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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왜 하필 ‘몸’일까?

2018-08-30

 

19세기 중반 사진이 발명된 이후 사진은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을 묘사해왔다. 전반적인 예술 관점에서 몸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사진의 역사 속에서 사진가들이 그려낸 몸은 어떠한 패러다임과 함께 전환되어 왔는지를 정리했다. 


여성에 대한 환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로베르 드마시(Robert Demachy)의 <Dans les Coulisses>, 1900년 즈음 ⓒ Lee Gallery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니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몸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단지 인간의 이성과 영혼을 담는 ‘그릇’ 정도로만 취급될 뿐이었다. 이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몸을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취급하는 생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세상에 공개되면서부터다. 니체는 몸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보았다. 몸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규정했던 과거의 이원론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몸을 사회성과 정치성에 근거해서 바라보았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역시 몸과 정신은 서로 연결되는 상호교류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몸으로 인간의 정신, 영혼 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에서는 어떠했을까.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은 몸의 이원론적인 사고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몸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허물고, 내면의 것을 상상하여 표현하는 하나의 캔버스가 되었다. 이제까지 ‘의식의 경계에서 소외되었던 것들이 표출되면서 몸에 대한 갖가지 실험들이 행해지는 장소가 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며 빈번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작가로 생 오를랑(Saint Orlan)을 꼽을 수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신체를 과감하게 변형시키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작가다. 그녀의 작업은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몸에 대한 경계를 해체한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예술과 첨단의학기술을 융합한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현대미술에서 몸은 인간 특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표현해내는,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이 가능해진 공간이 되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의 역사를 통틀어 몸이라는 대상은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예술적 소재로 변화되어왔을까. 그것을 차근차근 살펴보다 보면 ‘몸’을 바라보았던 작가들의 의식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진 역사 속 몸을 만나본다. 

 

극장용 포스터의 대가 나폴레옹 사로니(Napoleon Sarony)의 <Advertisement for Sarony's Photographic Studies>, 1880년

 

사진과 몸의 결정적 만남
사진이 발명되기 전 초상화를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과 같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초상화 하나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귀족만의 소유물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신분을 구별 짓는 수단 중 하나였다. 이처럼 초상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체이자,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사진이 발명된 후 사회 계급구조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 수준의 사람들만이 초상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게레오타입의 비싼 제작비용 탓이었다. 한 장의 다게레오타입 초상사진을 위해선 오랜 노출 시간이 필요했고, 은판을 보호하기 위해선 좋은 가죽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특정 계급이 초상사진을 독점하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노출 시간 단축, 복제 가능한 음화 발명 등의 기술 발전이 초상사진의 대중화를 이끈 것이다. 이로 인해 19세기 말 초상사진 스튜디오 숫자가 증가했고, 초상사진을 촬영하는 인구 또한 늘어났다. 코닥(Kodak)의 설립은 초상사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누구나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카메라를 생산했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는 사람들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처럼 사진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는 계급 간의 간극을 좁히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정 계급이 아니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의 흔적을 사진에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적 통제 수단
그렇다고 몸을 기록한 사진이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이룩해놓은 것은 아니다. 몸 사진은 19세기 유럽 강대국의 식민정책을 유지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식민지 원주민들의 몸을 측정하거나 통제하는 데 사진을 사용한 것이다. 신체 옆에 팔, 다리 등의 길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긴 자를 배치한 다음 전신, 반신, 정면, 측면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몸 사진이 식민정책과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 셈이다.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가 촬영한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자’ 사진, 데이비드 베리(David Barry)의 <레드 피시>(1885)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몸 사진은 신원을 증명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을 분류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사진에 기록된다는 것은 곧 관찰과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객관성과 진실성을 담보한다는 사진의 신화가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 전치되는 지점이다. 

