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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미술가들의 기자시절 담은 ‘아담한 필촉’ 기획자, 신문박물관 장해림 연구원

2024-08-02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유명한 미술가들의 기자로 활동했던 시절을 조망하는 전시다. 신문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상반기 기획전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삽화 미장센’전이다. 

신문박물관 로고 이미지

 

 

 

신문박물관

 

 

고희동, 김규택, 노수현, 안석주, 이마동, 이상범, 이승만, 정현웅, 최영수 작가는 근현대 문화예술계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이들로, 근대기에 신문사에서 기자 혹은 사원의 직함을 달고 전속화가로 활동했었다. ‘아담한 필촉’은 이들의 기자 시절을 집중 탐구, 조망하며 한국 근대기의 시각문화와 삽화미술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전시다. 

 

전시의 제목 ‘아담한 필촉’은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가 “이마동의 삽화가 신문소설을 압축해 잘 그렸다”는 의미로 “아담한 필촉”이라 평했던 것과 미술기자의 삽화 제작을 영화 연출에 종종 비유하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신문박물관에서 9월 8일까지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삽화 미장센'전이 열린다. 

 

 

전시는 한국에서 최초로 삽화가 탄생하고 신문지면에 등장하는 배경을 다루는 ‘삽화의 태동’, 1920년대 일간지의 창간과 함께 미술기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신문미술의 개창과 ‘미술기자’ 전성시대’, 1930년대 이후 여러 사정으로 신문사를 떠난 미술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과정을 그린 ‘학예부를 떠나서’의 세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다. 

 

9월 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최초의 만평가인 화백 이도영, 만화를 처음 들여온 기자 김동성의 역할, ‘삽화계 삼대천왕’으로 불리며 당대 신문 삽화미술의 부흥을 이끈 동아일보 이상범, 조선일보 노수현, 매일신보 이승만의 자료와 학예부에서 기른 문예적 재능을 영화 연출로 피워낸 안석주의 1937년작 흑백유성영화 <심청>, 이상범의 1950~60년대 신문삽화 원본으로 제작한 삽화 병풍, 신문박물관의 신문 희귀자료 및 아카이브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신문박물관의 장해림, 김현주 연구원이 기획했다. 신문박물관에서 전시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장해림 연구원은 학부에서 국제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근대기 미술시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장해림 연구원으로부터 이번 전시에 대해 들었다. 

 

신문박물관 장해림 연구원

 

 

Q. 이번 전시는 어떻게 기획이 됐나.


시작은 ‘이 대단한 미술가들의 기자시절이 궁금해서’였습니다. 박물관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면 북악산이 그대로 보이는데요, 산수화가 이상범이 동아일보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고개를 들어 밖을 보면서 저 산의 능선을 그리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상범의 작품을 조명하는 것은 여타 기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신문사 시절을 조명하는 것은 신문박물관에서만 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소장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고요. 

 

Q. 전시제목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삽화 미장센’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제목은 1934년 장편소설 <삼곡선>의 연재를 예고하는 실제 기사(<동아일보>, 1934.9.19., 2면)에서 발췌했습니다. 이마동이 소설의 삽화를 그렸는데, “새로운 정취, 아담한 필촉으로 그려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담한 필촉은 알맞은 크기로 산뜻하고 예쁘게, 소설의 내용을 정해진 컷에 잘 담아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부제인 ‘기자가 그려낸 신문삽화 미장센’은 신문사에 소속된 기자로서 이들이 마치 영화 연출을 하듯이 그림을 그렸던 것에 비유했어요. 미술기자 안석주는 실제로 이후 영화감독으로 전향하기도 하고, 당시 영화기법을 적용한 삽화가 유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신문 미술은 영상 미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시 전경

 

 

Q. 당시 미술기자의 활동은 어떠했나.


부르는 명칭은 회사마다, 시대마다 달랐는데요, 미술기자라고 하기도 하고, 전속화가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던 것이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삽화를 주로 많이 그렸고, 광고부 사원으로 입사해서 광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정현웅,) 신문이나 잡지의 일러스트, 디자인(도안)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상범은 신문소설 삽화로 이순신을 그리게 되는데, 동아일보가 진행하던 충무공유적 보존운동을 위해서 이순신 영정을 그리기도 합니다. 신문사가 필요로 하는 미술활동이면 대부분 개입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상범 월력

 

이상범 병풍

 

 

