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작은 컬러 패널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작품이 됐다. 색들의 조합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을 가득 채운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4900가지 색채(4900 Colours)>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전시 전경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진과 회화의 관계에 대해 다루어온 독일의 대표적인 예술가다. 흑백사진을 확대해 회색조로 채색하고, 사진 속 대상을 흐릿하게 묘사하는 작업을 통해 ‘회화를 통한 실재세계’를 완성했으며, 사진을 바탕으로 한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제스처 회화, 모노크롬 추상화 등, 즉흥성, 사실주의, 추상을 테마로 한 작품세계를 선보여왔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세계에 헌정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리히터의 대표작이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소장품 <4900가지 색채> 시리즈 중 ‘Version Ⅸ(2007)’를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리히터의 색상에 대한 연구는 1966년 산업용 페인트 색채 견본집에서 시작됐고, 페인트 색채 견본집은 색채에 대한 그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핵심으로 작용했다. 산업용 페인트 색상표를 본 그는 그것을 확대 재현해 색채판 그림을 제작, 색채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이번에 전시되는 <4900가지 색채>는 리히터의 쾰른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인 <돔펜스터(Domfenster)>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이 작업 역시 페인트 색채 견본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2007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훼손됐던 쾰른 대성당 남쪽 측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은 리히터는 중세 시대의 창문의 쓰였던 72가지 색채를 표현한 11,500장의 수공예 유리 조각들이 사용해 다양한 색상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색채 조합들을 완성시켰다. 그는 자유로운 색상 배치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색을 추출했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돔펜스터>와 동시에 작업된 <4900가지 색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전시 전경
<4900가지 색채>에서 한 컬러 패널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9.7cm다. 이것들이 다시 가로와 세로로 5개씩 이어져 25개가 된 것이 하나의 컬러 패널이다. 이 패널들이 196개 모이면 4900개가 되고, <4900가지 색채>는 이 컬러 패널들을 여러 크기로 조합한 총 11가지 버전으로 구성된다.
이 다양한 버전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색채의 조합과 크기로 각각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다른 버전의 작품 간에 상하 관계는 없다. 상호 간섭, 영향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동일한 가치로 존재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전시 전경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아홉 번째 버전으로, 루이 비통 재단 큐레이터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스튜디오와의 협의를 통해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공간에 맞는 버전으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총 세 가지 크기의 패널 네 점이 설치되며, 쾰른 대성당 작업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상도 상영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경계를 흐릿하고 모호하게 했던 작업을 통해 주관성을 배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위해 해온 그의 노력들과 그의 작품에서 전해지는 탈권위, 평등 등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7월 18일까지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루이 비통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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