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리뷰

[29컷 공간다큐] ‘지식을 산책하게 만드는 공간’ - 경기도서관

2026-01-17

경기융합타운 한가운데 자리한 경기도서관은 멀리서 보면 도서관이라기보다 하나의 지형처럼 보인다. 건물은 ‘서 있는 덩어리’가 아니라 ‘흐르는 동선’으로 존재한다. 벽을 세워 닫기보다, 길을 내어 연결한다. 그래서 이곳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지식과 사람을 이동시키는 공공의 장치처럼 읽힌다.

 

 

 

 

경기도서관의 공간 경험은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열람실’보다 ‘광장’의 감각이 먼저 온다. 로비는 단순한 대기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속도를 낮추는 완충지대다. 여기서 도서관은 조용히 앉으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걷고, 둘러보고, 자신의 자리로 흘러가라고 말한다. 도서관을 ‘정숙의 규율’이 아니라 ‘사유의 리듬’으로 설계했다는 신호다.

 

이 건축을 설계한 곳은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다. 설계안의 이름은 ‘경기서원’. 조선의 서원이 지식의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토론과 배움의 마당이었듯, 이 도서관 역시 읽기와 대화, 머묾과 이동을 함께 품는 장소를 지향한다. 그 지향은 평면과 단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층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대신, 상하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흐름을 택한다. 중앙에서 바깥으로,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는 동선은 ‘목적지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경험을 만드는 길’이다. 책을 찾기 위해 멈추기보다, 걷다 보면 책과 마주치게 한다.

 

 

 

 

 

 

외관을 감싸는 수직 루버는 이 도서관의 태도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단단한 벽이 아니라 반투명한 막처럼 작동하며, 빛을 걸러 들이고 풍경을 겹친다. 내부에서는 바깥의 시간과 날씨가 느껴지고, 외부에서는 도서관의 움직임이 은근히 드러난다. 도서관이 ‘닫힌 상자’가 아니라 도시의 하루와 호흡하는 ‘열린 막’이라는 인상을 준다. 오전의 빛, 흐린 오후, 겨울의 낮은 해가 만드는 그림자는 그 자체로 이 건축의 또 다른 표지판이 된다.

 

내부로 들어가면 공간은 ‘구분’보다 ‘전이’로 작동한다. 조용한 좌석과 열린 라운지, 전시와 열람, 휴식과 탐색이 벽으로 칸칸이 나뉘기보다 서로 완만히 스며든다. 그래서 사용자는 자신이 지금 ‘열람 중’인지 ‘휴식 중’인지 단정하기보다, 읽다 쉬고 쉬다 다시 읽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머문다. 전통적 도서관의 긴장감 대신, 오래 앉아 있어도 부담이 적은 일상성이 만들어진다.

 

 

 

 

 

 

층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프로그램도 이 도서관이 품은 공공성을 입체화한다.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공간, 다문화 자료가 놓인 서가, 청년과 창작자를 위한 열린 공간은 ‘한 종류의 시민’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결’을 전제로 한다. 특히 상층으로 갈수록 공간의 성격은 더 유연해진다. 조용히 몰입하는 자리뿐 아니라, 토론하고 제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함께 놓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태도다. AI·디지털 스튜디오 같은 프로그램이 들어와도, 그것은 책을 밀어내는 쇼룸이 아니라 읽기와 사유를 확장하는 보조 도구로 절제되어 배치된다. ‘도서관의 중심은 여전히 읽기’라는 합의가 공간 속에서 유지된다.

 

 

 

 

 

 

 

 

 

건축의 흐름이 시각 언어로 번역되는 지점도 흥미롭다. 경기도서관의 LI(Library Identity)는 공공브랜딩 전문회사 엑스포디자인브랜딩이 맡았다. 두 개의 아치형 선은 지식의 펼쳐짐과 연결을 은유한다. 하나는 땅에 닿은 기반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로 열린 곡선이다. 고정된 기념비가 아니라 ‘열리고 이어지는 공공성’의 상징이다. 건축이 길을 만들었다면, 시각적 상징은 그 길의 방향감을 간결한 표식으로 남긴다.

 

경기도서관은 과시적인 랜드마크가 되기보다, 오래 머무는 풍경을 선택한다. 한 컷으로 요약되지 않는 대신, 29컷에 나눠 담아야 비로소 보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책을 소비하지 않는다. 걷고, 앉고, 바라보며 지식과 관계를 맺는다.

 

 

 

 

 

 

 

 

 

 

 

 

 

 

경기도서관은 말한다. 도서관은 더 이상 침묵의 방이 아니라, 사유가 흐르는 공공의 풍경이라고.

 

글_ 정석원 편집주간
사진_ 정준 영상기자(팀장) / 황문영 영상기자

 

facebook twitter

#경기도서관 #공간다큐 #공공도서관 #해안건축 #엑스포디자인브랜딩 #Library #아이덴티티 #경기융합타운 #공간기록 #디자인정글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