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5
디자인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안전한 자리에 놓으며 오직 그 자리만을 지켜왔다.
권력의 주체와는 거리를 두고, 그릇된 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공공의 영역에서는 ‘전문가’라는 이름 뒤에 숨었다. 디자인은 늘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2025년을 지나며, 그 말이 얼마나 비겁한 자기합리화였는지 더는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디자인은 권력지향적이다. 사용되는 순간, 선택되는 순간, 배제되는 순간마다 디자인은 이미 권력의 구조 안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디자인계는 오랫동안 '중립을 가장한 침묵'을 선택해왔다. 불합리한 공공입찰 제도 앞에서도, 특정 권력을 미화하는 시각언어 앞에서도, 디자인은 "의뢰인의 요구가 그랬다"는 말로 책임을 넘겼다.
2025년의 한국 사회는 디자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시는 왜 점점 더 비슷해지는가', '공공디자인은 왜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가', '권력자의 언어는 왜 점점 더 자극적이고 단순해지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디자인은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응답하지 않는 길로 스스로 선택했다.
공공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
2025년에 '디자인정글 칼럼'이 가장 집요하게 들여다본 것은 '공공 영역'이었다.
공공디자인, 공공브랜딩, 공공미술, 공공공간. 이 모든 말은 '공공'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예산, 행정 편의가 중심이 되는 구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공공 분야 입찰의 부조리는 여전히 공공디자인의 기본 규칙으로 작동했고, 그 결과 디자인은 사고와 실험이 아니라 복붙 가능한 결과물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정은 "절차를 지켰다"고 말하고,
디자이너는 "의뢰에 따랐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시민은 의미 없는 공간과 메시지를 떠안는다.
이 구조에서 디자인은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2026년의 '디자인정글 칼럼'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2026년의 '디자인정글 칼럼'은 명확히 선언하고자 한다. 이제는 '편'을 가질 것이다. 그 '편'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 편', '공공의 편', '질문하는 편'이다. (그림: AI 생성)
권력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만드는 일
권력의 주체는 언제나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 이미지를 누가, 어떤 태도로 만드는가다.
2025년을 거치며 우리는 권력이 디자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수없이 목격했다. 정책의 실체보다 먼저 등장하는 로고와 슬로건, 갈등을 가리는 감성적 이미지,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세련된 시각언어.
디자인은 그 과정에서 너무 자주 기술자 역할에만 머물렀다.
"우리는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우리는 묻지 않는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한다. 디자인이 권력의 얼굴을 만드는 순간, 디자인은 이미 권력의 일부가 된다. 그럼에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2026년, 칼럼은 '편'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2026년의 '디자인정글 칼럼'은 명확히 선언하고자 한다. 이제는 '편'을 가질 것이다. 그 '편'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 편', '공공의 편', '질문하는 편'이다.
첫째, 공공디자인을 행정의 장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언어로 다룰 것이다. 누구의 목소리가 시각화되고, 누구의 삶이 배제되는지 끝까지 물을 것이다.
둘째, 디자인계 내부의 책임 회피 문법을 비판하겠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 "관행이었다"는 말이 어떻게 산업 전체를 무력화시키는지 드러내고 이를 비판할 것이다.
셋째, 권력과 디자인의 관계를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디자인이 권력을 미화하는 순간, 그 책임은 디자이너에게도 있음을 분명히 할 것이다.
이 시론은 변명하지 않기 위한 '선언'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디자인정글'이라는 매체가, 그리고 이 칼럼을 쓰는 필자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오래 디자인계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인적 관계에 많이 얽혀 있다는 이유로, 이제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자기검열을 내려놓고자 한다.
2026년의 '디자인정글 칼럼'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글이 될 것이다. 권력 앞에서, 제도 앞에서, 공공의 이름 앞에서 디자인이 누구 편에,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 끝까지 묻는 시론이 될 것이다.
디자인이 계속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결국 가장 세련된 형태의 방조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2026년, '디자인정글 칼럼'은 어떤 권력 앞에서도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임을 독자 여러분에게 거듭 천명하며, 이것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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