 

움직이는 누드의 태동

비슷한 시기 에드워드 머이브릿지(Eadweard J. Muybridge)의 사진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는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엡솜의 경마>가 잘못된 그림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연속사진의 대부’다. 그런데 그가 집중한 소재가 ‘몸’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1885년 머이브릿지가 촬영한 사진은 당시 유행하던 누드사진과는 결이 다르다. 여성성, 남성성보다는 태초의 인간을 탐구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한 사진이 아닌, 옷을 입지 않은 사람과 동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연속적으로 나열한 그의 사진에선 오히려 인체의 신비를 사실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억눌린 남성성을 분출하기 위한 통로’라고 평가받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조지아 오키프 사진

 

관음증적 욕구를 해소하라
사진의 강점은 회화와는 달리 신체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의 재현력은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다. 몸을 에로틱한 감성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히, 1850년대 초반에 활동한 대다수의 사진가들이 여성의 신체를 미적인 대상으로, 또 에로틱한 대상으로 표현하기 바빴다. 당시 이러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가이거나 인쇄업자들이었으며, 이들의 사진은 ‘표면상’ 동료 예술가들에 의해 사용됐다. 하지만 화가들을 위해 촬영된 누드사진이 포르노그래피로 둔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진 가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음증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사진들을 구매했다.


19세기 후반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큰 노력을 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회화에서 사용하는 기법을 차용했고,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같은 이즘(ism)을 사진에 반영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사진가들은 회화주의에서 탈피, 스트레이트사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개척한다. 아무런 조작 없이 선명한 초점과 풍부한 흑백 계조를 살린 당시 사진은 회화주의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과 진배없었다. 


대표적인 사진가로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과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를 꼽을 수 있다. 웨스턴은 여성의 몸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사진가다. 사람의 몸을 정물처럼 묘사한 조형성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성의 표정을 배제한 채 몸을 강조한, 사진 역사상 최고의 누드사진으로 평가받는 <Nude>(1936)를 보면, 여성의 몸에서 신비스러움을 넘어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다. 

 

여성을 타자로 인식한 브라사이의 <Odalisque>(1934~1935)

 

한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의 연인이었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촬영했다. 토르소를 떠오르게 하는 그의 사진은 전통 누드사진과는 달리 실험정신이 강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지만 음모를 노출한다든지, 보는 이의 시선이 가슴에 직접적으로 향하도록 하는 포즈를 취하게 한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들은 스티글리츠의 과감한 누드사진에 관해 ‘억눌린 남성성을 분출하기 위한 통로’라고 분석한다.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은 여성 신체를 묘사했던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 반기를 든 여성 사진가다. 여성의 몸을 에로틱한 대상이 아닌, 하나의 조형물로 인식했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에드워드 웨스턴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남성의 누드사진도 촬영했는데, 여성을 촬영한 사진과 마찬가지로 조형성을 강조했다.

 

인물의 몸짓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던 도로시아 랭의 <Alabama Plow Girl, near Eutaw, Alabama>, 1936

 

무의식을 몸에 반영하다
초현실주의는 ‘사람 마음속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식이 있다’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비합리성과 무의식 개념에서 영향을 받은 사조다. 반(反) 예술인 ‘다다’에서 시작된 운동이긴 하지만, 예술에 반대하기보다는 무의식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무의식, 금기, 성 등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초현실주의 사진 역시 여성과 성적인 요소를 결합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작품 속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투사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졌다.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뮤즈였던 셈이다.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는 뒤틀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여성을 촬영해 변형된 이미지를 얻었지만, 이는 여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또한, 브라사이(Brassai)는 <여성 노예(Odalisque)>(1934~1935)라는 작품을 제작했으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영향을 받은 만 레이(Man Ray)는 여성을 ‘타자’로 인식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결의 작업을 했던 초현실주의 사진가도 있다. 빌 브란트(Bill Brandt)는 만 레이의 제자였지만, 동시대 사진가들보다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초광각렌즈를 활용해서 완성한 사진집 <Perspective of Nude>(1961)를 눈여겨 볼만하다. 원근법을 실험하는 듯한 구성을 통해 여성의 곡선을 독특하게 그려냈으며, 여기에 유머러스함까지 가미했다.

