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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craft)로의 회귀

2015-05-08


오늘날 사회는 얼굴 없는 디자인으로 넘쳐난다. 디자인 산업은 속도 조절에 실패했고,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혀 객관적 시각을 잃었다. 쏟아지는 디자인에는 얼굴이 없다. 은병수 디자이너(EUNcouncil 대표)는 예전 한 매체 인터뷰에서 "얼굴 없는 디자인 현실의 절반은 디자이너의 책임이다"라고 토로했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디자이너가 디자인의 얼굴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질주의에 가려 제 얼굴을 잃어버린 디자인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대량생산 속 흘려버리는 소비에 익숙한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이전에 그때그때 욕망에 따라 디자인을 입는 소비자로 전락했다. 이런 사회의 디자인에는 깊은 성찰이 없다. 익명성과 배타성이 난무한다. 은병수 디자이너는 "현시대 디자인은 사회적,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고, 디자인의 성장은 턱없이 무뎌졌다. 디자인의 질을 높이고 주도적인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크라프트(craft, 공예)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의 얼굴을 찾는 방법으로 크라프트를 선택했다. (본문에서는 어감과 상황에 따라 크라프트와 공예를 혼재해서 사용함.)

에디터 ㅣ 박수연 (sypark@jungle.co.kr)

은병수 디자이너는 1989년 국내 최초로 산업디자인 회사 ‘212DESIGN’을 설립했다. 1992년 미국 모토로라 무선호출기 프로젝트를 수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우리 디자인을 해외에 수출했다. 19년간 350여 개가 넘는 히트 제품 디자인을 선보인 그는 해외 뮤지엄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불현듯 한국공예 브랜드 ‘비움(VIUM)’을 들고 나타났을 때, 업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명 산업디자이너에서 한국 전통 디자이너로의 전향은 디자인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은병수 디자이너는 이후 현대 디자인과 한국 문화, 장인정신을 접목, 옛것을 재해석해서 국내 디자인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Jungle : 현 디자인이 처한 상황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를 볼 때 디자인이 많이 중요해졌습니다. 거의 빼놓을 수 없는 분야로 부상했죠. 현 산업은 과거에 비해 디자인에 신경 써야 합니다. 환경이나 공익적인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나라 디자인은 서구 디자인 개념의 현대 디자인에 견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영역도 넓어졌고요. 다만, 디자인계에서 질적인 재고가 이뤄지고 인원도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성장이 멈춘 듯합니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산업이 한창 발전할 때에 비하면 근 6~7년 새 한계에 이른 듯합니다. 선진국 계열 경쟁사들을 보면 디자인이 계속 진화하는데, 우리는 앞서가지 못하고 있죠. 질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인 독창성 즉, 창의성과 정체성의 부재입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경영자가 창의적인 마인드로 접근하고, 독창성의 또 다른 측면인 우리만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요. 그것이 부족하다 보니 유사한 스타일이 반복되는 겁니다. 건축, 패션, 인테리어, 제품 등 우리만의 것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데는 다 이유가 있죠. 근본적으로 미술교육에서 디자인이 시작되는데, 최근까지도 대부분 커리큘럼이 창의성을 저해하는 고정적 테크닉 위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실기를 안 보는 학교도 생겼지만, 디자인하려면 디자인 학원에 가야 하고 석고 데생과 구성(composition)을 해야 합니다. 1년 내내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창의성이 굳어진 채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겁니다. 다 똑같지는 않지만 전국 수많은 대학 커리큘럼이 비슷합니다. 그렇게 직장에 들어가면 회사 분위기나 문화, 상하 간의 조직 체계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를 개진하지 못하고 수직적인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결국 폭발할 기회가 사라지는 거죠.

