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25
2006년 1월7일 토요일 저녁 6시
운동장이라고 들어선 그 곳은 예상보다 아담했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우리의 차가 덜컹거리며 멈춰선 곳. 서울에서부터 시작한 긴 여정의 힘든 마침표를 찍은 이곳은 창작 뮤지컬 <천상시계>의 배우들이 합숙을 하고 있는 경상북도 영주의 어느 폐교. 일행을 향해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셨어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2006년 1월14일 토요일 저녁 7시 대학로 연습실로 향하는 우리를 조용히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이곳에서 여러번 마주친듯한 낯익은 얼굴 때문에 하마터면 인사를 할 뻔한 얼굴은 바로 연극배우 최종원씨의 얼굴이었다. 조용히 목례를 건네시며 연습실로 향하시는 최종원씨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또 마주쳤다. 파란색 두건에 장발 머리.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아, 이분은 정말 아는 얼굴인데…'라고 생각한 순간. ‘아, 영주에서 보았던 장영실'. 뮤지컬 <천상시계>의 주인공이었다. 아는척을 해주시며 화장실로 들어서는 장영실의 뒷모습. 2006년 1월7일 토요일 저녁 7시15분 영주의 합숙소 처음 보는 얼굴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을 무렵 마주치는 시선마다 연신 목례로 답해주는 배우들. 드디어 연습이 시작한다. 합숙에 참여하기 전 배우들의 프로필 사진을 한번쯤 보고 온 필자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음에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아니, 도대체 장영실이 누구시지…'. 힘들게 알아본 배우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합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이 지쳐있는 모습. 영하의 날씨에 난방이 전혀 안되는 폐교인지라 모든 배우들이 겹겹이 껴입은 옷에 목도리와 털모자까지다. 이해가 되는 것이 바닥을 딛고 있는 필자의 발도 어느새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 ‘너무 춥군요…'. 합숙의 마지막 날. 2006년 1월14일 토요일 저녁 7시30분경 대학로 연습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학로 연습실. 영주를 찾을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배우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지만. ‘아니, 누가누구였는지 알아보기 힘든 이유는 뭐지?' 합숙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깔끔해지고 활기 있어 보이는 모습에 또 한번 어리둥절… 그들의 연습을 보기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에 아리랑 극단 방은미 대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마치 오늘이 최종 리허설 같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좋은 모습 보여드립시다.”라는 말과 함께 연습의 시작을 알린다. 긴장하지 말라고 배우들을 격려한 방은미 대표의 얼굴에는 배우들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 엿보인다. 원작자, 예술ㆍ조명ㆍ음악ㆍ안무ㆍ소품ㆍ안무 감독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오늘 연습을 보기 위해 모두 모인 자리이다. 그리고 그들이 시작한다. 창작 뮤지컬 <천상시계>. 우리 역사 속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쫓는 그들. 영주 합숙 때는 추위에 꽁꽁 얼어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대학로 연습실에서는 퍽 곱고 매끄럽다. 오늘 대학로에는 영실이의 여인으로 출연할 가수 ‘이안'의 모습과 영실과 예성의 아역으로 출연하는 강성구 군(장영실 역)과 정지원 양(예성 역)도 눈에 띈다. 강성구 군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뮤지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보여준 똘망똘망한 눈으로 장영실의 어린시절을 연기한다.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모든 게 재미있다고만 한다. 대본 외우기부터 연기 연습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며 웃는 얼굴이 무대에 서는 자신의 모습에 마냥 신이 난 모습이다.
대학로 연습실 한쪽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들의 모습이 합숙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연습에 지친 모습이 아닌 곧 시작할 공연을 기다리고만 있는, 자신들의 무대에 그 누구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설레여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가슴 떨리게 한다. 의자위에 올라 지휘를 하며 열정적인 모습까지 보이는 음악 감독님의 모습. 그때 궁무를 선보이던 여자 배우들 사이에서 한 배우가 넘어지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배우들이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린다. 여유 있어 보이는 웃음에, 보는 이들도 한시름의 긴장을 덜어 놓는다. 연습을 조용히 바라보시던 원작자 김남채 선생님께 뮤지컬 <천상시계>를 보시면 어떠시냐는 질문에 자신의 희곡이 음악을 입어 좀더 입체감 있게 표현되는 듯해서 기분이 좋으시다고. 한편 ‘이번 무대를 통해서 우리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 위대한 과학자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고 하신다.
간의대 사업을 추진하겠노라~ 뮤지컬 <천상시계>에는 장영실을 발굴한 ‘세종'이 등장한다. 합숙 때 보여준 연습 장면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대학로에서는 더 근사해 보인다. 세종이 장영실의 흔적인 간의, 혼천의, 자격루, 천상시계 옥루, 조선의 간의대 사업의 완성을 선포하는 장면은 전 출연자들이 장식하는 무대로 역동적인 움직임과 흥겨운 노래 소리가 우리 역사적 자랑스러움을 몸소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공연장에 오르는 이 장면이 가장 기대된다. 2006년 1월7일 토요일 저녁10시경 영주의 합숙소 연습을 마치고 합숙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빙 둘러 앉은 단원을 보니 얼추 보아도 40명은 넘어 보이는 대식구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얼큰하게 무르익었을 쯤 술잔을 건네며 연습동안 힘든 점은 없었냐는 질문을 던졌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연신 농담을 주고받던 분위기가 조금 진지해지더니 “힘든 게 뭐 있겠어요. 배우가 자기 일하는 것뿐인데요. 다만, 이번 작품이 순수 창작의 작품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요. 외국작품을 가지고 하는 공연은 있는 그대로를 하면 되지만 창작이라면은… 매 연습을 할 때마다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음악과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많은 도전과 시도가 필요하게 되요. 많은 연습을 했던 장면이 갑자기 생략 되어야할 상황에서는 배우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작품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 하니 참 속상할 때도 많죠.” 창작의 어려움이라는 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부분. 한 배우가 “신체적인 노동보다는 정신적인 노동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게 배우인거 같다”고 말하자 마주 앉아 있던 다른 배우가 “그래서 우리가 술을 마시죠. 술밖에 없어요~.”라고 한마디 거들자 모두가 동감하는 듯 웃어버렸다. 2006년 1월14일 토요일 저녁 10시경 대학로 연습실 배우들을 보며 수고했다고 인사하는 감독들과 오늘 연습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대표의 모습. 그리고 연습실을 나서는 사람들로 연습이 끝난 그 곳은 분주하다. 연습으로 지친 모습이지만 오늘의 긴장감을 잊지 않으려는 듯한 배우들의 모습이 다부져 보인다. “별 억수로 많데이….” ‘예성'이라는 하늘의 별을 가슴에 담고서 자신의 발명품에 별을 새기던 영실… 7일과 14일. 필자는 그들과 두 번의 만남으로 어느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을 이해하고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마음까지 이해한 듯 하다. 곧 다가오는 1월 31일 공연의 시작. 그들이 서는 예술의 전당에도 영실이가 바라보던 별들로 가득한 무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늘의 별을 가슴에 담은 영실이 처럼, 우리 역사 속 빛나는 별을 우리 마음속에 담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나래 기자 han@playnews.co.kr
- ⓒ 공연 정보의 즐거운 발상 (playnews.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playnews | 이타임즈 신디케이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