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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인터뷰] 위안과 격려의 카피, <한 줄 카피> 정규영 저자

2024-08-09

짧은 한 문장의 말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짓게 하기도 한다. ‘기적은 우연을 가장하여, 노력하는 사람 앞에 나타난다’는 말은 나태했던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일요일 저녁 무렵부터는 이미 월요일이다’는 말은 유머와 공감을,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라는 말은 위안과 격려를 준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긴 이 말들은 모두 광고의 카피들이다. <한 줄 카피>에는 이러한 카피들이 모여 있다. 

 

<한 줄 카피>의 정규영 저자는 광고인으로 20여 년간 광고대행사와 프로덕션을 오가며 CM플래너, 프로듀서,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 한국P&G, 필립스코리아 등 국내외 기업의 광고, 홍보 영상, 전시 영상, 디지털 영상 등 천여 편의 제작에 참여해왔으며, 직접 카피를 쓴 작품들은 대한민국광고대상 특별상,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광고학회 선정 올해의 광고상, 대한민국광고대상 우수상, 미국 Questa Awards 동상 등 국내외 광고제에서 다수의 수상을 하기도 했다. 

 

 

<한 줄 카피> 정규영 저자, 씨세븐플래닝즈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는 현재 광고 영상을 중심으로 광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광고회사 ㈜씨세븐플래닝즈 대표이자 종합광고회사 ㈜렛잇플로우 이사로 두 회사에서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한양사이버대학교 광고미디어학과 겸임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전문 광고인인 그가 <한 줄 카피>라는 책을 내게 된 것은 오랜 전 시작된 취미생활에서 비롯됐다. 광고회사에 입사해 일본의 광고 카피들을 접했던 그는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던 일본 광고 카피들을 수집했고, 일본어 공부를 통해 직접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카피가 수천 개에 이르렀고, 그는 SNS를 통해 이 카피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카피들을 소재로 글을 쓰기도 해왔다. 

 


<한 줄 카피>, 포르체, 정규영 지음

 

 

<한 줄 카피>는 그가 수집한 수 천개의 일본 광고 카피 중 150개의 카피들을 담고 있다. 책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일본 광고 카피 중 그가 뽑은 100편의 인생 카피들과 카피에서 비롯된 그의 에세이 50편이 실려 있다. 이 카피들은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큰 울림으로 다가와 ‘광고 카피는 브랜딩’이라고만 여겼던 생각을 변화시켰다. 정규영 저자는 광고 카피를 통해 이 사회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한다. 여기엔 저자의 삶의 철학이자 광고인으로서의 신념인 ‘공감’과 ‘발견’이 담겨있다. 

 

전문 광고인으로서 저자가 뽑은 좋은 카피는 무엇일까. 또, 그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정규영 저자로부터 그의 광고 인생과 <한 줄 카피>에 대해 들었다. 
 

<한 줄 카피> 정규영 저자

 

 

Q. 오랫동안 광고일을 해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10여 년 전 진행했던 현대증권 에이블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좋으니 이미지를 세련되게 바꿔보라’가 미션이었다. 너무나 큰 기회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프로덕션 기획실장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체 기획을 짜고 콘티와 카피를 다 만들었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하는 ‘에이블’이라는 키워드의 캠페인이 완성됐다. 마음대로 해보라 했고, 정말 내 마음대로 작업하면서 성과를 이루어 낸 프로젝트였다. 나에게 큰 분기점이 됐던 경험이었다. 
 

 

현대증권 Able 캠페인_ 엘빈 토플러 편 (이미지 제공: 정규영)

 


 

현대증권 Able 캠페인_ 베르나르 베르베르 편 (이미지 제공: 정규영)

 


 

현대증권 Able 캠페인_ 다니엘 헤니 believable 편 (이미지 제공: 정규영)

 

 

Q. 카피라이터로서 시각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아트디렉터와의 협업이 중요할 것 같다. 협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경험 혹은 이인삼각이 잘 이루어진 경험이 있나. 

