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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월드리포트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쾰른 발라프 리하르트 시립 미술관 ‘미국의 300년 미술사 전시’

2019-02-25

유난히 춥고 시린 독일의 올겨울, 움츠린 마음을 열어주는 동화 같은 전시가 열렸다. 핑크빛 배경과 함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1928년작 〈Hodgkin’s House〉가 어우러진 전시 포스터는 마치 나를 동화 속 마법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전시 포스터 ⓒ WALLRAF-RICHARTZ-MUSEUM & FONDATION CORBOUD

 

 

독일 쾰른에서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발라프 리하르트 시립 미술관(Wallraf-Richartz-Museum)에서는 ‘ONCE UPON A TIME IN AMERICA’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미술 역사 300년을 돌아보는 전시를 선보였다. 고딕 교회를 개조하여 설립된 웅장하면서도 담백한 건축구조가 위엄을 더 하는 이 공간에서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근현대미술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미국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유명 회화들은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전시 전경 ⓒ Stefan Swertz, WALLRAF-RICHARTZ-MUSEUM (사진제공: 발라프 리하르트 미술관)

 

전시 전경 ⓒ Thomas Koester, WALLRAF-RICHARTZ-MUSEUM (사진제공: 발라프 리하르트 미술관)

 

 

발라프 리하르트 미술관은 이 특별 전시를 통해 1650년을 시작으로 1950년까지의 미국 미술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혼란스러웠던 식민지 시대를 시작으로 현실주의 체제 속에서 주권을 차지하던 시대가 반영된 작품들, 그리고 추상 표현 주의의 시대가 오기까지 역동적인 회화의 변화와 함께 흘러온 그들의 역사 자체가 온전히 담긴 미술사를 이번 전시에서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대 미국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널리 인정받은 존 싱글턴 코플리(John Copley), 역사 화가 벤저민 웨스트(Benjamin West), 미국인의 고독한 삶의 단면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 추상화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Mark Rothko)까지. 이들의 이름이 한 번에 나열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전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기까지 쾰른시에서는 미국과 유럽 전역의 권위 있는 컬렉션 및 미술관들에서 약 130여 점의 작품을 대여해야 했다. 

 


John Frederick Kensett(1816~1872), 〈Shrewsbury River, New Jersey〉, 1859, Oil on canvas ⓒ The Robert L. Stuart Collection, the gift of his widow Mrs. Mary Stuart

 

Sanford Robinson Gifford(1823~1880), 〈Morning in the Hudson, Haverstraw Bay〉, 1866, Oil on canvas,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Daniel J. Terra Collection, 1993. 11 ⓒ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 Art Resource, NY

 

 

아메리칸드림을 지향하던 미국 화가들 
이 전시를 둘러보는 일은 1650년 식민지 시대의 초상화들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그림의 모티브들은 구 세기의 회화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유럽과의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드림을 고수하던 일부 미국 화가들은 변화보다는 미국 풍경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찬양하였다. 

 

허드슨 리버 화파(Hudson River School)가 주를 이루던 당시의 미국 미술을 보여주듯 첫 번째 전시실에는 당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을 비롯한 화파의 주류가 되는 화가들의 풍경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들이 미국은 신이 머무르는 축복 받은 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격렬한 자연의 모습을 섬세한 색의 두께와 밝기로 매우 사실적이고 이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미국에 대한 경건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끌어모아 정성껏 담아낸 풍경화가 그들 집단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John Sloan(1871~1951), 〈Election Night〉, 1907, Oil on Canvas ⓒ Memorial Art Gallery of the University of Rochester

 


George Bellows(1882~1925), 〈Club Night〉, 1907, Oil on Canvas ⓒ John Hay Whitney Collection

 

 

역사적 사실과 시대의 단상을 담아
고요하고 아름답던 풍경만 그리던 화가들은 시대가 지나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정통으로 영향을 받았다. 전쟁을 겪으며 지배를 당하고 신분의 차이가 생기던 당시 사회 현상을 따라 자연스레 화풍과 작품의 모티브가 변해가면서, 화가들은 현재의 삶에서 보는 모든 일들을 때로는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냈고, 때로는 현실의 모순을 풍자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사실주의의 대가였던 조지 벨로스(George Bellows)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는 도시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도 가장 비싼 도시 뉴욕의 빈민가와 서민들의 비애를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그중 1909년 작 〈클럽 나이트(Club Night)〉에서는 한눈에도 부유층으로 보이는 살찌고 양복을 입은 남자들로 가득 찬 한 클럽의 링 위에 두 남자가 격투를 벌이고 있다. 조지 벨로스는 이들의 격렬한 싸움을 구경하는 모두가 행복한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러니를 표현해내며 현대 미국인들의 허영심과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Mark Rothko(1903~1970), 〈Earth and Green〉, 1955, Oil on canvas ⓒ Kate Rothko-Prizel & Christopher Rothko

 


전시 전경 ⓒ Thomas Koester, WALLRAF-RICHARTZ-MUSEUM (사진제공: 발라프 리하르트 미술관)

 

 

자유로운 표현 속에 절제된 이미지 
그림만 보면서 지나쳐도 자연스레 시간의 이동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전시는 마지막 전시장에서 마크 로스코를 비롯한 미국의 추상화가들의 회화를 늘어놓았다. 이미지가 분명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실했던 어느 방을 지나 이 방에 들어온 순간 복잡하던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어떤 그림은 매우 단조로웠으나 무거웠고, 또 다른 그림은 복잡했지만 활기가 넘쳤다. 1950년대의 유행을 이끌던 추상화들은 인간의 보고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미국을 숭배하고자 하는 정신도, 시대를 반영하고자 하는 강박도 없이, 그저 자신의 작품 색을 찾아가고 있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Edward Hopper(1882~1967), 〈Hodgkin’s House〉, 192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Edward Hopper, 〈Girl at a Sewing Machine〉, ca. 1921, Oil on Canvas, Museo Nacional Thyssen Bornemisza, Madrid ⓒ Artists Rights Society (ARS)

 

 

모든 전시를 마칠 때쯤 마지막 벽에서 에드워드 호퍼를 만난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햇살이 비치는 풍경 안에 우아한 붓질로 이미지를 표현하였고, 그것이 과하거나 추상적이지도 않은 적절함을 유지했다. 그의 지나치게 심미적인 일상의 장면들이 유럽인들에게는 어떤 인식과 관점으로 이르렀을까.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통해 어쩌면 미국 미술 또한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지만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미술이라는 것을 이 전시를 통해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 

 

전시 전경 ⓒ Thomas Koester, WALLRAF-RICHARTZ-MUSEUM (사진제공: 발라프 리하르트 미술관)

 

글_ 남달라 독일 통신원(namdal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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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라 독일 통신원
미디어 디자인과 독일문화를 전공한 후 10년째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독일 쾰른에 위치한 현대미술 갤러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의 문화예술관련 소식을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한국과 유럽의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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