저는 최근 5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기회였죠. 실제로 기저의 당면한 이슈는 사회구조 문제입니다. 디자이너가 속해있는 사회 구조 문제가 독창성을 깎아 먹고 있어요. 또 다른 예로 흔히들 젊고 참신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많이 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데뷔 기회가 없습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건축, 현상설계도 마찬가지죠. 결국 공모전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지만 사회에 반영이 안 됩니다. 대부분 사회에서 하는 큰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못하죠. 반대로 나이가 들면 참신한 맛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대기업에서도 40세만 넘으면 디자인 안 하고 결재 라인에 섭니다. 실제로 창의성은 경험, 연륜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 인식이 그렇게 굳어져 버렸어요. 해외에 70, 80세 넘은 디자이너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과 대조적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60세 정도 되면 디자인에서 손을 땝니다. 이런 사회적, 구조적 구분이 디자인의 한계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Jungle : 구조적인 문제는 미국도 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디자인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개념은 미국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향이 비슷합니다. 미국 디자인은 철저히 상업 기반입니다. 부가가치를 증대하는 수단이죠. 기조가 그렇습니다. 한국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기조로 시작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출을 장려하면서 ‘디자인을 섞어야 가치를 높일 수 있다’해서 포장에서부터 패키지에 힘을 쏟았습니다. 1970년에 시작된 디자인진흥원의 초기 명칭이 ‘한국디자인포장센터’인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디자인은 반드시 마케팅이 필요하죠. 그래서 같이 성장한 겁니다. 그렇게 출발한 나라가 미국, 일본, 한국입니다. 유럽은 좀 다르죠.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그들은 그전에 뿌리깊은 디자인 마인드가 있습니다. 그것이 공예정신이고, 건축과 공예가 서로 밀접하게 융합된 형태입니다. 미국, 일본, 한국은 철저하게 분리돼 있고요. 한국에서 공예 분야가 분리되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입니다. 사실 그 전에는 같이 가는 개념이었는데, 어느 순간 ‘공예는 핸드메이드(handmade)고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디자인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 뿌리는 크라프트(craft, 공예)입니다. 기계가 없을 때는 전부 손으로 했잖아요. 스칸디나비아나 유럽국가들은 계속 같이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양은 많지 않지만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값을 받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와 별개로 근래에 신진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사회적, 공익적 디자인을 외치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외 열악한 환경에 처한 나라를 돕는 디자인 움직임이 커졌는데, 그건 하나의 무브먼트 개념이라고 봅니다.  

Jungle : 대중이 크라프트 제품의 가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상업화의 반발 혹은 기조의 가치를 따르려는 자연적인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까요?

현재는 디자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물질이 풍부합니다.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추어져 있죠. 그만큼 대량생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품에 정을 못 느끼고, 쉽게 쓰고 쉽게 버립니다. 옛날에 물건이 귀할 때는 약병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시 재활용했는데 말이죠. 동남아시아나 물자가 부족한 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재활용해서 사용합니다. 그렇게 절실한 삶의 필요에 의해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크라프트(공예) 제품에 기꺼이 돈을 30%, 50%, 100% 더 주고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후자는 그 가치를 높이 산 거죠. 한국도 다시 크라프트가 디자인과 접목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가령 문광부 산하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은 2010년 4월 디자인문화진흥원과 통합해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도 디자인만 외치다가 서서히 공예를 붙이고 있고요. 우리나라도 서서히 그런 움직임이 보이는데, 늦은 감이 있습니다.

Jungle : 이런 움직임이 현 디자인 담론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가요?

맞습니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관계자들이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을 디자인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겁니다. 작품에 대한 접근도 핸드메이드와 머신메이드 개념으로 분류해야지 대량, 소량 개념으로 나누면 안 됩니다. 과거에 디자인과 공예를 얘기할 때, 대량 생산은 디자인이고 소량 생산은 공예라는 식으로 분류했죠. 그러나 디자인의 질을 높이려면, 장인정신(craftmanship), 장인(master)의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보통 디자인은 원형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나 기계가 만들 수 있도록 합니다. 그것이 디자인의 생리입니다. 반면 일품 공예나 작품 공예는 반드시 자신이 만들어야 하죠.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상업적 공예, 생산적 공예는 자신이 만들지만, 다른 사람도 만들 수 있도록 시스템화합니다. 기계가 부족한 나라 혹은 기계는 많아도 수공을 요하는 분야는 그렇게 생산하죠. 최고급 가방이나 프리미엄 자동차 시트, 심지어 자동차도 핸드메이드로 만들지만, 공예라고 하지 않고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Jungle : 국내 최초로 산업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수백 개의 히트 디자인을 선보인 산업디자이너였는데, 방향을 틀어 공예 디자인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즉흥적인 이유와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가벼운 이유는 1993년경 제가 산업디자인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영국 디자인뮤지엄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제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서, 20개 정도 골라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특별전이 있을 때 전시해주겠다는 소식이었는데, 그날 회사는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디자인한 제품디자인이 40개 정도 됐는데, 결론은 하나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살피면서 제 작품이 해외 제품과 어딘가 닮아있고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동종 제품보다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니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너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만 한 거죠. 제품에 우리의 정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병수를 대표할 만한 것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돈만 벌 것인가, 돈은 좀 못 벌더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얼굴, 우리의 색깔을 찾을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죠. 결론은 산업디자인 비중을 줄이고 우리 것을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얼굴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우리 것을 돌아보자 생각했고, 창피하게도 역사박물관을 일 년에 한 번도 안 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토요일마다 박물관 찾아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1년 하다 보니 조금씩 작품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샘플도 만들고 공부하면서 5~6년 준비한 후, 2001년 ‘VIUM(비움)’을 런칭했습니다.

