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인터뷰

[디자인정글 특별초대석] 진심을 찍는 사진작가 준초이 

2023-02-02

눈이 내리던 날, 사진작가 준초이는 눈처럼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그의 온화한 미소 속에는 인정이 가득했다. ‘카리스마’라는 말로 형용되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사진작가 준초이

 

 

준초이는 사진계에서 꼼꼼하고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작업을 위해 궂음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진실한 사진을 위해 대통령을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준초이 작가가 작업한 광고 사진

 

 

광고 사진으로 유명해진 그지만 준초이 작가는 처음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광고사진으로 유명세를 떨친 후 인물사진작업을 하게 된 그는 인물을 통해 온전해짐을 느낀다. 

 

그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인물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수많은 인물 사진 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그만큼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의 애정이 가득하다는 얘기다. 

 

여러 대통령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그지만 수많은 작품 중 특별히 애정을 갖는 작품은 따로 있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과 반가사유상, 해녀 작품은 그가 특별히 애정을 쏟은 작업이었다. 

 

<다니엘>

 

 

다니엘은 ‘가브리엘의 집’에 살고 있던 장애가 있던 아이다. 일반인과 좀 다른 특별한 모습이었지만 준초이 작가는 그 안에서 맑은 영혼을 찾아 사진으로 담았고 행복을 전했다. 

 

<반가사유상>

 

 

그가 촬영한 반가사유상에선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는 반가사유상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텍스처와 형태의 혼합’이라 했다. 과거의 시간들이 축적된 얼굴, 수많은 사건과 흔적이 얽힌 텍스처, 슬픔도, 웃음도 아닌 불가사의한 표정, 경지에 이른 듯한 평온한 표정과 심리를 표현한, 무엇 하나로 단정하기 힘든 형태말이다. 

 

<해녀>

 

 

해녀 작업을 할 땐 ‘영혼의 합’을 느꼈다고 했다. 산소통을 매고 바다에 들어갔을 땐 평온함 속에서 동그랗게 피어 올라가는 공기방울을 보며 생에 대한 존엄성과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유학시절부터 ‘생존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는 그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작업하고 싶어 해병대 군인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얼린 사과를 촬영한 작품의 설치 장면

 

 

최근 작업 얼음꽃 시리즈는 신비롭다. 뉴욕에 있던 시절부터 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꽃을 보기위해 새벽 시장엘 자주 간다고 했다. 언 꽃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또 가엽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대형수조, 대형냉동고, 지게차를 이용한다. 한 장의 사진 뒤에 감춰진 수고의 스케일도 말할 수 없이 크다. 

 

남을 돕는 것 또한 그에겐 사진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자선에 대해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사진 작업을 통해 선행을 배푼다. 정치인들의 인물을 찍고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게 했다. 그가 찍은 다니엘의 사진은 국내는 물론 해외 지원으로까지 이어져 ‘가브리엘의 집’을 거의 짓게 하다시피 했다. 그의 사진 한 장이 이룬 나비효과는 이토록 크다. 

 

인간뿐 아니라 작은 생명, 사물 하나에도 온 마음을 쏟아붓는 그다. 사진작가 준초이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작품 설명을 하는 준초이 작가

 

 

처음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되셨나요?


고교시절, 틀에 갇힌, 어제와 똑같은 오늘, 그리고 또 빤히 예상되는 내일이 그려지는 시스템적인 학교와 선생님들의 분위기가 싫어 방황을 했어요. 그때 저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던 물리 담당 선생님께서 저에게 본인께서 좋아하시는 사진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선생님의 취미인 사진으로 나를 유도해 주셨죠. 그분의 카메라 가방을 들고 쫓아다니면서 사진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준초이 작가

 

 

국내 최고의 광고 사진작가로 평가받기 전까진 어려움도 많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힘드셨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일본 유학시절엔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저의 일생일대의 은인인 오오사와 도시꼬라는 사업가의 도움으로 무난히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국내에서는 항상 성적이 부진했던 제가 처음으로 장학생이 될 수 있었어요. 그때 저의 숨어있던 능력을 발견하고 제 존재감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왕 내친김에 세계적인 사진가들이 모여 있는 뉴욕 맨하튼으로 가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사진가로 크고 싶었죠. 

