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5
No.1 노나메 김하나, 호조 권순호 (2부)
창작력 있는 작가는 빛이 나는 존재지만, 작가는 실제로 자신이 얼마나 빛이 나는지 모른다. 그 빛은 팬들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기획자와 마케터들은 작가들의 성과를 팬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콘텐츠로 만들어 홍보하고 판매하고, 팬들은 그 콘텐츠를 즐기며 이용한다.
엄밀히 말해, 작가는 팬들의 사랑만 먹고 살지 않는다. 즉, 팬들의 사랑은 작가가 생존하기 위해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창작은 작가의 생업이고, 작가의 작품은 시장에서 유통되어야 한다. 기업이 비즈니스를 할 때, 팬들의 사랑은 중요한 원동력이다. 프로 작가라면 누구나 창작만으로 끝내지 않고 상품화를 위해 계약을 하고, 시장에서 상품으로써 작품이 유통되는 과정을 직면한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가장 첫 번째 계약이 바로 작가와 기업의 계약이다. 호조는 기업과 콜라보 계약을, 김하나는 기업과 플랫폼 계약을 주로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호조와 김하나를 찾을까?
또한 좋은 계약의 기준은 계약의 체결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 법은 계약의 기본원칙을 사적자치(私的自治)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책임 하에서 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보며, 사회적 타당성이나 공정성을 결여한 경우에는 공정의 원칙을 적용하여 규제한다. 그래서 계약을 잘 체결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그 계약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조와 김하나는 계약과 비즈니스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협상하여 나아가는 걸까?
이번 편은 질문하고 답변을 하는 일방향적 인터뷰가 아니다. 서변이 호조와 김하나에게 보다 적극적인 대화에 참여하며 법률가로서 의견을 덧붙인다. 작가와 법률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상호 공감을 이루는 가운데, 캐릭터 비즈니스를 위한 계약과 협상에 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눠본다.
"좋은 협상, 좋은 계약은 한쪽을 승자로,
한쪽을 패자로 만드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서유경 변호사
(서변) 기업과 계약을 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게 무엇이 있나요?
(호조) 이 일을 했을 때 후회를 할까, 안 했을 때 후회를 할까 그 생각을 많이 해요. 만약 조건이 약간 불리하더라도 잘 됐을 경우가 있고, 조건이 유리하더라도 안 됐을 경우가 있잖아요. 안 했을 때 진짜로 후회할 것 같은 일이다 싶으면 결국 진행을 하겠죠. 사실 돈도 돈이지만,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느냐에 따라서 그 후의 스텝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떤 일이든 선택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이게 완벽하게 100%는 없어요. 그냥 딱 51% 인지, 49% 인지… 안 하겠다고 결정했으면 아쉽더라도 더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는 거죠.
(하나) 저는 이미 비즈니스 체계가 어느 정도 명확하게 짜인 플랫폼과 계약을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일일이 협상하는 일은 적어요. 카카오 이모티콘샵처럼 대중과 직접 만나고 시장성을 바로 검증할 수 있는 덕분에 대중들의 선호도에 굉장히 민감하게 움직이죠. 그러다보니 간혹 외주 작업을 할 경우, 대중이 무엇을 더 좋아할 것인가 명료하게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런데 간혹 클라이언트가 이건 이러하니 이걸 추가해달라고 하거나, 저건 저러하니 저걸 제거해달라고 요구할 때 선택이 쉽지 않아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도 절차상이든 예산상이든 합당한 이유가 있는데, 시장에 대한 제 감각을 근거로 하여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거든요. 그럴 때 선의로 피드백 과정을 진행하더라도, 오히려 결과가 애매하게 나올 경우 책임소재가 모호해질 수 있어요.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많이 하고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을 향한 비즈니스는 결과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주 계약을 체결할 경우, 작업에 관한 의사결정권이 온전하게 주어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의 카카오 이모티콘, 꽁냥티콘, 사랑에 빠진 곰(좌), 냥모티콘(중), 깡총티콘(우)
(서변) 원하는 조건이 있을 때 협상은 어떻게 하세요?
