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
No.2 릴라 엘리펀트 김예솔 (2부)
사람은 저마다 삶의 테마를 가지고 있고, 그 테마는 10년 정도 단위로 변하는 것 같다. 장애를 극복한 긍정의 아이콘, 인간승리의 드라마. 김예솔은 분명히 남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극복의 아이콘이라 불렸고, 언론과 교육기관에서 그녀의 삶을 주목했다. 이것은 지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과거 10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이후 김예솔은 2017년 스웨덴으로 떠났고, 5년을 보냈고, 페더 씨와 릴라 엘리펀트를 창립했다.
인터뷰를 하던 시간 동안 김예솔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리했는데, '자연스러운 확장과 일깨움'이라고 정리하려고 한다. 김예솔은 스웨덴의 자연환경을 누비고 복지시스템을 경험하며 비로소 자연스러운 몸짓을 할 수 있었고, 그동안 묵인해왔던 몸의 감각들을 하나씩 일깨워갔다. 장애와 비장애라는 이분적 구도를 넘어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며, 김예솔의 세계관은 보다 확장되었다.
김예솔은 북유럽 스웨덴에서 다양한 몸을 연구하며 그에 적합한 가구를 디자인하여 제작하고 판매하는 젊은 창업가이다. 릴라 엘리펀트의 가구 시리즈는 가구 전문 회사인 아이앰히어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여 국내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장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가구라면 거동이 불편한 노령층의 삶의 경험도 개선할 수 있다. 김예솔은 긍정이 긍정을 낳는다고 믿으며, 궁극적으로 보편적으로 스며들 수 있는 무해한 편안함, 즉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삶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당사자 입장에서 해결법을 상상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어요"
(서변) 릴라 엘리펀트(Lilla Elefant)는 스웨덴어로 작은 코끼리라는 뜻이지요. 이 브랜드명은 어떻게 짓게 된 것인가요?
(예솔) 코끼리는 사려 깊고 지혜로운 동물을 상징하잖아요. 아무리 작은 코끼리라도 성장하면 큰 코끼리가 되지요. 릴라 엘리펀트는 '장애인을 위한 가구'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합니다. 작지만 가능성이 풍부한 회사로서, 사려 깊고 지혜로운 디자인 솔루션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변) 대한민국 가구 디자인 산업계에 큰 기여를 한 분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은 하나의 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그 가구를 이용하는 사람의 삶과 환경, 그리고 시대를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가령, 70년대에 싱크대란 공장에서 제조해서 납품하는 물건 정도로 취급이 될 때, 이 싱크대를 이용할 한국의 가정주부들의 삶을 파악하고자 했다는 거죠. 가정주부들의 키는 몇 센티미터일까, 허리를 얼마나 굽히게 될까, 필요한 그릇들은 어떻게 수납해야 할까… 이런 것들을 공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싱크대를 이용할 사람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궁리하셨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삶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당사자 입장에서 해결법을 상상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어요.
(예솔) 좋은 디자인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누구의 관점에서 좋은 디자인이 되는 걸까요? 디자인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많이 기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이점을 주진 않아요. 저는 6살 때 척수염이 발병한 이후로, 현재까지 휠체어에서 생활하다 보니, 장애인은 애초부터 자신의 몸에 적합한 가구를 선택할 기회 자체가 드물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신체에 적합한 도구가 없다면, 당연히 일상생활이 불편하겠죠?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면서 이런 불편함들이 더욱 피부로 느껴졌어요.
김예솔이 릴라 엘리펀트의 푸드 트레이 Klumpig을 이용하여 수월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예솔) 저는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그런데 휠체어를 탄 사람이 어떻게 요리를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주방 시설은 모두 두 다리로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어 있어요. 재료를 손질하고, 칼질을 하고, 뜨거운 불을 이용해 조리하고… 그것은 부엌에서 서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저와 같이 휠체어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우선 휠체어 바퀴가 조리대의 문에 걸려 물을 틀기에 거리감이 모자라고, 싱크대에서 칼질을 할 때도 어깨 높이로 팔을 뻗어야 하죠. 레인지를 이용하기 위해 가스밸브를 여닫는 것도 그렇고, 제 얼굴 높이에서 불이 피어올라요. 음식이 제대로 조리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냄비 뚜껑을 열어보는 것도 어렵고요. 작은 사고라도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죠.