 

연차가 낮을 땐 직군적인 관점이 강했던 것 같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자존심, 고집 같은 것이 컸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카피라이터는 카피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 중에서도 텍스트적 감각이 좋은 분들, 카피라이터 중에서도 디자인 감각이 좋은 분들이 많다. 연차가 높아지면 좀더 상대방의 관점을 포함해 조율해 나가는 것 같다. SNS를 통해 카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글쓰는 분들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분들의 관심도 크다. 이처럼 인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디자이너가 많다. 서로의 의견과 관점을 존중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다나와닷컴의 TV광고를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쓰고 콘티 짠 것을 감독이 작업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색감과 영상 연출로 완성이 됐다. 내가 짠 콘티가 맞나 싶었다. 질투가 나기도 하면서 감동적이었다. ‘내가 쓴 카피가 이렇게 만들어지다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놀라워했던 적이 있다. 
 



 


다나와닷컴 TV 광고 (이미지 제공: 정규영)

 

 

Q.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후배들을 교육시킬 때 썼던 특별한 방법이 있나.


카피를 똑같이 적어보게 하거나 만들어진 광고를 보고 역으로 콘티를 짜보게 한다. 콘티를 짜는 것은 결국 패턴이다. 5가지 방법을 아는 것과 100가지 방법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100가지 방법을 알면 더 다양하게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 한 두 달만 하면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잘 표현하게 된다. 

 

Q. 작업을 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결국엔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과거엔 광고가 반복해서 메시지를 주입하는 경향이 많았고, 실제로 그렇게 효과를 보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였던 것은 광고는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는 거였다. 결국에는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그 면적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항상 공감의 포인트를 찾는다. 

 

레퍼런스를 찾을 땐 프로젝트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소비자들이 관심있어 하는 영화, 미술, 음악, 소설 등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책을 쓰게 된 것도 이 부분과 연관이 있다. 평소 즐겨보던 소설책, 인문학책에서 관심 있는 부분들은 필타를 통해 문장을 모은다. 아카이빙은 많은 도움이 된다. 

 

Q. 누구나 자료를 모을 순 있지만 그것을 구조화해서 좋은 콘텐츠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카이빙은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


임팩트 있고, 보는 순간 관심이 가는 것, 키워드가 언젠가 영감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무조건 모은다. 텍스트는 항상 옮겨 적는다. 문장 그대로를 다 적는데, 카피의 경우엔 엑셀파일을 활용한다. 당시의 관점들이 나중에 다시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필사, 필타는 단순히 받아 적는 작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보사시절 기사 공부를 할 때 일간지를 필사했고, 자연스럽게 기사체가 흡수되는 것을 경험했다. 카피의 경우도 필사를 하면서 체내화 되는 것 같다. 영상의 경우엔 다운로드 받아 파일을 보관한다.

 

 

정규영 저자. 그동안 모은 광고 카피 관련 자료 앞에서.

 

 

Q. <한 줄 카피>에서는 일본 광고 카피를 담았다. 우리나라 광고 카피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내가 주로 보아온 것들에서 비교를 하자면 한국의 카피가 좀 더 직접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 카피의 경우엔 여전히 하이쿠나 센류와 같이 문학적인 느낌이 강하다. 말을 던지듯, 말을 툭 하고 거는 형태의 광고가 아직도 한국보다 많다. 모바일 중심으로 가면서 비슷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하이쿠, 센류와 같은 문화적 전통에 의한 차이는 광고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Q. 일본에서는 짧은 정형시인 하이쿠, 센류와 같은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다.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의식 속에 깔려 있는데, 이것이 광고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일본은 그런 자산이 있다. 우리도 시조대회가 있긴 하지만 일본에서 일반인들이 하이쿠 대회에 참여하듯이 즐기지는 않는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광고 카피 대회 같은 행사도 열린다. 수상작품만을 뽑아 매년 책을 내기도 한다. 그만큼 센류나 하이쿠의 정서가 깔려 있고 온 국민이 그것을 향유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카피도 자연스럽게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Q. 좋은 광고, 좋은 광고 카피란 무엇인가.


상황과 소비자에 따라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상황에 맞는 문제해결방식이 중요하다. 정답은 없다. 광고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광고라면 어떤 방식이든 좋은 광고가 된다. 광고를 만드는 목적은 무수하다. 그 목적에 따라 방법론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좋은 광고, 카피는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와 소비자가 가진 이야기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에 대한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광고뿐 아니라 영화, 디자인 등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Q. 광고회사가 없어지거나 제품이 없어지면서 목적이 휘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광고 카피들을 잘 수집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갈무리하게 됐나. 