(호조) 회사와 의논을 많이 하죠. 처음에는 저도 혼자서 검토했어요. 메일함에 계약서가 첨부가 되어 있으면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적당하게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공정한 조건으로 계약서가 오면 좋은데, 살펴보다 보면 복잡하기도 하고 아쉬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설령 누구 한 사람이 다 가져간다고 하는 이슈보다, 그렇게 다 가져갈 경우에 그래서 그 콘텐츠가 클 수 있냐는 거예요.
호조 작가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캐릭터 개발 및 라이선싱 회사 호조와(HOZOWA)의 대표 캐릭터 시니컬 토끼, 헬로브라운(강아지), 베키(돼지)
(서변) 언제나 모두 가져가는 계약이 능사는 아니에요. 제 경우, 법조 실무를 하다 보니 창작자들이 저작권 계약 중에서도 특히 양도계약(transfer agreement)에 대해 매우 경계심이 높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옛날에는 마치 저작권을 다 가지고 와야지 회사에 제일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거든요. 회사가 기획해서 콘텐츠 제작을 주도하고, 작가들에게 외주를 주는 거니까, 당연히 회사에 모두 귀속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콘텐츠가 먼저 뜨고 회사들이 콜라보를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단 말이죠. 시장이 변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비즈니스 했다는 감각으로 오늘의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안 돼요. 저작권 계약을 할 때는 모든 권리를 다 가지고 오느냐 아니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장의 맥락에 필요한 비즈니스에 맞게 계약구조를 짜야한다는 거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이 성사되어야 콘텐츠가 성장할 수 있어요.
호조(hozo) 권순호 작가
(호조) 정말로 서로 처지지 않게,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이 성사되어야 콘텐츠가 성장할 수 있어요. 가령, 적당한 값에 콘텐츠를 매절로 해서 다 넘기는 계약이라고 했을 때, 그 회사 입장에서는 그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그 콘텐츠를 키우려고 할 거잖아요? 투자해서 프로모션도 하고, 광고도 하고, 추가적인 개발도 하고,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회사가 투자해서 작가의 이름만 올려주는 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봉사예요. 매절 계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그 구체적인 상황에서 서로가 그렇게 할 필요성이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수익 분배 조건으로, 작가 입장에서는 섭섭하지 않고, 회사에서는 사업을 추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지점에서 합의되면, 그게 좋은 계약이에요. 그 포인트에서 감각이 있는 변호사가 도와주는 게 좋죠.
(서변) 맞아요. 계약에 관한 협상을 다루는 변호사들은 콘텐츠 비즈니스 시장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계약 당사자 쌍방의 목표(goal)와 요구(needs)를 고루 파악해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잘 도와야 해요.
바로 이 점이 사건 사고를 처리하거나 분쟁을 해결하는 변호사들과 다른 점이죠. 해외에서는 거래를 중심으로 일하는 변호사들을 'transactional lawyer'라고 해요. 만일 공격과 방어의 관점으로 협상에 임할 경우, 일방 당사자의 입장만 반영하기 쉬워요. 거래의 현장이 마치 법정처럼 공방을 벌이는 거죠. 그러면 강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기고 약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지는 게임이 벌어지거나, 아예 계약이 성사될 수가 없어요. 좋은 협상, 좋은 계약은 한쪽을 승자로, 한쪽을 패자로 만드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가령, 90% 대 10%로 체결된 계약이 반드시 좋은 계약일까요? 오히려 모두에게 나쁜 계약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90%을 가진 쪽이 당장은 좋을지도 몰라도, 10%를 가진 쪽은 치명상을 입게 되고 다시는 그런 계약을 안 하려고 할 거거든요. 그런 비즈니스는 오래 가지 못해요.
"계약할 때는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관계인지 중요하게 봐요."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
(하나) 저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수익을 분배하는 것에 대해 신뢰하는 편이에요. 회사에 근무하면서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봤고, 분명히 회사 입장에서도 남겨야 할 수익이 있어야 더 큰 비즈니스를 할 수 있어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가 가능해야 시장이 더욱 커지죠. 그래서 저는 계약할 때는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관계인지 중요하게 봐요. 서로 발전할 수 없는 관계라면 움직이지 않아요. 특히 저는 플랫폼을 통해 대중들과 직접 만나서 그 결과를 매달 정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갑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어요. 여러모로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라, 이 일이 재미있을지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인지를 고려하며 협상에 임해요. 좋은 파트너십(partnership)을 형성해서 함께 갈 수 있느냐 이게 계약을 체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 기준입니다.