사소하더라도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했어요. 신체가 불편하더라도,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죠. 휠체어에 앉아서도 음식을 조리하고, 음식을 옮기기 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도 '집'이란 우리의 안식처가 되는 공간이잖아요. 집이란 공간에서조차 무언가를 하기 어렵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말 그대로 집을 보금자리이자 아늑한 쉼터로서, 휠체어를 탄 사람의 삶에 적합하게 바꿔가고 싶었어요.
(서변) 바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이군요. 김예솔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구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핵심을 잡은 것인가요?
(예솔) 휠체어 생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체에 적합한 동선을 연구하고,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가구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산업 디자이너로서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veness)을 핵심어로 잡았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기능적 측면에서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더 나아가 심미성 측면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몸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은 비장애인의 몸까지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페더 씨는 저를 만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을 알았다고 해요"
릴라 엘리펀트 공동창업자 페더 칼슨(Peder Karlsson)(좌), 김예솔(Yesol Kim)(우)
(서변) 릴라 엘리펀트는 동업, 즉 파트너십으로 창립된 회사예요. 산업디자이너 김예솔과 페더 칼슨(Peder Karlsson)의 인연을 알고 싶어요.
(예솔) 좋은 분! 저는 복이 많아요. 페더 씨는 30년 동안 가구만 만들던 장인이에요. 제가 스웨덴 룬드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를 할 때, 페더 씨는 목공예 담당 선생님이셨어요. 선생과 제자의 만남이죠. 페더 씨에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위한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페더 씨가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페더 씨는 저를 만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을 알았다고 해요.
릴라 엘리펀트의 목공예 장인 페더 칼슨(Peder Karlsson)
(서변) 김예솔과 페더 씨의 협업 과정은 대체로 어떻게 되나요?
(예솔) 제 경험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페더 씨와 상의하죠. 그때 페더 씨는 실제로 어떻게 제작할 것인지 구상하고요. 제가 손으로 쓱쓱 그린 그림이라도 이미 페더 씨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구현을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견고하고 안전한 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서 탁월합니다. 1차 목업(mock-up) 테스트는 1:1 스케일로 합니다. 실제로 휠체어를 탄 사람의 입장에서 제품을 써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실제로 약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집에서 그 목업을 써보고 무엇을 고쳐야 할 것인지 체크합니다. 디자인을 수정한 다음 최종 목업을 만들기 위해 재료와 마감재를 선택하고, 페더 씨에게 최종 디자인을 넘기면, 페더 씨가 제작을 해주죠.
목공예를 하고 있는 김예솔(Yesol Kim)
(서변) 김예솔과 페더 씨가 함께 지향하는 디자인 가치관이 있나요?
둘 다 자연에 해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순환 디자인(circular design)이라고 하죠.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물건에는 수명이 있는 만큼 언젠가는 버려질 수도 있는데, 버려진다고 하더라도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제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와 페더 씨 모두 불필요한 공정은 최대한 생략하려 합니다. 공정이 많이 들어갈수록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가 되거든요.
하얀 쌀밥같이, 오랫동안 매일 보더라도 질리지 않고 편안함을 주고 싶어요.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기보다는, 평생을 같이 하는 반려 가구라면 좋겠어요. 저는 30대 한국 출신의 동양인이자 여성인 디자이너이고, 페더 씨는 50대 스웨덴 출신의 서영인이자 백인인 가구 장인이지만, 가구에서만큼은 이런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게 신기합니다.
(서변) 릴라 엘리펀트의 대표 가구들의 디자인적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예솔) 궁극적으로 저의 관심사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에요. 핵심 사용자(core user)의 요구를 해결하면 신기하게도 대중들에게도 먹힌다고 믿어요. TV를 시청할 때 리모컨을 이용하거나 대형마트에 갔을 때 카트로 운반하기 쉬운 에스컬레이터, 모두 신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발명품이었지만 대중들도 편리하게 쓰는 것처럼요.
