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
광화문은 그날 밤, 더 이상 광장이 아니었다. 길은 멈추고, 흐름은 통제되었으며,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했다.
BTS의 컴백 공연은 단순한 음악 이벤트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연출의 대상으로 삼은, 일종의 ‘총체적 디자인’이었다.
전통의 상징인 광화문과 세종대왕, 그리고 세계적 대중문화인 K-팝이 한 장면 안에서 결합되고, 그 장면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는 풍경은 분명 강력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화적 에너지와 기술적 역량이 응축된 상징적 장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공연은 분명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광화문은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대가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공 공간이 아니다.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행위에는 공공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사진출처_ 페이스북)
그러나 그 장면이 아름다울수록, 그 이면 또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날의 광화문은 누군가에게는 축제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멈춰버린 일상이었다.
상점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는 쉬어야 했으며, 시민의 이동은 제한되었다. 교통은 통제되고, 공공시설은 폐쇄되었으며, 도시의 리듬은 강제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이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묻게 된다.
이처럼 공공 공간을 대규모로 점유하고 시민의 일상을 조정하는 행위는 과연 어떤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가.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모든 구조의 중심에 하이브와 넷플릭스라는 두 개의 강력한 민간 주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하이브, 그리고 이를 전 세계로 독점 중계한 넷플릭스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브랜드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BTS의 컴백 공연은 단순한 음악 이벤트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연출의 대상으로 삼은, 일종의 ‘총체적 디자인’이었다.
문제는 그 가치가 생성되는 방식이다. 공공 공간과 공공 인프라, 그리고 시민의 ‘불편’이라는 비용 위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사적 기업의 이익으로 집중되는 구조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글로벌 이벤트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명백히 구조의 문제다.
공공 자원을 기반으로 형성된 경험이 사적 플랫폼을 통해 독점적으로 유통되고, 그 수익 또한 특정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는 ‘공공성의 설계’가 결여된 상태를 보여준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한 독점 중계는 문화 경험의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이제 문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공재가 아니라, 특정 플랫폼에 접속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로 재편되고 있다.
시민은 관객이 아니라 구독자가 되고, 광장은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 생산의 인프라로 전환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도시를 활용한 대형 문화 이벤트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이는 국가 브랜드와 문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명확해야 한다.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대가로 발생한 이익은 다시 공공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시민이 겪는 불편, 상인이 입는 손실,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시간의 비용은 단순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그것은 이 이벤트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투자’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보상 또한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일정 비율의 수익을 문화기금으로 환원하거나, 피해를 입은 상인과 노동자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 혹은 공공 문화 인프라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관계와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번 광화문 공연은 무대 위의 디자인보다 무대 밖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도시와 시민, 기업과 플랫폼, 공공성과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광화문은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대가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공 공간이 아니다.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행위에는 공공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화려한‘ 공연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한‘ 구조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디자인이 해야 할 역할이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도시의 모습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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