Q. 전시는 미술기자 9인의 행적을 탐구하는데, 어떻게 9인을 선정했나. 


1920년부터 1950년까지 활동한 미술기자 중 가장 대표적인 9인을 골랐습니다. 신문박물관 소장품 중에 ‘동아일보 퇴사원록’이 있습니다. 동아일보를 거쳐간 사원들의 인명 정보를 기록한 일종의 인사카드인데요, 광복 이전의 기록을 보니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입사, 퇴사를 비롯해 각종 인사 정보가 세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월급도 기록되어 있는데, 고희동의 경우 다른 기자들이 1920년 기준 60-70원의 월급을 받을 때 80원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미 최초의 서양화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동아일보 사원록을 바탕으로 다른 신문사들까지 탐구해 나가다 보니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고, 기록이 명확한 9명을 추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삽화계의 3대천왕이라든가, 이 신문사에는 누구, 저 신문사에서는 누가 유명하다는 식으로 미술기자들이 대중 사이에서 유명세가 있었기 때문에 선정하기 편리하기도 했습니다.

 

Q. 이 인물들이 근현대 문화예술계에 미친 가장 큰 성과는 무어라고 보나. 


이미지의 대량유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기의 인쇄미술은 모더니티의 상징입니다. 굉장히 많은 이미지가 재생산, 유통되었습니다. 삽화가 사진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신문 소설, 기사 외에도 광고, 교과서, 엽서 등지에 적용되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은 삽화미술, 인쇄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았고, 신문명에 대한 정보의 창이 대폭 확장된 셈입니다. 

 

신문 삽화가로서의 역할과 성과는 그렇다고 할 수 있겠고, 이후 개별적으로 순수화가로 활동하면서 미술제도에 기여하거나 후학을 양성한다든지(고희동, 이상범, 노수현, 이마동, 정현웅), 삽화 또는 만화에 전념한다든지(이승만, 김규택, 최영수) 영화인이 된다든지(안석주)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들이 신문사에서 있던 곳은 주로 ‘학예부’인데, 지금의 문화부와 비슷하죠. 근대 한국 문화예술계의 최전선에서 겪고 보고 들은 기자생활이 이들에게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시 전경

 

 

전시에서는 다양한 자료와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다. 

 

 

Q. 총 3개의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지는데, 각 주제의 관람포인트가 있다면.


1부에서는 1920년 이전의 신문미술에 대해 알아봅니다. 근대기에 인쇄미술이 발달하면서 교과서, 신문 위주로 삽화가 탄생하고 초창기에는 일본인 삽화가들이 그리게 됩니다. 그러다 대한민보에 이도영, 동아일보의 김동성이 각기 최초의 만화, 최초의 4컷 만화를 창시하면서 신문 만화의 역할이 떠오릅니다. 

 

2부는 1920년 민족 일간지들의 창설과 함께 본격적으로 미술기자들이 탄생하고 신문삽화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입니다. 말그대로 미술기자 전성시대인데요, 신문 미술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각 신문사마다 미술기자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삽화계 삼대천왕”이라며 우열을 논하기도 하고, 축화, 소설삽화, 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신문미술에 열광하는 근대기 대중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3부는 이들이 학예부를 떠나서 각기 어떤 진로로 나아가게 되는지, 미술기자의 역할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나뉘게 됐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삽화가, 만평가, 편집기자, 디자이너, 미술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글’을 쓰는 기자로 나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을 짚어가면서 보시면 알차게 관람하실 수 있겠습니다. 

 

Q.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의미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근대 시공간을 주름잡았던 유명 미술인들, 우리가 잘 아는 화가들이 직장에서 ‘오더받은대로’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도영, 이상범, 노수현은 흔히 동양화가로 분류되는데요. 이들은 실제로 전통화숙에서 도화서 화원을 사사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신문사에서 요구받은대로 마감기한에 맞춰 그림을 그려야 하다보니 화풍과 시대를 막론하고 만화나 아주 동시대적인 장면, 예를 들어 호텔 레스토랑에서 매혹적으로 앉아있는 여성과 같이 동양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을 흥미롭게 그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산수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싶은 과거를 볼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서양미술을 전공한 화가들이 고려시대, 조선시대 배경의 역사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그런 교차를 짚어낸 점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Q. 신문박물관의 앞으로의 계획은. 


연 2회 기획전을 운영하는 신문박물관은 올 겨울 2024년 하반기 기획전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 세부적으로는 정하지 않았지만 기존 상설전시가 교육 중심으로 어린이, 가족 관람객 위주로 운영된다면 기획전은 성인 관람객도 향유할 수 있는 전시로 폭넓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근현대사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신문을 주제로 작업하는 컨템포러리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신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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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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