒤져있는 실정이다. 광주의 주변부에 기업과 산업시설이 미비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광주의 존폐여부로 시와 지자체에서 상당기간 고심해오다가 존속을 결정했다.
아트광주 13의 존속을 위한 방안과 미래적 비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심했다. 현재 아트페어라는 행사에서 한국은 홍콩아트페어에 메이저 미술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홍콩아트페어는 주지와 같이 신자유주의의 원칙에 부합되는 고비용, 고효율적 투자, 상위 독식의 체제라는 내용에 걸맞은 행사이다. 여기에서 이 행사를 능가할 방안은 현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트광주는 대안적 견해를 창출했다. 첫째, 아시아의 실험적 매개공간을 우선적으로 초청한다. 신자유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상업적 효율보다 예술적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행사로 자리잡기 위함이다. 이 실험적 매개공간들은 대안공간이라는 90년대의 개념을 진화시켜 발전시킨 단체들이다. 둘째, 국내의 신생 갤러리들을 우선적으로 우대한다. 이 단체들은 실험성과 창작적 열의를 불사르는 소장 작가들로 구성된 연합체계이다. 셋째,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문성의 상징으로서의 광주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동남아시아의 미술을 크게 조명하려고 한다. 마그레브(Maghrib)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 민주화 열풍은 쟈스민 혁명이라는 메타포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향해 전파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향기의 전파가 가능했던 최초에는 광주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잔혹의 19세기를 버리고 화해의 21세기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예술의 담론을 어떻게 산출해야 하는가에 이번 행사의 근원적 존재이유를 설정한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대표작가 특별전을 구성한다. 동남아시아는 진정으로 인류 화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잉태된 땅으로 믿기 때문이다. 넷째, 동북아시아 삼국의 형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현재 세계 자본의 반절 이상을 이곳에서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동북아시아는 화해와 화합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반목과 네오 내셔널리즘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T. S 엘리엇의 말대로 "시는 악마에 대한 액막이(poem is exorcism of the demons)"라는 믿음을 목도한 현실에 적용해보고 싶다. 이에 동북아시아의 작가들에 대한 특별전을 또 하나의 대안적 축으로 제시한다. 예술은 정치적, 경제적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젊은 시기의 예술은 하부구조적 프레임보다 정신적 진취성을 스스로 고취시키는 법이다. 이 한중일이라는 트라이앵글의 젊은 에너지는 후미히코 스미토모, 자오 리, 서진석 같은 큐레이터들이 작가 구성에 도움을 주었다. 끝으로, 아시아 아카이브 네트워크의 아카이브 특별전을 구성한다. 아시아의 대표적 아카이브 기관들이 참여하는 특별전으로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적 대안을 그간의 축적된 미술자료로 노정시키는 전시로 광주의 인문성과 화합적 제스쳐에 장단을 맞출 것이다.
2011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이었다. 현대문명의 끝나지 않은 계몽의 완성을 여전히 이성의 빛과 이성 국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주제를 김지하 시인의 "흰 그늘"로 파악한다. 흰 그늘은 이성에 대한 착란과 광기로서의 빛을 말한다. 계몽을 통한 합리주의의 근간은 경제 양극화, 과학 만능주의, 물신숭배, 개인주의의 심화를 낳았다. 광기와 착란의 빛은 그러나 휴먼 터치의 따뜻한 체온과 공동체의 온전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만 구체화된다. 그것은 따뜻한 인적 교류에 대한 믿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성의 빛이 완성시키지 못한 불가능한 가능성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예술을 통해서 가능하다. 어떠한 예술인가? 바로 상업과 자본의 존재론적 장식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식에 부유하는 의지의 가능성으로서의 예술이다. 바로 실험과 순수와 열의로서의 예술이 그것이다. 예술의 존재론적 근원 파악에 대해서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놀이(play)"라고 파악한다. 그는 말한다. “놀이는 끝나는 종착 목표가 없다. 따라서 놀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복에 의해서 항상 새롭게 창조된다.” 예술은 끝나지 않는 놀이의 연장태로서 과거의 규칙과 답습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창의의 에너지를 발산시키려는 영원한 과정인 것이다. 그것의 모습은 광주와 광주시민이 걸었던 이력과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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