"창작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회사의 계약도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어요."
서유경 변호사
(서변) 좋은 생각이에요. 일을 할 때는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꼭 필요해요.
배가 고플 때 마트에 가면 안 사도 되는 물건을 사게 되지만, 밥을 먹고 가면 딱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어요. 계약을 체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급한 상황이면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어려워요. 물론 누구에게든 배가 고픈 상황이, 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언제나 좋은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쁜 계약을 피해 가는 방법은 있어요. 최소한 이것은 하지 않는다라는 기준을 세우는 거예요. 좀 여유가 있을 때는 플러스 방향으로 이 정도는 채우고 싶다는 요구조건을 맞출 수 있게, 급할 때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이 정도 선은 지키고 간다는 방어선을 마련해두는 거죠.
(하나) 창작자 입장에서 좋은 계약인지 여부는 정산을 받아보면 바로 알아요. 회사와 콜라보할 때 수익 분배 조건을 검토할 때 그 회사가 어떻게 비즈니스 하려고 하는지 확인해요. 계약을 검토할 때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들과 소통하고 수익 분배 이외에도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이슈에 대한 자문을 구하려고 해요. 당장은 금전적 문제만 보일 수 있겠지만, 멀리 내다봤을 때는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미리 방어해야 하는지 알아두려고 해요. 물론 처음에는 계약서를 받았을 때 "이걸 도대체 언제 다 읽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서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물어보고 그걸 해주려고 해요. 협상하는 마인드를 갖추는 거죠.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의 카카오 이모티콘 우리는 연애중, 총총, 곰곰, 멍! 시리즈
(서변) 창작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회사의 계약도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어요.
창작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좋은 계약과 나쁜 계약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기업도 전략적으로 좋은 계약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기업 입장에서만 좋은 계약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나쁜 계약일 수도 있으니, 쌍방이 약간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포인트를 개발하는 거죠. 예전에 무조건 저작권을 매절로 양도해라, 일을 맡겼으니 중간 결과물이고 최종 결과물이고 무조건 회사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죠. 지금도 그런 게 잔존하고 있지만. 그런데 기업들도 이제는 좋은 창작자들과 비즈니스 하려면 계약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는 거예요. 정말 잘하는 기업들은 작가의 것을 가지고 오냐 아니냐 이걸 고민하지 않아요. 이제는 가격 설정(프라이싱; pricing)과 수익 분배 조건을 어떻게 최적화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느냐 이걸 정하려고 많은 컨설팅을 받아요. 그렇게 계약조건을 좋게 해서 좋은 창작자들과 계약하고, 그 창작자들과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나중에 불공정성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거예요. 또한 회사는 각종 법령이나 정부의 규제 방침 등을 준수할 의무(컴플라이언스; compliance)도 있거든요.
"우리의 커리어는 기준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작업 중인 김하나 작가의 손(좌), 호조 작가의 손(우). 그리고 그들을 인터뷰하는 서유경 변호사의 손(중)
(서변) 자기 이름으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의 고민 중의 하나가 어느 정도의 대가 금액을 받아야 하느냐 그 문제예요.
(호조) 보통 그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먼저 고려하고, 기본적인 금액을 산정한 다음, 저작권이나 기타 상품화 등이 어떻게 될 건지 보고 추가할 건 추가하고 조정하죠. 대가 금액이 적정한지 나름대로 정한 기준은, 이 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들게 될 상황을 상상하는 거죠. 가령, 야근을 하는데 너무 안 풀리는 거예요. 그때 금액을 딱 생각해봤는데, 연필을 집어던지면서 '내가 이 돈을 받고 일해야 되나' 싶을 정도의 금액이면 하기 어렵죠. 그런데 그 금액을 생각했을 때, '그래,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라고 납득할 수 있으면 좋게 하는 거예요.
호조 시티 게임, 시니컬 토끼와 헬로브라운이 함께 등장한다.
(서변) 바로 와닿네요. 가장 힘든 순간을 납득시킬 수 있는 금액이라니요.
