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1
19세기 후반, 철제와 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 건축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20세기 후반 플라스틱의 등장은 제품 디자인사에서 이에 못지않은 테크놀로지의 승리로 받아들여졌다. 플라스틱은 그 어원(그리스어로 플라스티코스(Plastikos):성형하기에 알맞음)처럼, 무엇이든 임의의 형태로 변형이 가능했다. 플라스틱 물통은 아연 물통을 대신했고, 플라스틱관은 동 파이프와 금속 기구를 대체했다. 이렇듯 생활 속 ‘금속의 대리자’였던 플라스틱은 곧, 나무나 대리석 같은 천연재료를 넘어 지금은 인간의 모습까지 흡사하게 모사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글 | 신서영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1. 플라스틱 풍경 - 재료공학의 승리
플라스틱의 등장에 대하여 디자인 분석가 피터 돌머는 ‘다른 재료의 형태로 분장될 수는 있지만, 나무나 종이가 가진 냄새나 광택 같은 진정한 촉감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촉각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가공성은 조경설계가와 디자이너로 하여금 플라스틱을 실내에서 실외로 확산하여 활용케 했다. 그 중 플라스틱 구조재인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는 국내에서 70-80년대에 공공 공간의 친수공간 확충에, 95년 이후에는 아파트 단지 내 수경시설 도입이 일반화되면서 애용되기 시작했다.
79년 김포 가도에 설치된 ‘양화 인공폭포’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평지에 F.R.P. 바위산을 설치하고, 12m 높이의 폭포와 분수시설을 도입하여 준공 당시 동양 최대의 인공폭포라 선전되었다. 볼거리가 귀하던 시대에 이 폭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포 공항이 국제공항이던 시기, 인공 폭포는 외국인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자랑거리로 받아들여졌고, 주말에는 많은 시민들이 이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나왔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스펙터클의 소박한 시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양화 인공폭포를 기점으로 조경에 폭포가 많이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1997년에는 ‘실재(實在)’하는 산을 기둥삼아 등장한 51m의 용마인공폭포가 준공되었다. 용마폭포는 그간의 양화 폭포를 한순간에 미니어처로 느껴지게끔 만드는 규모였다. 천연을 닮은 플라스틱 풍경의 위용. 인간이 만든 자연의 아우라. 그것은 적잖은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2. 미완의 산수화 - 용마폭포공원의 조형
용마폭포공원은 아차산의 최고봉인 용마산(龍馬山) 중턱에 위치한다. 힘들게 등반하지 않아도 용마산 역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 사잇길로 5분여를 걸어 들어가면, 장방형의 잔디축구장과 테니스장, 그리고 3개의 폭포와 작은 광장으로 이루어진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수직면 _ 바위 절벽과 폭포
축구장 옆 폭포로 향하는 나지막한 오르막길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폭포수가 아닌 거대한 바위 절벽의 단면이다. 정상까지 족히 100m에 달하는 이 단면은 신기하게도 7~8층의 계단처럼 깎여 올라간다. 계단의 수평면에는 관목과 교목이 빽빽이 들어 서 있고, 수직면에는 거친 표면을 감싸듯 나무 덩굴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심지어 덩굴은 인공 폭포수의 길목을 위해 덧붙여진 F.R.P. 바위 위에도 슬금슬금 내려앉아 천연과 모조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사실 층층으로 깎인 입면은 자연적 풍화작용이 아닌 험난한 역사의 결과이다.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60년대에서 88년까지, 이곳은 도로의 기초공사에 들어가는 골재를 채취하기 위한 채석장으로 쓰였다. 채석장의 역할을 한 용마산의 한 단면은 속살을 드러낸 채 방치되어 있었고, 이후 90년에 들어 황폐하게 버려졌던 산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녹생토(특수 제조된 식생재료를 비탈면에 고정된 그물망 사이에 부착하여, 식물이 생육할 수 있도록 하는 녹화공법)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흉하게 드러났던 벌거벗은 입면은 오히려 최근에 신식 집합주택과 빌딩들이 공들여 조성하려 애쓰는 계단식 정원의 원형처럼 치유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 용마돌산공원이라 불리던 이곳은 97년 3개의 인공폭포와 축구장, 정자 등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을 확충하면서 용마폭포공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최신식의 다양한 수경시설 중에 왜 하필 폭포를 택했나 하는 의문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바위 절벽의 위엄으로부터 쉽게 풀린다. 아마도 공원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돌산 앞에서 자연스레 조선시대 산수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산봉우리에서 시작하여 짙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굽이치고, 다시 암봉(巖峯)을 만나 낙하하며 부서지는 세찬 물줄기와 그 아래 큰 바위에 앉아 유유자적 이를 감상하는 선비의 모습.... 산수화에서뿐만 아니라 송강 정철의 가사에서, 그리고 시의 단골소재로 등장했던 풍광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이곳에 폭포를 더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은하수를 촌촌히 베어 냈다‘는 표현, 이 때 은하수는 무엇이냐는 질문은 국어 고전 시험의 단골 문항이었고, 한국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이 시조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수평면 _인공호수와 고무트랙