피부색에 따른 계층을 이야기한 캐리 매 윔스의 <Magenta Colored Girl>, 1953

 

사진 속 남성의 몸은 자연스러웠을까?
그렇다면 남성의 몸은 어땠을까. 남성을 촬영한 모든 사진이 아무런 편견이나 왜곡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 <사진에 나타난 몸>의 저자 존 퓰츠(John Pultz)가 예시로 제시한 1920년대 루이스 하인(Lewis Hine)이 촬영한 <Bolting Up a Big Turbine>(1920년대)을 살펴보자. 하인은 이 사진이 신체와 힘의 연관관계를 말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나사를 죄기엔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 힘을 이야기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남자는 사회개혁자인 루이스 하인에 의해 모델로 섰던 것으로, 사진에 표현된 것은 남자의 주체성이 아닌 그저 몸일 뿐이다.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사진에서도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다. 잔더는 사회분석학자처럼 사진을 통해 사람의 몸과 직업을 분류했다. 하지만 이는 연출에 의해 탄생한 사진이다. ‘몸이 선천적으로 개인의 직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자아와 자신의 성, 직업의 연출에서 중심된 자아가 고정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 뒤엉켜 혼재하는 포스트휴먼의 특징을 보여준 매튜 바니

 

대공황 시기 사진가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나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신체에 주목했다. 인간의 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사회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워커 에반스(Walker Evans)는 인물과 주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무표정하게 촬영해서 보는 이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은 에반스와 마찬가지로 FSA 소속이었으나, 사진만큼은 에반스보다 극적이었다. 에반스와는 달리, 랭은 인물의 몸짓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고든 파크스(Gordon Parks)는 흑인과 백인 인형을 병치해 인종차별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주목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1970년대 전후로 여성운동의 성격이 달라졌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 시기 여성운동은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에 주목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했던 과거의 여성운동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예술과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불평등한 남녀 관계가 불평등한 몸의 표현을 야기한다’라는 인식에 기반한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의 몸이 남성 욕망에 종속되는 것을 비판했다.

 

또한, 남성의 시각적 쾌락에서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할 것을 주장했다. 여성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매체에서 벗어나 몸, 비디오아트, 행위예술 같은 새로운 매체를 작업에 활용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몸을 작업 소재와 매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 주체적으로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 예술가들은 인종 차별, 신체 폭력 등을 미술이란 영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 가운데 사진은 여성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의 <인테리어 스크롤(Interior Scroll)>을 기록한 사진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사진은 사회적 관습으로 인해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도록 만든 여성 신체의 한 단면을 나타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퍼포먼스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진 한 장만 보더라도 슈니먼이 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 빌케(Hannah Wilke) 또한 몸을 이용한 행위예술을 사진으로 남겼다. 씹던 껌을 여성의 성기 모양처럼 만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남성의 응시 아래 놓여 있는 여성 몸에 대한 심리학적 물신숭배를 신체적, 시각적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진가로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있다. 비록 1990년대 이후 변형된 신체를 작업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전에는 여성의 정체성을 논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성에게 덧씌워진 ‘스테레오타입’을 고발한 <무제 영화 스틸>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씹던 껌을 여성의 성기 모양처럼 만들어 작업한 한나 빌케

 

예술성과 진실성에서 시대성과 표현성으로

1920~30년대 모더니스트 사진가들은 자신을 객관적인 관찰자로 생각했지만, 1970~80년대 사진가들은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미명아래 예술성과 진실성 대신, 시대성과 유희성 등을 강조한다. 또한, 단순히 찍는 것을 넘어 만드는 사진이 된 까닭에 더욱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사진에 담아낼 수 있었다. 소재도 눈에 띄게 다채로워졌다. 그동안 금기로 여겨졌던 어린이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것, 동성연애자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것 등이 가능해졌다.


