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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짧은 한 줄의 카피에 ‘사람다움’을 담는 사람, 카피라이터 정철

2025-01-31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카피는 강한 울림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가슴 한 켠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이 카피들을 쓴 사람은 바로 카피라이터 정철이다. 

 

 

카피라이터 정철 (사진제공 : 정철)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라는 명함으로 첫 출발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카피라이터로살아가고 있다. 카피라이터 38년차. 15년 전부터는 작가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는 그는 사람냄새 나는 카피라이터로 유명하다. ‘사람’은 그의 가장 큰 화두이자 그가 가진 목적지이기도 하다. 

 

준비되었던 ‘카피라이터’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랬던 그가 카피를 쓰게 된 것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운명이었다. 고향인 여수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그는 중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장 친했던 친구를 따라 서울로 홀로 유학을 왔다. 하지만 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로 생활을 했다. 그러다 현충일을 맞아 글짓기 대회에서 시를 썼던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가 쓴 시는 장원을 했고, 그때부터 그는 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당연히 국문과 진학을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을 했다. 경제학이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수학과 가까운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점차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국문과, 신방과 등의 수업을 들으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숙방에 틀어박혀 단편을 쓴 것이 고대 문학상을 받았고, 그는 글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을 굳혀갔다. 

 

하지만 면접만 보면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었던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모 대기업 입사를 위해 원서를 접수하게 됐다. 이때 그의 운명의 길이 열렸다. 접수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며 찰나에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 것. 출구 한 쪽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게 된 그는 ‘카피라이터 추천’이라는 문구에 빨려 들었다. 카피라이터’라는 말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광고 문안을 쓰는 직업이라는 것이 다 있나’라는 신기함과 ‘재미있겠다’는 두근거림을 안고 그는 바로 추천서를 요청했다. 

 

‘경제학과=취업보장’이었기 때문에 추천서 작성 요청을 퇴짜 맞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추천서를 받아 접수를 했다. 대기업 면접일과 카피라이터 시험일이 겹친 운명의 장난 앞에서 면접을 보기만 하면 대기업 취업이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모험을 택했고, 카피라이터 시험에 합격했다. 

 

카피라이터 정철

 

정철 카피라이터의 북토크 

 

(사진제공 : 정철)

 

 

갈수록 내 일, ‘카피라이터’


빨려들 듯 카피라이터가 된 그는 1년 남짓 그 일을 하면서 ‘이게 내 일이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1년 정도 일을 한 후 다른 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카피라이터는 무척이나 바쁘고 정신없다. 하루에 5가지 정도의 다른 제품을 다룬다. 아침에는 꽃을 팔고, 점심에는 집을 팔고, 저녁에는 옷을 파는 식이다. 쉴 틈이 없는 이 일에 대해 그는 지루할 틈이 없다고 느꼈다. 매일 새로운 상품을 만나고 매일 새로운 메시지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제품의 판매를 위해 최고의 카피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카피라이터들은 스트레스도 상당하지만 그는 스트레스 관리에도 능했다. 늘 100점짜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던 것이다. 때론 ‘60점짜리 카피를 쓸 때도 있지만 50점짜리 쓴 놈보단 낫지’라는 여유를 가졌다.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찍 독립을 해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첫 1년의 시간 동안에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첫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1년이 지난 후부터 모든 대형사에서 그를 찾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가 가장 중요한 철칙으로 삼았던 것은 ‘약속’이었다. 그는 시간이나 마감에 대한 약속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는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지속성을 지켜가는 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피라이터 정철의 노하우가 집약된 책 <카피책>

 

 

‘카피라이팅’에 대한 노하우 


이렇게 재미있게, 치열하게 카피라이터로 살며 그는 수많은 카피를 만들어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애정을 느끼는 카피로 ‘아파트 카피’를 꼽았다. 그가 살던 매봉터널 근처 아파트 앞에 고층 스포츠센터가 세워진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결사반대를 했고, 그는 카피를 쓰게 됐다. 그는 다름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로 카피를 썼다.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 부드러운 그의 카피는 강한 힘을 냈고, 결국 해당 건물은 카피 문구처럼 한 뼘 옮겨지어졌다. 

 

그는 어떻게 이런 카피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카피에 대한 노하우에 대해 그는 “찾아다니는 일을 남보다 많이 하는 것”이라 말했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생각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다. 아무리 앉아있어도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를 슬럼프로 친다면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 그런 때를 잘 견디고 버티는 것 같다는 그는 그 상황을 빨리 헤쳐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발버둥치는 대신 슬럼프와의 동거를 시작한다고 했다. 슬럼프를 밀어내면서 옥신각신하면 슬럼프도 재미있을텐데 그냥 두면 재미없네 하고 슬럼프가 가버린다는 것이다.  

 

정 하기 싫을 때 그는 일을 놓아버린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다 보면 힌트가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논다’고 표현했지만 그의 머리는 쉬지 않는다. 쫓아오는 생각을 늘 머리속에 둔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 생각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는 자신의 카피라이팅에 대한 노하우를 <카피책>에 담았다. 카피라이팅을 위해 그가 생각하는 방법, 쓰는 방법을 잘 정리해 놓은 <카피책>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카피라이팅 책이라 말할 만큼 카피라이팅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목적지=사람


아이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그의 아파트 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목표, 지향점은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사는 세상’이 정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한 걸음이라도 보태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됐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직후였다. 

 

‘사람’에 대한 마음은 그가 쓴 여러 정치 카피에서도 드러난다. 문제인 전 대통령(당시 변호사)를 만나면서 그와 함께 가기를 결심했고, 2012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을 위한 정치 카피를 썼다. ‘사람’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사람 냄새 나게 살고자 하는 그의 출발점이자 목적지가 됐다. 그렇게 그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짧은 카피에 녹여낸다. 

 

정철의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그는 매년 한 권의 책을 내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가고 있는 그는 최근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이라는 책을 냈다. 그가 책을 통해 권하는 것은 재미있는 인생이다. 그는 매일같이 똑같은 지루한 일상을 재미있게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생각을 꼽았다. 우리 모두가 카피라이터는 아니지만 카톡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에도 남들과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고, 이러한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하루하루가 쌓이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가 전하는 또 한가지의 중요한 메시지다. 바로 자신의 인생 카피를 만드는 것.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이러한 인생 카피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인생 카피는 늘 흔들리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흔들림없이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정철 카피라이터가 쓰는 글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글의 온도는 따뜻하다. 그가 권하는 방식대로 인생 카피를 통해 견고한 삶,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 걸음을 떼 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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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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