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7
멋글씨, 캘리그래피를 통해 한글에 담긴 예술성을 널리 알려온 강병인 작가의 특별한 전시가 4월3일부터 5월 17일까지 중구 소파로에 위치한 N2 ARTSPACE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획의 변주, 해체로부터’로, 획의 본질에 대한 강병인 작가의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담아냈다.
그간 오랜 시간동안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현대한글서예를 선보이며 한글의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해온 강병인 작가는 이번 전시를 ‘해체와 조합이라는 한글의 근원으로부터 획의 본질을 찾아 나선 여정’이라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문자회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보여주었다.
전시 전경
전시는 세 가지 변주로 구성되었다. ‘획의 해체 그리고 일필휘지’를 보여준 ‘변주 1’, ‘해체는 조합으로, 획은 다시 글자로’를 말한 ‘변주 2’, ‘강병인의 글씨, 변주를 넘어 나전과의 협주’를 선보인 ‘변주 3’이다.
각각의 변주를 통해 강병인 작가는 소리를 하늘과 땅, 사람으로 나누고 합하는 원리를 지닌 한글을 담았고, 해체된 획들이 다시 합쳐진 글자를 통해 삶과 소리, 뜻을 심었으며, 오랜 시간 꿈꾸어 온 나전(나전장인 장춘철과 협업)과의 만남을 노래했다.
전시 전경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글씨를 써온 그의 50년 삶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글자들엔 한글의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한 그의 오랜 연구와 노력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자유롭게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한글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5월 15일 세종나신날을 맞이하여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시킨 현대한글서예를 통해 한글의 조형성을 찾아온 강병인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전통 서예와 결을 같이 하면서도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해왔다”는 그는 “기존에 한글, 우리 말이 가진 뜻과 소리를 시각화하고 글씨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면, 몇 년 전부터 기존의 전통 서예를 이어가면서도 재해석하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도전에 대한 시작이 이번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서예의 회화성’에 주목했다. 그는 미술시장으로의 진입이 쉽지 않았던 서예에 회화적인 요소를 입히고자 했다. “서예는 미술시장으로의 진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고, 90년대 말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멋글씨 분야 개척한 데 이어 또 다른 길로 건너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것이 바로 이번에 선보인 문자회화입니다. 서예에도 분명 회화성이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회화적인 요소를 전통 서예에 입혀야만 미술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문자회화였습니다.”
한글의 기본 획, 소리, 해체와 조합이라는 명확한 개념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에서 그는 획이 지닌 여러 이야기들을 표현하기 위해 ‘변주’라는 제목을 썼고, 한글이 가진 해체와 조합이라는 개념을 담아 ‘해체로부터’라는 부제를 썼다. “자크 데리다는 ‘해체주의’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를 말했죠. 견고한 중심부를 흔들어 주변부가 드러나게 하는 것인데요, 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께서는 한글을 만들 때 그런 중심부에 있는 견고함을 한글을 통해 흔들고 주변부 즉, 백성들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죠.”
먹에 담긴 여러가지 이야기들, 잠자고 있는 먹이 가진 고유성을 두드려 깨워 자신의 생각을 획 속에 담아내고자 한 그는 서법은 그대로 지키면서도 먹의 농담의 변화, 그 안에서의 회화성을 찾아가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일필휘지 안에서 붓의 속도, 필압, 먹의 농담 등에 변화를 시도했고, 그 안에서 회화성을 찾고자 했다. 종이에 다른 변화를 실험하기도 했다. “화선지, 한지, 옻 등에 따라 각각의 농담의 변화가 모두 다릅니다. 인위적인 표현이 아닌 붓이 가는 대로, 먹이 스미고 흐르고 마르는 시간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실험했습니다. 해체된 글자, 해체된 획과 원, 선 등은 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죠.”
전시 전경
‘꿈’, ‘웃’, ‘꽃’ 등의 그의 글자들은 그 자체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한자 목숨 수(壽)나 복 복(福)자는 복을 빌고 장수를 비는 기원문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릇이나 가구 등에 적용해서 사용한 것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은 한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꿈’, ‘웃’, ‘춤’과 같은 글자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1로 대응하고 지시하는 표의성의 요소가 담겨있기에 '꿈꿔봐, 다 이루어져', '웃어봐, 행복이야', '춤춰봐, 즐거워'라고 작품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시에서 자개와의 만남도 선보였다. “오랜 시간 고민으로 이루어진 작업들입니다. 제 글씨에 자개를 입혀 완성시킨 작품들로, 상업적으로, 디자인적으로 쓰인 글자들을 다시 꺼내 순수미술로 다시 새롭게 끌어온 작품들도 있습니다.”
강병인 작가
이번 전시는 강병인 작가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보여준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 전통 서예의 또 다른 변신을 선보인 그의 이번 전시에서 그의 획들은 ‘해체’라는 그 제목처럼 춤을 추듯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보이며, 아름답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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