샐리 만(Sally Mann)은 어린이와 사춘기 소녀의 몸을 ‘계획적’으로 배치해 ‘관능적인 여성성’을 드러냈고(열두 살: 어린 소녀의 초상[1988], 친숙한 가족[1992]), 낸 골딘(Nan Goldin)은 관찰자가 아닌 집단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맺는 사진을 보여줬다(자기 방에 있는 케니[1979], 침대 위 낸과 브라이언[1983]). 한편, 로리 시몬스(Laurie Simmons)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연구하고 표현하려 했지만, 작가 자신이 직접 사진에 등장하진 않았다. 시몬스는 가부장적 체계를 비판했으며, 크루거는 이미지와 문자를 결합해 여성의 몸을 응시의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남성을 지적했다. 


인종 문제를 여성의 몸을 통해 비판한 작가도 있다. 캐리 매 윔스(Carrie Mae Weems)는 <마젠타 색깔의 소녀>(1989)에서 피부색에 따른 계층을 이야기했고, 로나 심슨(Lorna Simpson)은 <감시받고 있는 조건들>(1989)에서 공격적인 단어를 이미지와 배치해, 흑인 여성들이 핍박받는 현실을 꼬집었다.

 

시각화된 남성 동성애
1980~1990년대 남성의 몸이 사진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남성의 동성애를 시각화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LGBT 등을 적대시했던 신보수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가 컸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진가로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가 있다. 그의 사진은 ‘모든 종류의 성적인 것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에이즈 시대의 남성 동성애를 표현’한다.

 

에이즈와 남성 동성애를 다룬 사진가들은 그 외에도 더 있다. 니콜라스 닉슨(Nicholas Nixon)과 로잘린드 솔로몬(Rosalind Solomon)은 에이즈로 고통 받는 동성애자의 몸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했고, 피터 위자르(Peter Hujar)는 사진 속 주인공들을 에로틱하게 묘사했다. 동시대 정치문제를 성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도 있다. 그의 작업은 우유와 피, 오줌, 정액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몸을 조작하고 변형하는 현대미술은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를 일컬어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이라고 한다. 인간과 기술의 융합으로 나타나는 미래의 인간상을 의미하는 ‘포스트휴먼’과 ‘미술’이 합쳐진 용어다. 그로테스크한, 기계와 합쳐진, 기형적인 몸 등을 묘사한 현대미술 작품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파격적인 몸이 등장하지만, 페미니즘 미술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페미니즘 미술이 ‘남성 시각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 다시 말해 ‘해방과 전복’을 이야기한다면, 포스트휴먼 미술은 ‘몸을 확장해 사회 구조를 재생산한다’라는 의미가 크다.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육체적 존재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인공지능 메커니즘과 생물학적 유기체 간의 절대적 구분이나 본질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포스트휴먼 시대는 ‘기존의 남/여 구분, 이성애에 기초한 가족 모델과 이에 근거한 공동체 개념, 흑/백 인종 간의 경계’를 모두 뛰어넘을 수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몸’ 이미지를 다룬 전시로는 1992년 열렸던 <Post-Human>이 있다. ‘유전적 변형, 성형수술, 인공지능의 발달을 다룬 이 전시는 ‘예술의 미래와 인간종의 미래가 어떠한 방식으로 교차할 것인지에 대해 제안’했다. 대표적인 현대 작가로는 김준, 손종준, 매튜 바니(Matthew Barney), 스텔락(Stelarc), 오를랑(Orlan), 제네시스 피오리지(Genesis P-Orridge),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이불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퍼포먼스와 조각, 설치 등의 작업을 한다. 현대미술에서 몸을 논하는 데 있어 사진이 더 이상 주체적인 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 | 「A Body-Mind Spirit Model in Health」(Chan C 외), 「경계넘기로서의 몸과 예술적 상상력」(허정아), 「1980~90년대 현대미술에 나타난 몸의 사회정치학」(황명현), 「예술가 신체의 물질/비물질성」(강수미), 「조지아 오키프와 젠더」(신채기), 「포스트휴먼 시대 사이보그 몸 이미지 연구」(문유진), 「프랑스 제2제정기의 초상 사진과 사회·문화적 구별 짓기」(김이정), ‘사진의 역사 속 몸’ 부분은 「사진에 나타난 몸」(존 퓰츠) 일부를 발췌 및 참고했음.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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