저도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제가 받아야 할 대가 금액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늘 고심하고 있고요. 저는 변호사로서 특별히 정하지 않으면 시간당 보수 체계로 일하는데, 소송 등을 할 경우는 의뢰인과 계약해서 적정한 보수를 정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그 보수기준을 제시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심리학 교수님께서 "내가 나의 일하는 원칙을 정하지 않으면 누가 나의 원칙을 정해주니?"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결국, 내가 기준을 정해서 상대방에게 제시하지 못하면, 나는 상대방이 제시한 조건을 수동적으로 검토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 거죠. 나는 한 사람인데, 상대방은 여러 명이라면 매번 따로 검토하고 협상해야 하는데, 산만하고 에너지도 많이 쓰게 되죠. 그래서 저는 제안이 들어오면 "저는 이 기준으로 일합니다. 다만, 구체적 내용에 따라서 조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호조) 하나 작가님은 혹시 주변에서 지인 분들이 "캐릭터 제안을 받았는데 도대체 얼마를 불러야 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나요? "내가 이 정도 대가 금액을 불렀는데 적정한 거 맞아?"라고 질문을 할 때, 대답을 해주기가 곤란해요. 개인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거래하는 회사의 프로젝트에 따라서 다르고, 작업할 수 있는 분량도 차이가 있을 거고,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선을 그어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 금액인지 얘기해주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고 고민하는지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 일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괜히 먼저 얘기했다가 너무 낮은 금액을 얘기해서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을 모아서 질문하는 거죠.
(하나) 저는 '그 일이 하고 싶으면' 그 사람들이 제안한 대가 금액에 맞춰서 일하라고 해요.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건 돈보다도 귀하거든요. 그런데 돈을 벌고 싶다면 원하는 금액을 말하라고 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스스로의 몸값을 정하고 협상을 하는 과정을 겪는 것부터 시장과 마주하는 일이거든요. 만일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불렀는데 상대방 쪽에서 너무 높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시장과의 눈높이를 맞춰가는 거죠. 우리의 커리어는 기준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일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거죠.
"계속 두렵고, 힘들고, 부담스럽고, 떨리고…
하지만 재미있거든요."
호조(hozo) 권순호 작가
(서변)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하나) 스스로를 더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처럼 최선을 다해 현재를 준비하고 시장의 평가를 담담히 받아보라고요. 평가가 좋지 않으면 처음엔 그 무게가 고통스럽겠지만 다시 온몸으로 부딪히면 생각보다 큰 성과가 주어지기도 해요. 또 넘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믿고 용감하게 한 걸음씩 내딛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호조) 20대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손해를 안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단 말이죠. 결과적으로 보면 고민은 많이 했는데 말아먹은 일도 있고,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고… 생각을 그만두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어떤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하는 거예요. 어차피 고민해봤자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되는 거라서, 그냥 하는 거예요. 고민한다고 해서 최고의 결과를 내놓을 수도 없고, 정답도 없어요. 꾸준하게 계속 작업하면서 하나만 제대로 걸리면 되는 거예요.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은 아니에요. 항상 조금 앞에 있는 숙제를 해결해가면서 살아왔어요. 카카오톡 캐릭터들이 굉장히 성공하면서 유명해졌던 거예요. 한동안은 적응하는 게 어렵고, 일을 선택할 때도 가리거나 재고 그런 게 있었어요. 방송이나 강연 등도 많이 걸렀어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죠. 그런데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면 사실 할 게 별로 없더라고요. 많은 경험을 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 아닌가 싶은 거죠. 다른 사람에게는 고민하지 말고 지금 생각하는 걸 하라고 얘기를 하는데, 정작 내가 그걸 잘 하지 못했던 겁니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것도 별로다 싶어서 이제는 좀 해야겠다 싶어요. 용기 있게 계속 작업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죠.
작업은 늘 같아요. 아무리 오래 해도 계속 두렵고, 힘들고, 부담스럽고, 떨리고… 하지만 재미있거든요. 이게 될까, 안 될까 하면서 해놓고. 설령 잘 안되어서 망신을 당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파이팅하고, 작업하고. 그렇게 계속 작업하는 거. 그게 그냥 납니다.
