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7
지난 11월 26일 코엑스에서 열린 <소싱인마켓 2025>의 특별부스 한쪽에, 묘하게 낯설고 동시에 친근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 있다. 이곳이 바로 강우현의 재봉예술 전시장, 일명 <Sourcing & Sewing – 미친 스테이지>다.
이 전시는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강우현이라는 한 예술가의 세계 전체가 잠시 서울에 상륙한 사건에 더 가깝다.
강우현 작가
우리에게 강우현은 이미 수많은 얼굴을 보여준 인물이다. 동화작가, 조각가, 서예가, 디자이너, 테마파크 기획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탐나라공화국의 총독. 그래서 그를 규정하기란 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어떤 호칭도 달아놓는 순간, 그는 곧바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선택된 매체는 재봉틀이다. 그것도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전시 안내문에 기록된 그대로, 하루 10시간, 100일 동안 무려 1,000시간을 재봉틀과 씨름하며 만들어낸 결과다. 그는 스스로를 “창작자가 아니라 세계를 짓는 자”라고 말한다. 세계를 짓는 자- 이 말은 이번 전시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재봉, 바느질, 천 조각… 그러나 장르가 아니다
전시장 벽면을 따라 늘어선 작품들은 처음엔 ‘텍스타일 아트’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발만 더 다가서면 이 인상은 쉽게 무너진다. 작품은 천을 붙이고, 꿰매고, 터뜨리고, 다시 메우며, 재봉질의 실선이 그림이 되고, 실밥이 조각이 된다. 그가 작업 노트에 적은 ‘무장르 비예술(Genreless Non-Art)’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회화도 아니고 공예도 아니며, 패션도 아니고 설치도 아니다. 오히려 재료가 바뀐 회화이며, 그림이 된 천이며, 조각으로 기능하는 봉제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은 매체와 장르를 나누는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는 ‘행위의 기록’이다.
강우현 작가는 말한다.
“쓰고, 그리고, 붙이고, 다시 부서뜨리는 장난기가, 또 다른 세계에서의 또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이 ‘장난기’는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실험정신에 가깝다. 어떤 경계도 두지 않으며, 어떤 규칙도 따르지 않는다. 한 조각 천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작품 곳곳에 박힌 실선은 마치 심전도처럼 생명성을 띤다. ‘생명을 짓는다’는 작가의 개념은 결국 바느질을 통한 생명 환류의 철학이다.
“그는 ‘예술가’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짓는 자’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강우현
필자는 이 전시를 보며 문득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상자를 열기 전,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 즉, 규정 불가능한 상태다. 강우현 또한 그런 예술가다.
동화작가라 부르면 ‘서예가’가 되며, 서예가라 하면 ‘조각가’가 되고, 조각가라 하면 ‘디자이너’가 된다. 환경운동가이고 테마파크 건설자이며, 사업가이자 실험가다. 어떤 라벨도 그를 붙잡아두지 못한다.
따라서 “재봉틀 예술가 강우현”이라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그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상태의 스냅샷이다.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전시 서문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언제나 다음 세숫물을 찾아 떠나는 인간이다.”
이는 그의 예술이 멈춰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매체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존재. 이번 전시는 그 이동의 ‘한 시점’을 포착한 귀중한 기록이다.
말그림 굿즈 모음
“이번 전시에 선택된 매체는 재봉틀이다. 그것도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전시 안내문에 기록된 그대로, 하루 10시간, 100일 동안 무려 1,000시간을 재봉틀과 씨름하며 만들어낸 결과다.”
천 조각이 만든 또 하나의 세계
작품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다른 세계가 겹쳐져 있다.
<질주하는 말>
색색의 천 조각을 겹겹이 이어 붙여 만들어진 말의 형상은, 강우현이 늘 그려온 ‘생명-운동-기세’의 삼박자를 그대로 품고 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실밥의 궤적이 곧 움직임의 방향이 된다.
<붉은 여우의 비약>
한 작품에서는 붉은 여우가 격자 패턴을 뛰어넘는다. 이 ‘격자’는 현실의 제약일 수도, 일상의 틀일 수도 있다. 강우현은 그 틀을 찢고 나온 존재들을 꾸준히 그려왔다.
<조각보처럼 이어붙은 세계>
어딘가 낡아 보이는 천 조각들—문양, 텍스처, 색감은 제각각이지만, 그것들이 한 화면 안에서 조화롭게 결합한다. 마치 ‘파편화된 현대의 삶’을 다시 꿰매어 하나의 서사로 복원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패치워크 벽작품>
여러 개의 작은 스케치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진 대형 패널은, 그의 상상력 도감(圖鑑)에 가까운 존재다. 인간, 동물, 식물, 기호, 알파벳, 풍경… 모든 것이 뒤섞여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
강우현이라는 ‘세계’를 견딜 공간
전시에 실린 작가론에서는 그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예술가’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짓는 자’다.”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이번 전시는 재봉틀이라는 작은 도구를 통해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우주의 스케일은, 사실 코엑스의 작은 특별부스 하나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필자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거대한 세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전시장과 기획자는 과연 존재하는가?”
누군가가 제안한 것처럼, 코엑스의 가장 큰 전시장에서 ‘슈퍼예술가 강우현 전’을 연다면 어떨까? 그의 회화, 조각, 서예, 환경 프로젝트, 공간 기획, 그리고 이번 봉제 작업까지—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 우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의 예술 세계는 이미 장르를 초월했고, 차라리 ‘종합예술 생태계’에 가깝다.
이제 한국의 예술계가 그 스케일을 감당할 기획력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코엑스에서 제주로 떠나기 전, 잠시 열린 포털(Portal)
전시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만 열린다.
그 후 강우현은 다시 제주 탐나라공화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시간이다.
상자를 열기 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강우현이라는 존재는 규정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상자를 여는 순간— 서울의 작은 부스 안에서 우리는 분명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재봉틀의 실선은 생명처럼 뜨겁고, 천 조각은 세계를 짓는 벽돌처럼 단단하다.
지금 이 전시는, 강우현이라는 거대한 우주가 우리 앞에 남긴 작은 발광(發光)이다.
그를 규정하지 말고, 그냥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말렌다’에 수록된 말그림 (총12점)
글_ 정석원 편집주간(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우현그래픽스
#강우현 #슈퍼예술가 #미친스테이지 #재봉예술 #Sourcing #Sewing #장르없는예술 #바느질아트 #코엑스전시 #탐나라공화국 #세계를짓는자 #예술실험실 #디자인정글전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