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즈
2014. 9. 17(수) ▶ 2014. 9. 23(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 T.02-736-6669
이명희의 나무
이질적 요소들의 조합을 통한 생명의 장
이명희는 자연과 그 이면을 진지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왔다. 그 대신 대상의 본질과 이의 내적가치를 탐구하면서 물질의 유동과 색채의 실험을 통하여 현대회화의 조형적 가능성과 생명성의 표현에 천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형상과 비형상, 무채색과 유채색, 절대공간과 상대공간 등 이질적 요소들의 대립과 조우를 통하여 드러낸 그의 화면은 잠재된 긴장성과 노정된 조형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잔잔한 공감을 유도하곤 한다.
과거 이명희는 ‘숲과 나무’를 심상적으로 요추하고 이를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채로 마무리함으로써 추상과 구상의 접점에 위치한 그림으로 우리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러한 그의 그림은 대상에서 기인하지만 대상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거나 역으로 대상의 심층을 관통하는 그림들이었다. 색채는 농익은 무채색조를 띠면서 원숙한 아름다음을 보이는가 하면 원색의 색면으로 정의된 대상들조차도 찬연한 세련미를 보이곤 했다. 형상을 염두에 두면서 형상에 연연하지 않는 역설적 표현방식은 이명희 회화의 형식적 근간을 이루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이명희는 대상을 좀 더 이지적으로 해석하여 논리성을 강화하면서 이에 의해 드러나는 긴장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동화적 구조와 무한의 공간감을 표현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집약된 숲과 산의 형상은 이전에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들이지만 작가는 이를 응축적으로 기호화시키거나 색채의 변주와 공간의 확장을 통하여 동시대 회화의 문맥 속으로 자신의 예술을 몰입시키고 있다. 이때 나타난 형상들은 언어적 문맥을 유지하는 듯하나 여전히 조형적 아름다움과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분방함 속에 엄격한 구조가 엿보이는가 하면 질서 속에 자유로운 면면이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그림은 모더니즘 미술의 주요 맥락과 상통하는 것으로, 대상의 재현에서 자유로워진 당시의 화가들은 질료의 탐구와 물질의 실험에 천착하면서 자신의 심상 깊이 존재하는 내면적 성찰을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이명희의 경우 자연에 자신을 내맡긴 채 자연과 자신을 별개로 보지 않고 육화시킴으로써 주체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던 모더니즘 미술의 시각에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욕심 없는 작가가 있으려니 만은 이명희는 그의 주변과 삶에 친근하게 스며있는 소박한 대상은 물론 이의 이면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깊은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봄 되면 나무 사다 심고, 씨 뿌리고, 뜨거운 여름날엔 풀들과 전쟁에 지치고, 몇 개의 먹을 거리를 따고 캐면서 작은 것에 좋아라 감사하며 땀에 젖은 노동의 대가를 실감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편안함과 너그러움을 배워가며 시간들을 보내고 작업을 하는 동안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사다 심은 꽃들이 올해도 피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어설픈 나의 정원은 마치 내 작업과도 유사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부담 없이 자연에 몸을 던지고 이를 표현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몰아(沒我)적이고 정적인 것에 관심을 갖다보니, 그야말로 자연에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적 시각으로 사물을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지고한 애정과 겸손한 마음이 외적으로 ‘정지된’ 사물에 내적으로 생명 충만한 것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대상은 화가를 품에 안은 하나의 자연으로 존재론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화가에 의해 포착된 자연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화가를 끌어안고 빛을 발하는 실존적 주체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 나무이야기-3680> 의 경우 전체적으로 파란색을 기조로 대상과 비대상을 설정하고 마치 나무를 우주의 위성처럼 정위(定位)하거나 줄기와 함께 마치 정충의 움직임을 연상케 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작가의 심적 의중을 보여준다. 이때 하늘과 땅, 우주와 수중을 구별하지 않고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캔버스는 하나의 심리적 지지대이자 표현의 근간이 된다. 말하자면 작가는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회화고유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자유로운 입장을 견지하면서 매재(媒材) 혹은 재료를 이질적으로 충돌시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반응을 즐기거나 원색을 날것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격한 생명성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 나무이야기-3685> 의 경우는 황색조의 농익은 화면을 기조로 하면서도 작가의 심성이 기교보다는 마치 소박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화폭의 구석구석까지 배려하거나 밝고 강렬한 색을 선택하곤 한다. 이는 화가가 자신의 존재를 은폐한 채 대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게 하고자 노력했다는 뜻이 된다. 자연에서 낳고 자란 작가는 자연의 진정한 속성인 생성과 소멸의 순환구조를 용인하면서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마치 작가는 자식을 결혼시켜 슬하에서 보내듯이 평생을 그려온 그림마저도 떠나보내고자 하는, 그럼으로써 자신마저도 욕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유체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소유보다는 분배에 가깝고 체념보다는 자유와 가까운 개념으로 작가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참된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명희는 주관적인 환상에 빠지거나 형태의 왜곡을 통하여 모더니즘회화가 추구한 물성이나 관념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철저하리만큼 대상의 본질을 요추하는데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가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때의 기본적인 자세를 준수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작가의 운필(運筆)과 화면구성은 더 큰 다양성을 보이고 개성적인 리듬을 갖게 되며, 형태의 변주와 파동을 종용한다. 그러나 ‘나무이야기’라는 테마자체는 늘 자연과 주변세계의 반영이라는 끊임없이 매혹적인 교착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사람이 그렸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회화자체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정교하고 미세한 묘사를 배제하고 대상의 특징과는 다소 상관없는 색채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우리의 공감을 확보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