용마폭포의 F.R.P.바위는 가까이 다가가 두드려 보지 않으면 인공인지 눈치 채기 어려울 정도로 감쪽같다. 그러나 그 위용 있는 바위의 실체는 잘 다듬어진 기하하적 곡선의 시멘트 판 위에 얹혀 바닥과 경계를 짓는 지점에서 허무하게 드러나고 만다. 폭포가 떨어져 고이는 바닥도 모래와 자갈이 아닌 파란색 시멘트가 대신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초기 수경시설(70년대부터 활성화, 73년 개장한 어린이대공원 분수대에서도 발견된다)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감 방식으로, ‘파랑=시원함’이라는 일차원적 연상 작용의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같은 방법을 고집한 탓에, 폭포가 주는 시원함과 상쾌함은 시멘트 바닥에 맞닿는 순간 여지없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시멘트 호수 너머로는 주황색, 초록색의 우레탄 고무 트랙이 깔린 원형광장이 있다. 본래 잔디밭이었으나 2009년경 관리상의 문제 때문인지 고무로 바뀌었다. 인라인 스케이트장으로는 잔디보다 적합할지 모르겠으나, 바닥의 메마른 물성과 푸른 절벽은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트랙 위에는 그늘막이 없어 한여름에는 5분도 서 있기 힘들다. 트랙 둘레를 따라 2~3개의 정자가 있지만, 위치상 폭포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어 관광객의 시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편에 밀어놓은 듯하다. 한 여름의 낮 용마폭포공원을 찾았을 때, 공원의 방문객들은 대부분 폭포 앞에서 잠시 시원히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늘을 찾아 정자 밑으로, 혹은 근처 놀이터로 발길을 옮겼다. 폭포 가까이에 있는 정자라 할지라도 그곳에 들어가 있으면, 폭포에 대한 시각적 감상은 포기해야 한다. 단지 폭포의 낙하소리에 만족한 채 고무트랙을 바라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트랙 위에서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도 햇볕을 피해 놀이터로 사라지고,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폭포공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한 마디로 천연적인 수직면과 인공적 수평면이 어색하게 조우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장쾌한 폭포 소리에 시선을 움직이다 보면 허공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그려진 화폭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억지로 내몰린 것 마냥 혼란스럽다. 사람의 휴양과 놀이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이 꼭 자연을 모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절경과 청각적 매력을 앞에 두고, 편히 앉아 감상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면 상실되는 공간의 가치가 아쉽지 않겠는가.
3. 머무름을 위한 요소 - 그늘과 의자, 사람들
잠시 뉴욕 맨하튼의 팰리 파크(Paley Park)와 그린에이커 공원(Greenacre Park)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이 두 곳은 폭포시설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공공장소이다. 용마폭포공원과는 규모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포켓 파크(vest-pocket park:(美)시내의 소공원에 해당)지만, 이용자들이 높은 만족도를 드러내며 미국 내 인기 공원 조사에서 함께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곳의 폭포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거나, 최신 기술로 구현된 인터렉티브한 기능을 선보이는 것도 아닌, 그저 낮고 평범한 벽천이다. 하지만 정작 폭포는 작아도 폭포의 청각적 매력과 함께 하는 주변 조경, 즉 그늘을 만드는 나무와 생태 울타리, 화단, 아무데나 옮겨가면서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이동식 의자는 사람들이 이 곳을 이용하게 하는 주요 장치다.
수목은 차치하고서라도 의자가 사람을 모으는 데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PPS(Project for Public Spaces:공공공간을 연구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는 많은 공공공간이 실패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앉기 편한 장소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평면적인 배치도 중심의 공간 설계에서 이 문제는 간과되기 쉽다. 벤치의 확보뿐 아니라 원하는 방향을 향해 앉을 수 있는가, 지붕 또는 그늘막이 있는가, 원하는 사람과 모여 앉거나 혹은 떨어져 앉을 수 있는가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동식 의자는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사람과 앉을 수 있는 매력적인 시설물이다.