침대에서 식탁까지 다양한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릴라 엘리펀트의 야심작 Klumpig (사진 제공: 아이앰히어)
푸드 트레이 "Klumpig"은 릴라 엘리펀트의 야심작이에요. 음식을 운반하는 걸 기본적인 쓰임새로 삼았는데, 화초를 옮길 때, 빨래를 옮길 때도 활용도가 높아요. 휠체어에 앉아서나 바로 서 있을 때나 손으로 잡기 편한 높이를 최적화된 높이를 찾았죠. 집안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크고 작게 운반할 때도 굉장히 유용해요.
올해 초에 아이앰히어에서 푸드트레이를 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정 16곳에 기부하여 주셨어요. 그때 피드백을 받았는데, 두고 보기에도 예쁠 뿐만 아니라 쓰임이 다양해서 좋았다고 해요.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주방까지 거동하여 식사를 하기에 불편했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차려서 트레이에 옮겨다 드리니 앉은자리에서 바로 편하게 식사를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로서는 예상도 못했지만, 정말 재미있고 인상 깊었던 이용법도 발견했어요. 반려견을 키우는 휠체어 가정에서 푸드 트레이에 반려견을 올려두고 그간 해주지 못했던 미용도 직접 해줄 수 있어서 좋았대요.
릴라 엘리펀트, 커피 테이블 Fullmåne
보름달이라는 뜻의 "Fullmåne"은 지름이 70cm 정도 되는 원형의 작은 커피 테이블인데, 얇은 세 개의 다리가 있어서 다리 사이가 넓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도 테이블 다리 사이로 쏙 들어갈 수 있도록 최적의 사이즈를 찾았죠. 세 사람이 함께 들어앉을 수 있는데, 일반 의자에 앉거나 휠체어에 앉거나 모두 어울릴 수 있습니다.
릴라 엘리펀트, 캐비닛 Cabinet
캐비닛 "Cabinet"은 상단의 앞면과 뒷면이 모두 뚫려 있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든 수납이 가능해요. 벽면에 붙여 두어도 되고, 공간의 중앙에 놓을 경우 양면 모두 이용 가능하죠. 또 하단이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가까이 갈 수 있어요.
휠체어 이용자가 팔을 있는 힘껏 뻗어도 옷걸이에 손이 닿지 않아 불편함을 겪는 모습 (사진 제공: 김예솔)
릴라 엘리펀트, 옷장 Snövit은 휠체어 이용자도 자신의 높이에서 옷걸이를 이용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다.
옷장 "Snövit"은 특히 디테일 마감에 많이 신경을 썼어요. 제가 평소 옷장을 이용할 때 가장 불편했던 점은 옷을 꺼내려고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일단 휠체어를 탄 사람은 휠체어 바퀴가 가구에 부딪히기 때문에 옷장에 바짝 붙을 수 없어요.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옷장을 바닥에서 20cm 정도 띄웠고, 문고리는 가능한 넓고 잡기 편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옷걸이는 너무 높아서 옷걸이 자체를 쉽게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게 했어요. 물론 서 있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고요.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이용자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자신도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꾸준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하죠."
(서변) 이제 제가 릴라 엘리펀트와 인연을 맺은 이야기로 넘어가죠. 유럽과 국내에서 디자인권을 얻을 때의 이야기. 당시 릴라 엘리펀트에서 디자인권 등록이 급하다고 하며 연락이 왔었죠.
