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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2019-01-25

 

 

 

다니엘 고든은 이미지를 이용하는 마술사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프린트해 자르고 붙여 3차원 조각으로 재탄생시킨다. 다다이즘 콜라주와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그는 ‘매체작업’ 최전선에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Tropical Still Life, 2012

 

Artichokes and Leeks, 2014

 

 

사진 ‘매체’에 대한 ‘메타(Meta)’ 작업, 즉 매체작업은 ‘사진을 이용한 마술’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한 장의 사진을 구부리고, 자르고, 접는 것을 넘어, 가상공간을 떠도는 이미지에 물성을 부여하고, 사진을 잘게 잘라내어 조각으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2D 이미지를 3D로 재탄생시키는 듯한 느낌이다. ‘포스트 인터넷(Postinternet)’, ‘새로운 형식주의(New formalism)’로 불리는 이러한 ‘매체작업’은 현재 1980년 전후 출생한 북미 사진가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업방식이다. 

 

이들은 아날로그 사진을 공부하다가 디지털로 전환한 세대다. 아날로그 작업을 할 때는 필름과 인화지라는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매체가 존재했지만, 디지털로 전환된 뒤로는 이러한 매체가 없어져 혼란스러워진 이들은 ‘매체’ 자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다니엘 고든(Daniel Gordon)이다. 다다이즘 콜라주와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그는 2014년 <Foam Paul Huf Award>를 수상했으며, 2009년 MoMA의 <New Photography>에 선정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선 윤두현과 윤호진이 ‘매체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매체작업’ 범주 안에 있는 작업들이 소개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다니엘 고든은 ‘밀레니엄 세대’ 작가다. 이는 1980년대 초반 출생한, 휴대전화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바일 세대를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다니엘 고든 역시 아날로그 문화에서 인생의 반을 살았고, 나머지 반을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앞서 말한 북미 사진가들처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그는 ‘아날로그 vs 디지털’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관계에 물음표를 가졌다. 이것이 모티브가 된 그의 작업은 현상과 인화 같은 아날로그 사진 프로세스가 디지털 사진에선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 한 장의 사진이 오직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인지, 2차원의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지 등에 집중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니엘 고든 작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융합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첫 인상은 굉장히 난해하다.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며, 화려한 색감과 패턴은 조잡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그는 유명 작가들의 ‘마스터피스’를 전략적으로 작업에 차용했다. 앙리 마티스 같은 고전 페인팅과 신디 셔먼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작업 접근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관객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면, 자연스레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서도 관심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면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과 문화를 아우르고자 하는 당찬 포부도 있었다.

 

포토샵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

 

다니엘 고든의 작업은 디지털 사진이 만연한 시대, 사진의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극대화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프린트한 다음, 이를 가위와 접착제를 이용해 3차원 조각으로 만든다. 이후 이렇게 탄생한 ‘사진 조각’을 배경지 앞에 놓고 4x5와 8x10 카메라로 촬영한다. 이는 스마트폰 액정과 모니터로만 경험하던 가상공간의 이미지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자, 어쩌면 ‘쓸모 없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이미지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쓸모’를 다시 인정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길 잃은 이미지를 프린트해서 조각으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토샵을 예로 들어보자. 포토샵의 모든 툴은 과거의 물리적인 환경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암실작업을 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들 손으로 직접 버닝과 닷징, 트리밍과 크로핑, 스팟팅을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포토샵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마우스포인터가 손끝 감촉을 대신하고, 작업 환경이 어두운 골방에서 안방 모니터 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암실작업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현대 사진의 기술적인 토대가 이미 아날로그 시절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굳이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작가가 디지털 카메라와 잉크젯 프린터, 포토샵 같은 사진 관련된 요소들을 이용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다니엘 고든에게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그는 ‘좋은 대답’이 없다고 했다. 사진의 정의가 확장되고, 매체 간 경계가 붕괴되는 시점에 굳이 심오한 질문 - 가령, 사진이란 무엇인가? -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사진작업을 만들겠다는 의미. 물론, 전통적인 사진의 매력이야 두 말할 필요 없다. 하지만 담론의 장을 더 확대시킬 수 있는 현대 예술 속에서 사진을 전통이라는 엄격한 틀 안에 가둬둬야만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시대, 우리에게 사진이란 무엇이냐고.

 

Daniel Gordon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사진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가위와 접착제를 이용해 3차원 조각으로 만든다. ‘마티스를 미니멀리스트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가’로 불리는 다니엘 고든은 사진과 조각, 콜라주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danielgordonstudio.com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서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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