앉을 자리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자신의 가방 위에 앉도록 강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잠깐의 수고로움이 장기적으로 공간의 이용률을 떨어뜨리고, 외면 받게 할 수 있다. 반면, 편안하고 청결한 앉을 자리는 사람들을 오래 머물게 하고, 그곳이 안전한 장소로 인식되도록 한다. 도시설계가 윌리엄 화이트(Whyte, William H.)는 안전을 어떠한 감시 장치보다 잘 나타내며, 공간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결국 아무리 아름다운 조경이라 할지라도, 쉬거나 앉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시각만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머물게 하지 못하고, 이로서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는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유사한 이유로 환경을 개선한 국내 사례로 건축가 정기용이 설계한 무주 등나무운동장을 들 수 있다. 이곳은 주민을 위한 운동시설이자 공적인 행사가 열리는 공설운동장이었으나,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없는 관중석 때문에 주민들이 이용을 꺼렸다.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군수는 등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건축가는 경관을 막지 않는 경량 철골 구조물을 설치하여 나무가 기댈 수 있게 하였다. 나무는 곧 구조물의 사이를 따라 가지를 뻗었고, 봄에는 등꽃을 드리워 친환경적이고 다변적이며 효율적이기까지 한 파고라가 되었다. 식물에 뒤덮인 구조물은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1년이 지나자 등나무운동장은 주민들이 잔치를 벌이고, 영화 관람을 하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다시 용마폭포공원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그곳은 사람이 허물었던 자연을 다시 사람이 치유했다는 점에서 의미 깊고, 감동적인 절경마저 얻었다. 그러나 그것뿐, 그 웅장한 폭포는 그림 속 풍경으로 남을 뿐이다. 현재 용마폭포공원의 시설 환경은 관망, 휴식, 사회적 교류 중 어느 것도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구경을 위한 찰나의 장소이기를 바란 것일까. 아니면 공사 기간에 쫓겨서, 혹은 행정력의 과시를 위한 도구였을 뿐일까.
이는 꼭 용마폭포공원 뿐이 아니라, 랜드 마크라고 이름 붙여진 수많은 도시의 조경시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신 기술과 거대한 규모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명성이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하는 것은 단지 기술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도시 내 많은 공공 공간이 폭포와 분수, 각종 조명으로 그럴싸한 장관을 만들어놓고도 몇 년이 지나면 새롭게 등장한 곳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반면, 위에서 보았던 몇몇의 소박한 공간이 주는 교훈은, 도시 조경이 관람의 대상으로서 사람과 거리를 두기보다, 그들과 어울려 편안하게 소통하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시민들은 더 이상 외형에서만 ‘세계 최초’, ‘세계 최대’ 등을 표방하는 대문자 디자인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디자인이 삶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영역에서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머무는 공간’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대화하며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건조 환경의 형태가 사회적 관계의 형성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어와 월치(Dear and Wolch)에 의하면 지역의 특성이 주거지 형태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사회적 관계는 공간을 통해 형성될 수 있고, 공간에 의해 계획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사회적 관계를 확장시켜 나간다면, 진정한 공공디자인의 이상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 개선, 주체적인 시민상의 정립이라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용마폭포공원은 이제 머무름 통한 사색과 소통의 장소로 변모해야 한다. 머무름을 유도하는 것은 폭포소리에 다른 생물과 인간의 웅성거림까지 더해 공간을 생동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장치가 자연의 모사물이 아니더라도 그에 어울릴 수 있도록 재해석된 디자인의 결과물이라면, 공원이 아쉬워했던 효용성과 관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제야 공원은 ‘쉼’이라는 공원의 가장 큰 미덕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트랙 위로 내리쬐는 뜨거운 볕 아래에서도, 가동시간에 맞춰 낙하하는 폭포의 맑고 서늘한 기운은 여전히 도심 속 청량제로서 용마폭포공원의 가능성을 호소하는 듯하다.
* 참고문헌
피터 돌머,『현대디자인의 의미』, 1996
서울시,「친수공간 디자인 개발 및 활성화 방안연구」, 2009
Whyte, William H.『City:rediscovering the centre』, 1988
맬컴 마일스,『미술, 공간, 도시』, 2001
PPS,『좋은 장소를 만드는 방법』, 2008
강홍빈 외,『도시설계_장소 만들기의 여섯 차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