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기록
스테판 모라브스키(Stefan Morawski, 1921~2004)는 “예술은 창조적 자발로써 발현이 되며, 예술의 순수성과 자발성 때문에 작가들은 세계를 개척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 전망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한 사회를 반영한 결과물이며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에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를 이야기하며, 우리 시대의 모습을 포착하여 우리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광복 70년 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사건과 사고를 예술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 트라우마의 기록> 에서 ‘트라우마’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의미한다. 집단적 트라우마란 집단과 집단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성격에 따라 형성되어 있던 집단 리비도가 철회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독립된 나라에 대한 열망이 반으로 쪼개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우리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는 전쟁을 경험을 하지 못한 후 세대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 역사적 트라우마‘의 양상을 띠며 ’집단적 트라우마‘와는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임옥상의 작품 < 6.25이전의 가족> , < 6.25 이후의 가족> 은 한국전쟁이라는 우리나라의 아팠던 과거를 평범한 할아버지의 회갑사진 속에 전쟁 전‧ 후 달라진 가족 구성원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으로 사라진 가족의 상처를 전달한다. 손기환의 작품은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 한다. 미국과 북한의 수장이 망원경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김정은 - 오바마, 똘이장군 - 소년장수바우, 캡틴아메리카 - 북한의 선전물을 대비시켜 각 사회를 대표하는 이데올로기를 바라보게하여 이들에 내재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준다. 오형근 작가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거쳐야 하는 군인을 다루었다. 개인도 집단도 아닌 중간자인 군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젊은 남성이 느껴야 하는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최원준은 문래동이 가지고 있는 사회・ 역사적인 요소를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문래동은 서울의 마지막 철강 제조업단지로서 공업지역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7~80년대 군사정권시대에는 호황을 누렸으나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인해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동거가 시작된 곳이다. 작가는 한 지역을 통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앞서 민족적 트라우마를 살펴봤다면, 다음은 재난으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이다. 홍수, 자동차 사고, 비행기 추락 등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매일 재난을 목격하고 살아간다. 홍원석은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을 사실적인 이미지와 허구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가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자유로의 부서진 도로,, 우리가 지나다니던 길에 갑자기 생겨난 싱크홀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은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김윤경숙과 이혜인은 세월호가 만들어낸 트라우마를 소재로 작업했다. 김윤경숙의 하얀 비명은 300개가 넘는 전구의 깜빡임으로 죽은 자를 기리고 있다. 깜빡이는 빛과 숨죽인 소리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종의 평안을 선사하기도 한다.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현실을 김윤경숙은 작품을 통해 승화 시켰다. 이혜인의 눈먼 그리기는 세월호 사건 이후 작가 스스로 그 아픔을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다. 잠수사의 구조 활동이 가능한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작가가 직접 제작한 마스크를 쓰고 희생자들을 구하러 가기위한 잠수사의 입장이 되어, 답답한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여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희생자들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나가며 작가는 일종의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전채강 작가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주어진 사건 사고 이미지를 바탕으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고에 주목한다. 이는 작가가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그림에는 차 사고,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녹는 장면, 대지진 등 각종 불안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작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로 얼룩진 현대사회를 본인만의 방식을 통해 재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는 치유를 관람자에게는 위안을 주기도하며, 때로는 그 고통을 그대로 제시하기도 한다.
마지막 섹션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풍족해졌지만, 사회적으로는 많은 이슈가 나타나게 된 동시대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빠른 속도의 발전은 사회와 개인의 충돌을 야기하였다. 김상돈은 세월호사건과 더불어 싱크홀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세월호 사건과 싱크홀 생성의 공통점은 예상치 못한 부재를 낳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사라진 사람들, 싱크홀로 속에 사라진 것들. 김상돈은 현대사회에서 드러나는 부재를 잘린 종이를 이어붙이는 형상으로 기념비를 만들었다. 이어붙인 형상들 사이의 공간은 부재를 상징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조형물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실체와 비실체, 현존과 부재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문기전은 개인, 사회, 국가 등 제도안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본인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과 실제의 내 삶과의 괴리감을 폭발하는 이미지로 재현함으로써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을 암시한다. 노순택의 < 망각기계> 시리즈 중 < 망자의 풍경> 은 5.18 사건 희생자들의 옛 묘역에 있는 영정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오랜 시간 빛, 바람, 비를 맞으며 놓여있던 영정사진은 색은 바래져가고, 훼손되어간 채 남아있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기억이 퇴색 되어가고 왜곡되어가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들의 죽어가는 방식을 은유하는 듯하다. < 망각 기계> 의 또 다른 섹션인 < 오지 않은 미래> 는 광주 운주사의 미륵불 사진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미륵불이 오기를 희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전윤정은 검정색 테이프를 이용하여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하지 못한 나만의 복잡한 불편함을 테이프로 형상화 하였다. 겹치고 쌓이고 촘촘하게 붙여진 테이프 작업 안에서 무의식적인 감정을 표출한다. 노해율의 밸런스 시리즈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완전한 균형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중심을 지향하도록 설계되어있고 인간은 이 작품을 보며 자꾸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셀프 액션은 에너지원이 내부에 있는 오브제이다. 안에 있는 힘으로 작동이 자유롭게 되는듯 보이나, 결국 이는 외부적 조건(작품과 연결된 전선이나 움직임을 제어해주는 선)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어떠한 조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노해율의 작품은 완전한 자유는 없지만, 어떠한 규율 안에서 움직이며, 균형을 계속해서 맞춰나가려고 하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의 삶은 때때로 각종 재난, 전쟁, 사고들에 의해서 고통받고 지치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 가고자 한다. 인간은 쉽게 망각한다. 재난이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 우리의 아팠던 과거를 살펴보고 이를 그저 들추는 것에서 벗어나 이를 마주보며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상처를 대면하도록 하면서 치유의 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