 

학생때부터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일러스트도 만화를 그렸고, 만화를 통해 날 표현했다. 만화뿐 아니라 음악을 듣는 것,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광고대행사는 너무나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20여 년간 광고주의 목적에 맞는 표현활동을 해오면서 내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해왔었던 것 같다. 2022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우연히 시작했고, 일본어 카피를 보고 해석해보니 너무 좋은 것들이 많았다. 과거에 수집했던 것에 더해 본격적으로 아카이브를 해보기로 했다. 

 


정규영 저자와 장성환 편집위원

 

 

Q. <한 줄 카피>는 어떻게 구성이 됐나. 


본격적인 아카이빙을 시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왜 이것이 좋은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고, 글을 통해 설명을 하다 보니 에세이처럼 글을 쓰게 됐다. 20여 년간 억눌려 있던 표현들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이 책엔 내가 수집했던 인상깊었던 카피 100개와 그렇게 썼던 50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Q. 글에 대한 기폭제가 일본의 광고 카피였던 셈인데, 일본은 ‘거울속의 나라’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카피를 정리하고 스크랩하면서 문화적 차이는 느끼지 않았나.


70년대 카피부터 현재까지 50여 년 사이의 카피를 꾸준히 보고 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정 반대의 부분들도 있다. 부모자식의 관계, 선생과 학생의 관계, 친구의 관계 등 인간관계에 대한 것들은 비슷한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 외에 회사생활이나 문화적 부분에 대해선 다르게 보는 관점이 있다. 같기만 하거나 다르기만 했다면 재미를 덜 느꼈을 것이다.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많아 지금도 여전히 재미를 느낀다. 지속적으로 일본 카피를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이다. 

 

Q. 카피는 만들어졌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하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책에 소개된 내용 중 ‘회사 설명회가 아니라 직업 설명회를 엽니다’라는 카피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평소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이자 젊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다. 이 글을 선택한 배경은.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라는 카피 자체가 뒤통수를 치는 듯했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을 선택한 운이 좋은 케이스였지만 일을 하다 보면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 상황에 짖눌리기도 한다. 80년대의 광고인데 40여 년 전 카피가 지금에 와서 더욱 확장된 의미로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Q. 좋은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돋보기가 다르다고 생각된다. 최첨단 미디어 광고에서 사용된 것들이 더 울림이 크다는 거다. 위안과 격려가 담겨있다. ‘지켜본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응원이다’라는 말은 정말 큰 힘을 주고, 세대를 넘어 공감력을 끌어낸다. 이런 부분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은데. 


20여 년 전 본 책 중 세계 각국의 카피를 모아 놓은 책이 있었다. ‘자본주의의 시’와 같은 제목이었다. 매우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카피가 현대사회에서 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겨진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남겨지고 회자되는 카피들은 자본주의의 시라 불릴 만한 역할을 하고 있다. 

 

Q. 최고의 카피라고 꼽는 것이 있다면. 


‘Just Do It’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피라 생각한다. 심플하게 영향력을 주는 부분도 그렇지만 단순히 카피를 넘어 인생에 주는 교훈들이 많다. 나의 지향점이 가장 잘 담겨있기도 하다. ‘멋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계속 되뇌게 되는 슬로건이다. 
 

 

나이키 ‘Just Do It’ (이미지 제공: 정규영)

 

 

Q. 슬로건과 캐치프라이즈는 어떻게 다른가. 


일본에서는 캐치카피라 말한다. 인쇄광고에선 헤드라인이라 하고 바디카피로 나누기도 한다. 슬로건의 경우엔 브랜드 앞에 붙여 브랜드를 설명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헤드카피가 가장 많다. 

 

Q.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파편적으로 적는다. ‘보험은 모험에서 시작됐다’, ‘우연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처럼 운을 맞추는 방법, 동음의 구조 및 변화 등을 정리한 책들이 있다면 글쓰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책을 준비중에 있다. 아이디어 발상법, 방법론에 대한 내용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론을 담고자 한다. 광고뿐 아니라 카피쓰는 법,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다.

 

Q. 집필 이외에 어떤 계획이 있나.


지금 광고계가 많이 어렵다. 경기자체가 좋지 않은 것 외에도 산업구조적 측면에서 SNS 등으로 인해 광고계가 현재 격변기에 있다. 산업 미디어와 광고산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시기다. 자구책으로 여러가지 방법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번 책을 계기로 콘텐츠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카피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준비중에 있다. 

 

인터뷰어_ 장성환 기획편집위원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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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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