(예솔) 스웨덴에서 2021년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고 난 다음 국내 라이선스 계약을 앞두고 있을 때 비로소 디자인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서 변호사님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준 덕분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 디자인을 출원하기 전 그 디자인이 공개되었다면 원칙적으로 디자인 등록을 받을 수 없다. 다만, 그 디자인을 처음 공개한 날로부터 12개월 이내에 출원하여 신규성 상실 예외 주장이 인정된 경우에는 디자인 등록을 받을 수 있다. (출처: 특허청 지식재산 탐구생활)
(서변)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권을 출원할 때 놓치는 포인트가 바로 '신규성'이라는 요건이에요. 저는 늘 산업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는 강조해요. 정말로 권리를 확보하고 싶다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자고요. 일단 공개가 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이 되고, 그렇다면 디자인 출원을 하더라도 심사 결과 거절이 될 수 있고, 설령 등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향후 무효 사유가 발생합니다. 디자인권으로 비즈니스 할 때 굉장히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솔) 스웨덴에서 산업디자인 석사를 할 때 '디자인과 경영'이라는 수업에서 디자인을 어떻게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 다루어주었는데, 현실적으로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2월까지 서 변호사님이 "디자이너를 기르는 법" 온라인/오프라인 강의를 했을 때도 온라인으로 수강했을 때, 정말로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반드시 고등 교육과정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권리나 법제도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국내 디자인 교육 과정은 디자인 그 자체에만 너무 몰입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쉽습니다. 학교 밖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법과 제도에 대한 지식을 굳이 디자이너 개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겨우 얻어야만 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서변) 만일 김예솔 디자이너가 디자인권을 신규성 상실로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해봐요. 만일 누군가 릴라 엘리펀트의 디자인 가구를 카피해서 판매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예솔) 제 가장 큰 두려움도 바로 그 부분이에요. 디자인이란 만들어 놓은 결과물만 보면 누구나 따라 만들기 쉬운 것처럼 여겨지죠. 특히 단순함을 지향하는 디자인일수록 더욱 그래요. 하지만 그 최종 결과물을 얻기까지 있었던 문제의식, 경험에 대한 축적, 연구과정, 시행착오와 수정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무수한 과정과 맥락들이 모두 그 최종 결과물에 녹아 있잖아요. 만일 릴라 엘리펀트가 디자인권을 얻지 못한 경우, 그 점을 악용해서 누군가 카피를 해서 가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한다면 매우 화가 나겠죠. 감정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라이선스 계약이 있는 상황에서, 판매와 유통 등 사업화에도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고요.
(서변) 제가 변호사이자 변리사로 일하면서 참 많이 다루는 케이스예요. 특허청에 디자인으로 등록하지 못했다고 해서 과연 그 디자인이 보호될 가치가 없을까요? 카피캣이 마음대로 나와도 되는 걸까요? 그건 당연히 아니죠. 가구 특유의 형태를 비롯하여 김예솔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릴라 엘리펀트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 히스토리, 그 밖에 무형의 보이지 않는 가치들은 분명 보호될 수 있는 성과로 인정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예솔) 제게 있어서 릴라 엘리펀트는 제가 낳은 자식과도 같아요. 고유하고 유일무이하죠.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널리 홍보하고 싶기도 하면서도 혹여나 역효과가 날까 봐 신중해지기도 합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죠. 그래서 더욱 법으로 이 고유한 가치들을 인정받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고, 그 방법을 알아가는 것에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변)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이용자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자신도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꾸준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하죠. 그게 그 디자이너 고유의 정체성(identity)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한 사람으로서, 한 직업인으로서 정체성에 관심이 많아요.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법적인 이야기로 가자면, 부정경쟁방지법이란 법이 있어요. 저도 관심 있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분야예요. 국내에 널리 알려진 타인의 상표와 상호 등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라고 하는데, 상관행이나 상도덕에 반하는 방식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불법성이 있다고 보고 건전한 거래질서와 공정한 경쟁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를 하려고 하는 법입니다. 어느 유형이든 공통되는 전제가 있어요. 바로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는 디자인 비즈니스 하는 분들께 가급적이면 결과물 못지않게 자신의 발상의 기초와 개발의 과정도 잘 알려보자고 권해요. 디자이너로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거나 디자인 업체로서 브랜드를 관리할 수 있는 핵심적 기초는 바로 기록이거든요. 스토리텔링도 필요해요. 왜 이런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동기와 창작과정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좋다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단정하여 말하긴 어렵고, 모든 디자인이 법적 잣대로 가서 판단을 받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 하에 기록화와 홍보를 통해 쌓인 무형적 가치는 디자이너에게 상당히 큰 자산이 되거든요. 디자이너는 일상생활에서도 기록화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이력이 담긴 디자인 포트폴리오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해요.
