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5
〈트렌드 코리아 2019〉는 2019년의 트렌드로 10가지를 소개했다. 그중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나나랜드’다.
‘나나랜드’에서는 타인의 시선, 획일화된 사회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시선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이곳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며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이곳의 사람들 ‘나나랜더’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만큼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다양성과 다름을 수용한다. 세상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나나랜더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정형화된 미 대신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신체의 콤플렉스를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패션 산업이 변화했다.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는 ‘자기 몸 긍정주의’와 ‘아이웨이(i_weigh)’ 운동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들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 전시 전경
이러한 흐름에 맞게 ‘나나랜드’에 대해 탐구하는 전시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다. 2019년을 ‘나다움을 찾는 해’로 정한 사비나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올 한 해 ‘나다움’을 화두로 한 전시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는 〈트렌드 코리아 2019〉의 저자 김난도 교수가 이끌고 있는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전시에는 ‘나나랜드’라는 제목과 함께 센터로부터 자문을 받아 선정한 몇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총 21명(팀)의 작가들이 64점의 작품을 설치,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과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보여준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업 방식은 결국 자신을 향해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관찰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기도 한다.
전시는 네 가지의 주제 및 키워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주제 ‘나를 찾는 여행: 나와 당신의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며 나다움을 찾고 작업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두 번째 주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나를 찾다: 나는 나’에서는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세 번째 주제 ‘혼자일 때 진짜 내가 돼: 1인 체제’는 혼자,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네 번째 주제 ‘기준 따위 필요 없어: 젠더 뉴트럴과 바디 포지티브’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분법을 없애고 경계를 공유하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성 중립)’,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등, 기존 관습과 경계를 지워 나를 사랑하고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움직임을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고재욱, 〈DIE for〉, 혼합매체, 190x190x220cm, 2016, 2019(사진제공: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에는 1인 노래방, 대형 모빌, 사진관 등이 펼쳐져 있다. 1인용 동전 노래방 형식을 띈 고재욱 작가의 〈DIE for〉는 내부가 반거울로 제작된 1인 노래방이다. 노래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느낄 수 있다.
구혜영(통쫘), 〈작명쇼〉, 싱글채널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2019
로또기계가 돌아가는 금빛 일렁이는 공간에서는 〈작명쇼〉가 펼쳐진다.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구혜영 작가는 새로운 이름을 정하는 방법을 고심하다 로또추첨기계를 제작해 새로운 이름 ‘통쫘’를 갖게 됐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추첨했던 ‘이름추첨기계’를 설치해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관람객들에게 스스로 이름을 추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보호자가 그들의 뜻대로 정한 이름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준다.
쁘레카(BBREKA 신재은+최진연), 1인가구 사진관, 촬영용 소파, 촬영장비, 사진(8x10), 인터뷰 기록지, 2016~(사진제공: 사비나미술관)
촬영용 소파와 촬영장비가 설치된 사진관은 쁘레카(BBREKA: 신재은+최진연)의 〈1인가구 사진관〉이다. 자의 또는 타의로 1인가구를 꾸리된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생명체, 사물 등 자신만의 가족을 선택해 살아가는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2016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촬영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들은 1인당 8시간 이상의 긴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 책을 만들기도 한다. 벽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촬영한 1인가구의 사진들이 설치돼 있다.
천경우, Portrait Made by Hand, 퍼포먼스와 설치, 가변크기, 2010, 2019(사진제공: 사비나미술관)
좁은 통로 끝에 걸린 거울. 그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글로 묘사하는 ‘자화상 쓰기’는 천경우 작가의 〈Portrait made by Hand〉로, 관람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김승현, 모바일 홈 키트, 혼합재료, 180x50x80cm, 2016, 2019(사진제공: 사비나미술관)
반으로 나누어진 트렁크 사이로 긴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승현 작가는 펼치면 침대로 변하는 트렁크 〈모바일 홈 키트〉를 통해 나만의 공간과 낭만을 제안한다. 이 작품을 들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가방을 펼쳐 휴식을 취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도 상영된다.
모두 실제로 노래를 부르고, 이름을 뽑고, 촬영을 하고, 누워볼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들이다.
안띠 라이티넨의 〈Voyage〉
야자수를 심은 자신만의 1인용 섬을 만들어 발틱해를 건너고 리버풀에서 런던까지 노를 저어 긴 여정을 떠나는 과정을 기록한 안띠 라이티넨(Antti Laitinen)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퍼포먼스, 영상, 사진으로 이루어지는 〈Voyage〉는 자연이나 제도 앞에 무너지고 끈기와 노력으로 완성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정미, 〈핑크 스페이스 & 블루 스페이스〉
유화수+이지양의 장애인 협업 프로젝트
김준 작가의 남성도 여성도 아닌, 흔적이 지워져 새로운 젠더가 된 이미지를 담은 신작, 유화수+이지양 작가가 장애인과 협업해 그들의 개성을 포착한 사진과 그들의 특징을 반영한 가구 및 플래시 애니메이션, 윤정미 작가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재현해 설치한 〈핑크 스페이스 & 블루 스페이스〉 등도 전시된다.
이 밖에도 전시는 전시의 소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나 라운지’를 마련, 도서, 기사,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관련된 이슈들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고,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나나랜더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조던 매터: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 전시 전경
소장품 특별전 ‘조던 매터: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도 함께 열린다.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의 순간을 인위적인 장치나 도구 없이 순간적으로 포착한 조던 매터의 사진 작품 26점이 상설전시실과 사비나플러스에서 전시된다. 작품과 함께 상영되는 영상은 최고의 한 컷을 위해 끊임없이 날아오르는 무용수들과 조던 매터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줄곧 우리는 진짜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많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사소한 소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취미부터 어쩌면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할 직업, 결혼에까지 사회의 기준이 구석구석 닿아있다. 나는 얼마나 나를 위한 선택을 해왔을까. 이제 남이 아닌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진짜 나로 살 차례다. ‘나나랜드’와 그 시작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전시는 7월 7일까지.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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