인사동 가면 민예품 등 많은데 우리는 그 길로 갈 건 아니었습니다. 현대 디자인을 한 사람으로서 한국 문화와 장인정신, 현대 디자인을 접목하고 싶었죠. 지향하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현대디자인과 크라프트의 융합, 둘째, 동과 서의 만남(쓰임에 있어 동과 서를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대량생산과 핸드메이드의 조화입니다. 전통에 기반한 현대화, 옛것 그대로가 아니라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크라프트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일 때문에 동남아시아 8개국을 돌던 중 명품처럼 고급스러운 것도 좋지만,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핸드메이드야 말로 근본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디자인과 공예가 별개가 아니듯 장인정신이나 독창적인 전시, 디자인은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는 상생 관계로 이해해야 하죠. 저는 디자인의 이해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ungle : 현재 디자인을 하는 학생이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거에 정보가 한정돼 있던 시절에는 자신이 가구 디자인을 하면, 가구관련 서적만 봤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면 자동차 디자인에만 관심을 뒀고요. 대부분 자기 영역 관련 자료만 봤습니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5년, 10년 내내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영감을 떠올릴 때 자신이 본 것에 기반합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은 자기 분야를 벗어나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을 보면 여행을 자주 갑니다. 아프리카 모티브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거죠.

정체성을 가지려면 첫째, 자기만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참고 도서나 관련 자료는 비슷해서 다 같은 길로 안내합니다. 유사해질 수밖에 없죠. 자기만의 인풋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만의 색깔이 나타납니다. 둘째,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의도적으로 의식해야 합니다. 나만의 언어를 찾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모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죠. 의도적으로 다르게 하려고 다들 동그라미라고 하는데 억지로 세모를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셋째, 주변 코멘트나 클라이언트 요청대로 디자인하기보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자기만의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정체성이 생깁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노력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자기 흔적은 남기지 못한 채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물론 근무하는 곳에 따라 흔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대기업에서 휴대폰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자기 흔적을 남기겠다고 자기 취향대로 데코레이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기만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야 발전이 생깁니다. 더군다나 혼자 하거나 그룹으로 하는 스튜디오나 집단에서는 정체성이 없으면 일이 안 됩니다. ‘저기 가면 일이 빨라’, ‘저기 가면 그림 하나는 잘 그려줘’와 같은 손이 되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되는 일을 못하는 거죠.  

Jungle : 앞서 디자이너가 독창성과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과거에는 디자인 수업이 몇 개 없고 획일적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마다 다르지만, 미국 디자인 방법론을 배워야 했죠. 지금은 여건이 많이 다릅니다. 인터넷이 오픈돼 있어서 누구나 전 세계 강좌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 학생도 있습니다. 선생마다 다양한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디자이너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너의 독창성과 창의성이고, 정체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들은 사람과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생각보다 많다)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처음 스튜디오를 오픈한 후배나 제자들이 주로 하는 얘기는 ‘일이 없다’ 인데요. 여기저기 선배를 찾아다니면서 일을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일단 회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인데, 초기는 괜찮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쫓아다니는 시간에 혼자 연습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게 장기적으로 좋다고 조언합니다. 20년 넘게 컨설팅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느낀 거죠. 자기만의 장기가 있어야 클라이언트가 옵니다. 사실 다 알고 있지만, 닥치면 잊어버리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렵죠. 하지만 몸집을 줄이고 조금 가난하더라도 부단히 노력하고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이야말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값진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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