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2
국적기는 단순한 항공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국가 정체성과 국민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델타항공(Delta)이 미국을, 루프트한자(Lufthansa)가 독일을, 에어프랑스(Air France)가 프랑스를, JAL이 일본을 상징하듯, 대한항공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자리 잡아왔다.
그런데 이번 대한항공의 CI(Corporate Identity) 개편은 기존의 국적기 정체성을 유지하기보다, 오히려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하늘색 기체는 보다 짙은 푸른색으로 변경되었고, 대한항공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태극을 연상시키는 로고의 붉은색과 푸른색도 빠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기체에 적혀 있던 한글 ‘대한항공’이 삭제되고 영어 ‘KOREAN’만 남은 점이다. 대한항공 측은 글로벌 브랜드 정체성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의 국적기들은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변경 전 로고와 변경 후 로고의 모습. 이번 대한항공의 CI(Corporate Identity) 개편은 기존의 국적기 정체성을 유지하기보다, 오히려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국적기의 역할은 단순한 항공사가 아닌 국가의 자존심
국적기는 단순한 민간 기업의 항공기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국민의 자부심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세계 각국의 국적기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자국의 문화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항공(JAL)은 기체 꼬리에 일본의 국기 ‘히노마루(日の丸, 태양의 원)’를 형상화한 붉은 두루미 로고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일본공수(ANA) 역시 일본 국기를 포함한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국제항공(Air China)은 붉은 봉황 문양과 함께 ‘中国国际航空’라는 중국어 표기를 고수하고 있으며, 심지어 베트남항공(Vietnam Airlines)조차도 전통적인 연꽃 디자인과 베트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국적기들은 각 나라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 브랜딩을 넘어, 국가 이미지의 일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국적기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그 비행기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담는 매개체가 된다.
대한항공의 기존 디자인은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하늘색 기체는 세계 어느 공항에서나 대한항공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빨강과 파랑이 조화를 이룬 태극 로고는 국적기의 정체성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번 변경은 그러한 정체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한글이 사라진 대한항공, 국적기의 역할을 다시 묻다
특히 한글 ‘대한항공’의 삭제는 이번 변경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대한항공 측은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정작 다른 국가의 항공사들은 자국어를 유지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JAL과 ANA는 일본어를 함께 표기하고 있으며, 중국국제항공도 ‘中国国际航空’이라는 중국어 명칭을 병기한다. 베트남항공조차도 ‘Vietnam Airlines’와 함께 베트남어 명칭을 포함한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며,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도 한글을 BI(Brand Identity)에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네이버(NAVER)는 영어 표기를 줄이고 한글 ‘네이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전략을 수정한 것은 좋은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적기인 대한항공이 한글을 삭제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처럼 보인다. 이는 단순히 브랜드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늘색 기체는 보다 짙은 푸른색으로 변경되었고, 대한항공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태극을 연상시키는 로고의 붉은색과 푸른색도 빠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기체에 적혀 있던 한글 ‘대한항공’이 삭제되고 영어 ‘KOREAN’만 남은 점이다.
대한항공의 브랜드 전략과 나아가야 할 방향
디자인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지만, 그 변화가 가져올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번 대한항공 CI 개편이 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적기의 브랜드 정체성이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다.
국적기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국민과의 감성적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대한항공의 기존 디자인은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였고, 해외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느끼는 경험을 제공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오히려 ‘한국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국적기의 정체성은 단순한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와 국민의 자부심을 담아야 한다.
세계적인 항공사 중에서도 에어프랑스(Air France)는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키는 삼색 로고를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은 기체 꼬리에 영국 국기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국적기를 운영하는 항공사들은 디자인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대한항공의 기존 디자인은 세계 어느 공항에서나 대한항공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빨강과 파랑이 조화를 이룬 태극 로고는 국적기의 정체성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번 변경은 그러한 정체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국적기의 브랜드 정체성,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대한항공의 새로운 CI는 익숙함을 버리고 급격한 변화를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브랜드 리뉴얼은 단순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소비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만약 대한항공이 글로벌화를 이유로 한국적 요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브랜드 정체성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한국적인 것’을 유지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는 방향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번 대한항공의 CI 변경이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정체성’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조정이 필요하다. 한글을 다시 포함시키고, 국적기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디자인 요소를 재도입하는 등의 수정이 고려될 수 있다.
아직은 낯설고 아쉽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적기로서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에디터_ 정석원 편집주간(jsw0224@gmail.com)
사진출처_ 구글, 네이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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