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2
얼마 전 열린 남북회담에서 두 정상이 얼싸안은 장면이 큰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기차로 유럽 황단을 할 수 있는 가상 티켓이 만들어지는 등 관계회복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정말 곧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다가오는 걸까?
지난 6월 성수동에 위치한 프로젝트 렌탈에서는 ‘평양슈퍼마케트’라는 이름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브랜딩 전문회사 필라멘트앤코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이 팝업스토어는 남북이 개방되었을 때 우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문화생활을 즐기고,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기획되었다.
핑크색 패키지의 틴 케이스 안에는 젖캔디, 손가락 과자 등의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의 과자들이 들어 있었다. 이는 실제 북한 제품이 아닌 새터민들이 직접 만들고 필라멘트앤코가 패키지를 담당한 과자들이다.
재미있는 이름은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그것도 수도인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평양슈퍼마케트.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를 디자인의 힘으로 재미와 공감을 끌어낸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를 만나보았다.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Design Jungle)
안녕하세요. ‘평양슈퍼마케트’ 이야기에 앞서 프로젝트를 기획한 필라멘트앤코 소개 부탁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주로 브랜드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내놓는 브랜드의 전략부터 디자인, 브랜딩까지 프로젝트 전체를 맡아 진행합니다. 대표적으로 서비스 콘셉트 개발부터 도맡아 진행한 골프존, 레디큐와 아프니벤큐 같은 신제품은 기획부터 브랜드 전략, 네이밍까지 진행했습니다.
또, 커피숍과 레스토랑 등의 브랜드 런칭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F&B는 그 어떤 디자인영역보다 고객 피드백이 빠르게 오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그만큼 무서울 정도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2016년에 통일박람회에서 ‘평양커피’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후 2년 만에 다시 평양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가 있을까요?
‘평양커피’는 제가 통일부 민간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취지나 반응이 좋았기에 조금 더 확장된 프로젝트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외적으로 여건이 좋지 않아 더 진행하지 못하다가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다시 ‘평양슈퍼마케트’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첫 시작이 커피였어요.
처음부터 북한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국민디자인단으로 활동할 때 자문이 통일부였어요.
통일부를 자문하다 보니 ‘젊은 사람은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조사를 더 해보니 관심이 없다기보다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앞이든 뒤에든 통일이라는 단어가 조금만 잘못 붙어도 분쟁이 일어나니까요.
무작정 통일을 이야기하기보다 북한을 좀 더 알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 사람 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래서 우리 일상에서 하루를 여는 아이콘인 커피를 매개체로 한 번 조금 편하게 스토리를 풀어보자 했어요.
실제로 북한 사람들은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평양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평해튼’이라고 불릴 만큼 소비수준이 높다고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과 다른 모습이었죠.
낯설지만 재미있고 정겨운 과자 이름들. 실제 북한에서 사용 중인 단어를 사용해 지었다. 딱친구는 절친을 뜻한다.(©Design Jungle)
매장이 온통 핑크빛이에요. 북한 하면 적붉은색이 떠오르는데 의외였어요.
저희가 평양커피를 처음 기획했을 때는 북한에 대해 잘 몰랐어요. 가본 적도 없었으니깐 버건디 레드 같은 색상만 떠올랐어요.
지난해 영국 파이돈에서 출판한 〈메이드 인 조선〉을 나오자마자 구매해 읽었어요. 읽다 보니 오히려 국기 컬러를 제외하고 붉은 컬러는 거의 없었어요. 너무나 컬러풀하고 심지어 핑크한(파스텔 컬러) 느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레드 색깔 자체부터가 북한에 대해서 잘못 생각 하고 있구나’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콘셉트 컬러를 핑크로 잡고 디자인을 진행했습니다.
영국 파이돈에서 출판한 〈메이드 인 조선〉이 전시되어 있다.(©Design Jungle)
제품 패키지도 눈에 띄지만, 포스터들도 디자인이나 카피가 재밌어요.
북한 프로파간다 포스터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컬렉터도 많고 인터넷에 많이 퍼져있어요.
인터넷을 통해 포스터를 구한 후 정치색이 강한 것들을 제외하고 다시 리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원본 프로파간다 포스터에는 직관적인 제스처들이 많아요.
그 소스를 가져오는 대신 카피를 ‘우리의 적 마셔서 없애자’ ‘오늘도 삽질 중 업무의 산’ 등 젊은층이 공감할만한 일상생활과 관련된 재미있는 것들로 적었습니다.
북한이라고 하면 선입견을 품는 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팝업스토어 반응은 어떤가요?
2년 전 ‘평양커피’를 선보였을 때는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한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프로젝트 오픈 이틀 전까지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를 오픈하니 단 한 명도 거부감이 없었어요. 무겁고 딱딱하기보다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 컸던 거 같아요.
북한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위트있게 재해석했다.(©Design Jungle)
프로젝트 끝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보기 예쁘게 만드는 게 디자인이 아니에요.
저는 디자인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디자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평양슈퍼마케트’도 사람들이 이런 재미있는 시도를 한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기억해줬으면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딴짓을 많이 하고 있어요.(웃음) 지금 프로젝트 렌탈은 ‘평양커피’와 ‘평양슈퍼마케트’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지트처럼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7월 한 달간은 독립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이 팝업스토어를 열어요. 이곳에서는 약간은 실험적인 콘텐츠들을 선보일 거 같아요.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쵤영협조_ 필라멘트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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