(예솔) 맞아요. 릴라 엘리펀트 가구들은 제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들이기 때문에, 그 독창성(originality)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그 작업 과정과 결과물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꾸준하게 공유하여 알립니다. 그리고 공식 웹사이트에는 제가 했던 활동의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요.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습니다. "굴러서 세계 속으로(Rolling in the world)"라고 해서, 제가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이후에는 제가 디자인을 하는 스토리도 콘텐츠로 만들 예정이에요.
"목욕탕을 디자인해보고 싶어요. 한국사회에서 목욕탕이란 다양한 몸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어 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가장 평등한 공간'을 상징하거든요"
(서변) 이제 김예솔에게 새로운 테마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유니버설 디자이너이자 릴라 엘리펀트의 창업자로서, 김예솔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전파할 수 있을까요?
(예솔) 유니버설 디자인 분야에 대한 강의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온라인 행사들도 많아져서 스웨덴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들에 초대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올해는 서울대의 '사회적 감수성을 실천하는 디자인 리더 양성사업단'의 초청을 받아서 스웨덴에서 원격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고요. ESG 경영과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장애인의 인권을 높이고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습니다. 최근 국내외에서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요. 정말 좋은 현상이지요.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서 무엇을 문제로 삼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는 장애인의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제안하고, 나아가 그 해법을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개발까지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대기업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심을 보일 때, 저의 재능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여 컨설팅을 하고 싶고요. 릴라 엘리펀트를 알리면 자연스럽게 이런 활동들에 대한 기회와 인연이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변) 김예솔은 어떤 미래를 살게 될까요? 가벼운 소망을 말로 기록을 해두면 예언처럼 언젠가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 번 이야기해볼까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것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을 만들든지 제 안에 고유하게 녹아있는 DNA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삶을 개선하는 가구라면 저와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삶도 개선할 수 있을 거예요. 가구는 이제 시작이고, 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개발하려 합니다. 그리고 목욕탕을 디자인해보고 싶어요. 한국사회에서 목욕탕이란 다양한 몸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어 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가장 평등한 공간'을 상징하거든요.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할 때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의 행복과 평화를 지키며 살다 보면 기회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원시적인 몸짓으로 자유를 느꼈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에서 출발하면서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지성과 영성의 궁극을 보여줍니다.
물론 저는 디자이너라서 예술가와는 달리 시대의 산업적 수요에 부응해야 하고, 돈이 될 수 있는 제품들을 잘 만들어내는 일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의 디자이너로서의 모습은 예술가처럼 시대를 앞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 방향이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될 것이고요.
대한민국 서울의 저녁, 스웨덴 룬드의 아침. 약 2시간에 걸쳐 지구 반 바퀴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인터뷰를 마쳤다. 우리의 대화는 신선했다. 시차도, 공간의 제약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보다 접근성이 확대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편리하게 조정될 수 있었다. 큰 불편이 없었던, 오히려 기존의 인터뷰보다 보다 풍부했던 우리의 인터뷰 방식은 유니버설의 핵심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기사를 정리할 무렵, 구글 코리아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여 새로운 오피스를 마련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구글코리아는 접근성(access)이 확대된 공간을 통해 구글만의 가치와 문화인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전파하고 있었다. 옥소(OXO)는 '굿 그립(Good Grip)' 시리즈를 통해 왼손잡이도, 관절염 환자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더바디샵(THE BODY SHOP)은 절단 장애인을 모델로 기용하여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SELF LOVE"라는 캠페인을 했다.
이처럼, 시장의 기업들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주목하고, 유익한 제품을 출시하며 합리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수요자의 니즈(needs)를 굴절 없이 투명하게 반영한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을 받는다. 김예솔은 성숙한 의식과 원초적인 삶의 욕구가 공존하는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로운 몸짓은 누구에게라도 평등하다. 김예솔이 탄 휠체어 바퀴가 쉽게 굴러갈 수 있는 길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이 없는 순탄한 길이 될 것이다.
'내일, 인터뷰' No. 2_ 김예솔 디자이너(1부) "다름을 무대 위로, 유니버설 가구 디자이너 김예솔"
인터뷰어_ 서유경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변리사)
인터뷰이_ 김예솔 (릴라 엘리펀트, 공동창업자)
사진_ 이준범 (스튜디오 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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