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7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단순한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 1990년대 초 국가 차원의 문화발전 전략 속에서 탄생한 이 학교는, 예술 영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후 수십 년간 한예종은 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등 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창작자를 배출하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세계 속에서 체감하는 한국 문화의 위상—영화, 드라마, 공연, 음악, 미술—그 이면에는 이 학교가 만들어낸 교육 생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한예종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발상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된 문화생태계를 해체하고, 검증되지 않은 환경 위에 다시 올려놓겠다는 위험한 실험이다.
수십 년간 한예종은 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등 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창작자를 배출하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논점은 ‘지역’이 아니라 ‘인프라’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응이 있다.
“광주를 무시하느냐”, “지방은 다 죽으라는 거냐”는 식의 감정적 반박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점을 벗어난 질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지역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그곳이 세계와 호흡하는 예술 인재를 길러낼 만큼의 문화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예술교육은 강의실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교육 환경이 된다. 공연장, 갤러리, 제작사, 방송, 독립예술공간, 기획사, 국제 교류,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대 창작자들과의 밀도 높은 접촉—이 모든 것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 생태계는 단기간에 조성되지 않는다.
행정적 결단으로 ‘이전’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방을 키우는 방법은 ‘이전’이 아니라 ‘축적’이다>
지방도시가 문화예술을 선도할 수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쇠퇴한 산업도시가 문화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축적하며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변모한 사례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 기반 도시재생은 이미 검증된 모델이다.
문제는 한국의 방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과 중심 행정’이다.
지방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단기적 성과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비슷비슷한 벽화마을, 출렁다리, 이벤트성 축제에 예산이 집중되는 동안, 정작 창작자가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화 토양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문화행정이 폐쇄적 인맥 구조로 운영되거나, 전문성보다 관계 중심으로 흐르는 문제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 수준의 예술교육 기관을 옮긴다고 해서, 그 기능이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예술교육은 강의실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교육 환경이 된다. 공연장, 갤러리, 제작사, 방송, 독립예술공간, 기획사, 국제 교류,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대 창작자들과의 밀도 높은 접촉—이 모든 것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한예종 이전은 ‘해답’이 아니라 ‘리스크’다>
만약 한예종이 이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생들은 더 넓은 문화현장과의 접점을 잃게 된다. 창작의 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재들은 다른 선택지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예술가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한다.
그 결과는 단순하다.
제도는 남고, 사람은 빠져나간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모델’이다>
정말로 지역의 예술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방향은 분명하다. 기존 대학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학을 설계해야 한다.
• 최소 20년을 내다보는 장기 로드맵
• 지역 기반에 맞는 특성화 예술교육 시스템
• 글로벌 예술대학과의 교류 프로그램
• 서울 주요 기관과의 순환형 협업 구조
• 안정적인 민간 후원과 재정 기반
• 무엇보다 창작자가 ‘머물고 싶은 환경’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지역은 스스로 경쟁력을 갖는다. 균형발전은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중심을 만드는 일이다.
한예종을 옮길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노후된 시설을 개선하고, 통합캠퍼스를 완성하고, 대학원 체계를 정비하고, 세계적 수준의 교육·창작 인프라를 확장해야 한다.
<청년을 ‘내려보내는’ 정책이 아니라 ‘비상시키는’ 정책이어야 한다>
교육은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다. 특히 예술교육은 더 큰 세계를 향한 욕망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전 논의는 정반대다. 이미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여기서 다시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기회의 확장이 아니라 축소다. 정책은 청년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이 비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예종은 옮길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한예종을 옮길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노후된 시설을 개선하고, 통합캠퍼스를 완성하고, 대학원 체계를 정비하고, 세계적 수준의 교육·창작 인프라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광주든 대구든 각 지역은
자기 이름의 예술학교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문화는 정치적 배치의 대상이 아니다. 예술교육은 행정적 이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전이 아니라 ‘축적’이다. 이식이 아니라 ‘창조’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정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사진출처_ 한예종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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