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3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영국에서 온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으로 디자인을 통해 북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영국인 니콜라스 보너(Nicholas Bonner)가 수년간 수집한 북한의 우표, 포장지, 만화책, 초대장, 선전(프로파간다) 포스터 등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영국에서 온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
니콜라스 보너는 1993년 북한을 처음 방문했고, 베이징을 거점으로 조선(북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고려 여행사(Koryo Tours)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를 연출했고,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팀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25년간 북한을 여행하며 북한의 일상에서 자신이 접할 수 있는 1만여 점의 컬렉션을 수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 약 200여 점이 소개된다. 컬렉션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제작, 수집된 것들로, 북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의 대표적인 디자인과 패키지들이라고 한다.
전시전경
이번 전시는 2018년 봄, 그래픽아트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국 유일의 공공기관 갤러리인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House of Illustration)에서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영국에서 온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한 이방인에 의해 수집된 컬렉션을 3인칭의 시점에서 풀어내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에서의 전시는 영국 전시와 동일한 공간 디자이너와 큐레이터가 감독하는데, 이는 영국 전시와 똑같이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전시에서는 공산권 국가들의 프로파간다적인 디자인 포맷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북한의 고유 언어와 색감으로 구성한 수작업의 선전화(포스터), 우리 민족 고유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제품 디자인, 평양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 등 북한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시각 문화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포스터. (좌)〈모두 다 염소를 길러 더 많은 고기와 젖을 생산하자〉 Photo ⓒ Justin Piperger, (우)〈친절성! 봉사성!〉 Photo ⓒ Justin Piperger(사진제공: 컬쳐앤아이리더스)
전시는 총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첫 번째 파트 ‘포스터’에서는 컴퓨터 작업 대신 손으로 직접 그린 선전화(포스터)들을 볼 수 있다. 이 포스터들은 만수대 아트 스튜디오와 같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동 스튜디오에서 1975~2008년에 만들어졌다. 농업, 어업, 공업 생산에 기반을 둔 포스터들은 상품의 소비를 장려하기보다는 인민의 이익을 위한 생산을 장려하며,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조선 스타일 디자인’ 전시공간
만화책
식료품 패키지와 고려항공 편의용품 디자인
일반 사람들을 위한 아리랑 매스게임 관람티켓 Photo ⓒ Justin Piperger(사진제공: 컬쳐앤아이리더스)
담배 Photo ⓒ Justin Piperger(사진제공: 컬쳐앤아이리더스)
두 번째 ‘조선 스타일 디자인’에서는 혁명적, 산업적, 자연적 의미의 아이콘을 담은 그래픽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정부 기관의 상징과 전통적인 모티프와 같은 심벌은 북한 디자인에 있어 친숙한 요소다. 다양한 주제로 디자인된 우표, 각종 공연 및 행사 입장권 및 초대장, 근하신년을 기원하는 연하장, 상징적 요소가 포함된 문방용품 등을 볼 수 있다. 북한의 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는 포장지, 군사 이야기가 담긴 만화책, 그래픽 독자성을 보여주는 식료품 패키지, 계층의 특징을 담은 담배 패키지도 눈길을 끈다. 고려항공 기내에 비치된 안내문, 승객을 위한 편의용품, 관광객을 위한 지도 등과 북한 사람들이 착용하는 다양한 배지도 전시된다.
다양한 주제로 제작된 3D(렌티큘러) 엽서
랜티큘러엽서 Photo ⓒ Justin Piperger(사진제공: 컬쳐앤아이리더스)
세 번째 공간은 ‘평양 엔터테인먼트’ 파트로 엽서, 사진 등을 통해 북한의 엔터테인먼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3D(렌티큘러) 엽서는 북한에서 매우 인기 있는 품목으로 전통 민속 무용, 상징적인 건축물, 문화 및 자연 명소 등을 주제로 제작된 다양한 엽서들이 전시된다. 틸트 시프트(tilt-shift) 기법으로 평양의 상징 건축물을 비롯한 평양의 모습, 매스 게임의 장면을 담은 영상작품 〈작지만 큰 세계: 특이한 평양〉(2018, 조어그 데이버 감독, 스푼 필름·고려여행사 제작)도 상영된다.
북한의 2000년대 그래픽디자인을 보여주는 제품들
〈평양 들어가기〉(2014, 제이티 씽 ·롭 휘트위스 감독, 비키 모히딘·고려여행사 제작)
마지막 공간 ‘오늘의 평양’에서는 디지털 이미지로 대체된 2000년대 그래픽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어쩌면 지금도 사용하고 있을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된다. 평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계획된 도시 평양을 담은 영상 작품 〈평양 들어가기〉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와 컬래버로 마련된 평양슈퍼마케트의 팝업스토어
전시장 밖에는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평양슈퍼마케트가 마련돼 있다. 탈북민이 만든 다양한 제품들과 이번 전시를 위한 도록과 엽서, 배지 등이 판매된다.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제3전시실에서 오는 4월 7일까지 이어진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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