호조 작가의 2022년 NFT. 강동아트센터에서 전시한 마사지클럽(좌), 247 디프(diff)에서 전시한 작품(우)
"미래에서 어제와 오늘을 기억할 때,
좋은 추억거리 소재를 만드는 게 제 일이에요."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
(서변) 미래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말을 해줄 것 같나요? 그리고 내 작품이 미래에 어떻게 되어 있길 바라나요?
(호조) 아무래도 제 작업물을 사람들이 좋게 기억해주면 좋죠. 그런데 저는 옛날부터 이런 생각이에요. 어디 가서 저를 소개할 때 늘 '상업미술인'이라고 해요. 어쨌든 저는 대중들에게 콘텐츠를 파는 일을 하고 그걸 잘하는 게 중요해요. 학교에 다닐 때 미술 교과서를 보면 순수예술이라고 하는 것들도 있는데, 잘 살펴보면 그 미술품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상업미술이었던 것도 많아요. 미술을 보면 그 시대의 문화를 비롯해서 주요 사건이나 흐름이 어땠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 시절에 가장 많이 팔린, 가장 상업적인 콘텐츠가 그 시절을 가장 잘 표현하는 콘텐츠예요. 원시시대의 벽화를 보더라도, 그 시대에 중요했던 일들을 미술로 표현을 한 게 아니겠어요? 멧돼지 사냥 벽화가 있다면, 그 벽화를 남긴 사람에게 오늘은 멧돼지 몇 마리를 사냥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었던 것이고, 그 시절에 중요했던 일인 거예요. 저는 작업을 하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중에 100년 정도 지났을 때 이 작업물을 보면 그 시절은 어떤 시대였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을 하면 재밌겠다 싶어요.
(하나) 저도 상업과 자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제가 돈을 벌었다는 건, 제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고,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충족된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걸 해서 그 다음의 길이 또 열리게 되니까요. 미래의 나라면 오늘의 나에게 "하나, 너무 잘했어!"라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이 질문이 정말 좋았는데 왜냐하면 요즘 제가 생각하는 바람을 언어로 표현해서 꺼낼 수 있게 한 질문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작업이 역사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시절의 아이콘이 되기엔 그건 너무 거창해요. 저는 제 작업이 역사보다는 추억이길 바라요. 사람들의 추억을 더듬어 볼 때 그래 그런 캐릭터가 있었지라는 정도로 누군가의 마음 속에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이모티콘으로 대화 나누던 한 사람을 추억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되길 바라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캐릭터가 있지 않나요? 유년시절에 특정한 감성을 자극하던 캐릭터들을 기억해요. 학창 시절에 설레는 마음으로 문방구에 가서 그 캐릭터가 있는 책이나 잡지를 보고 문구류를 구매하고… 저는 제가 만든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정들을 전달하고 소소한 순간에 스며들어 기억되면 좋겠어요. 미래에서 어제와 오늘을 기억할 때 좋은 추억의 단초가 되는 게 제 일이에요.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의 2022년 이모티콘 캐릭터 가족사진
김하나 작가에게 '헬로브라운' 캐릭터로 사인을 해주는 호조 작가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모두 호조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제법 수고로울 것 같았는데, 호조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그려주었다. 호조가 그려준 캐릭터들을 가슴에 품고 용인시 모 읍내로 나오는 길, 길거리 간판이나 전단지에서도 호조가 '아빠'인 캐릭터들이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김하나는 호조의 '자식'이 그려진 읍내 간판을 보면서 "호조 작가님은 저 간판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하고 혼잣말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직업이 법률가라 무단 이용이라는 짐작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미 호조의 '자식들'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삶의 단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호조의 '자식들'은 미래의 언젠가 SNS로 소통하며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던 시대를 연구하게 하는데 필요한 사료가 될 수도 있고, 김하나의 '새끼들'은 미래의 언젠가 오늘을 추억하는 가운데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시장에서 몇 번이고 성공해본 것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다. 호조와 김하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성장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들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일, 인터뷰' No. 1_ 노나메 김하나, 호조 권순호(1부) "캐릭터 비즈니스, 마음을 사로잡아 시장에서 통하는 법"
글_ 서유경(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 ·변리사)
사진_ 이준범 (스튜디오 관조)
이미지 제공_ 호조 작가, 김하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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