 

그런데 그것이 사진가로서의 행로에 닥친 쓰라린 관문이었어요. 노력을 해도 7년간 언어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매주 2박 3일 토하는 병때문에 결국 뉴욕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 이유로 귀국한 한국의 광고계의 사진가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았어요. 너무나 실망이었지만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어요. 당시 사진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보수로는 온전한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진가로서 평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여건을 전부 규합, 분석하고 나온 상황을 광고계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나의 요구가 광고계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근 2년간은 고통이 있었어요.

 

 

 

준초이 작가가 촬영한 인물사진 작업. 매 작업마다 촬영에 관한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광고 사진작가 활동을 하시다 1995년 인물사진으로 작업을 확장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금이라도 생활만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이 인물사진이에요. 제 삶에 있어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를, 그리고 미래의 나를 있게 해주는 가장 뜨거운 것의 핵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나타날 때는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를 대동하죠.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그들은 단지 한인간만이 아니에요.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연고리를 머리속에서 상상하며 작업할 때면 인물사진은 풍만해져 갑니다.

 

“사람을 담으며 사람의 영혼을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녹록하지 않았던 제 삶의 여정 탓인지, 어떤 인간이든지 눈에 보이는 그가 혼자만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를 둘러싼 많은 인연 고리일 것이라는 가정으로 피사체인 그 인물에게 접근하다 보면 그와의 공통되는 어느 지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죠. 그 순간은 물론 제 개인적인 상상력의 범위에서의 것이겠지만 작업상에서는 가장 솔직하고 순수하게 그와 나의 ‘영혼의 합’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만들어진 작품들의 깊이가 역시 깊어요. 

 

<해녀들>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로 해녀들 작업을 꼽으셨는데요, <해녀와 나>를 통해 파리 유네스코 미술관에서 제주 해녀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도 하셨습니다. 해녀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때로는 성의 없이 들릴지는 몰라도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편이 더 진솔한 답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녀와의 만남과 인연과 의미가 그렇습니다. 그냥! 그냥 해녀에게 끌렸고, 그들로부터 한동안 눈을 뗄 수 가 없었어요. 왜일까요. 

 

남녀가 만날 때도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서로가 끌리는 것이 아니고 우선은 “그냥”일 거예요.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겁을 통한 그와 나의 인연이 녹아 있길래 무의식적으로 빠져들고 말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의 인물작업 중 일맥상통하는 ‘나와의 영혼의 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작품이 바로 다니엘, 반가사유상, 해녀 작품입니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작업도 궁금합니다.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비단 나 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음 속에 그리는 저쪽의 피안의 세계! 최상의 그곳에 이르기 바로 직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움켜잡고 있었던 손에서 힘을 빼고 인간사에서의 희로애락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의 고요한 모습이에요.    

 

준초이 작가

 

대화를 나누는 준초이 작가(좌)와 정석원 편집주간(우)

 

 

반가사유상 외에도 백제의 유물을 촬영하셨고, <백제>라는 화집을 내셨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백제작업의 성과는 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부여박물관 관장이셨던 ‘이내옥 관장의 기획력에 의한 성과’라고 함이 옳아요. 전 당시 역사물에 관심이 없었고,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는 신제품 광고사진을 해오던 저에게는 관심 밖의 것이었어요. 이내옥 관장이 저의 상업(commercial) 사진가로서의 접근방법을 노리고 있었다는 소리를 한참 후에 들었어요. 

 

그분 덕분에 전 역사물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수원성, 해녀 등, 시간의 깊이가 있을 때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을 찾는 오늘에 이르게 해 준 작업입니다. 그후 일본 큐슈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해외전시를 가능하게 해 준 소중한 작업이기도 하죠. 

 

 

준초이 작가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예술가라면 누구나가 갖는 공통의 관심사일 거예요. 그림 또는 피사체를 통해 그것에 투영된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해요. 그러다 보니 저에게 부족한점이 너무나 많아요. 좀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나를 더욱 성숙시키지 못했어요. 작업을 해오면서 여러가지 혼돈을 아직껏 겪고 있어요. 지금은 작업보다는 발표를 통해 세상과 부딪쳐가면서 나 자신을 정비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인물사진 촬영_ 정준 객원영상기자
작품사진 제공_ 준초이 작가 

facebook twitter

#준초이 #준초이작가 #사진작가 #사진 #사진가 #인물사진 #광고사진 #사람 #인물촬영 #영혼의합 #해녀들 #다니엘 #반가사유상 #백제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