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7
서울 성북동 BB&M 갤러리.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흰 벽의 단정한 공간이 나타난다. 도시의 소음은 한 걸음 밖에 두고,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시간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조병수의 개인전 <공간이 繪화가 될 때(When Space Becomes Painting)>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 걸린 그림들은 건축가가 틈틈이 그린 회화가 아니다. 오히려 건축보다 먼저 시작되었고, 건축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질문처럼 보인다.
조병수를 설명하는 데 긴 수식은 필요하지 않다. 그는 한국 현대건축에서 자신만의 문법을 구축해온 몇 안 되는 건축가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땅을 함부로 점유하지 않으며, 형태보다 공간의 경험을 더 오래 고민해온 사람. 그의 건축은 늘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단단해서 생기는 침묵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그 침묵의 또 다른 언어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에게 조병수는 건축가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건축가의 취미 생활을 보여주는 자리일까.
전시를 보고 나면 그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재현된 형상은 없다. 설명적인 이미지도 없다. 대신 재료가 있고, 시간의 압력이 있고, 반복된 행위의 흔적이 있다. 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문득 그의 건축들이 떠오른다.
이곳에 걸린 그림들은 건축가가 틈틈이 그린 회화가 아니다. 오히려 건축보다 먼저 시작되었고, 건축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질문처럼 보인다.
전시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공간이 회화가 될 때.’
보통 우리는 회화를 평면 위의 이미지로 이해한다. 그러나 조병수에게 회화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생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BB&M 갤러리의 설명처럼, 이 전시는 조병수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공간에 대한 사유가 회화와 드로잉, 건축 모형과 설치를 통해 어떻게 형식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갤러리 벽면에 적힌 설명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회화는 건축과 분리된 장르가 아니다.”
짧지만, 이 전시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왜 회화를 계속 그려왔는지, 왜 특정 재료를 선택하는지, 왜 반복적인 행위를 이어가는지. 그의 설명은 이론적이기보다 담담했다. 오랜 시간 자기 질문을 놓지 않은 사람 특유의 단단함이 있었다.
실제로 전시장 안을 걷다 보면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 안에 머물게 된다.
붉은 안료가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흘러내리고, 수없이 반복된 선들은 빗물 자국처럼 아래로 내려앉아 있다. 어떤 것은 마치 흙벽의 표면 같고, 어떤 것은 오래된 콘크리트 위에 남은 시간의 흔적처럼 보인다.
재현된 형상은 없다. 설명적인 이미지도 없다.
대신 재료가 있고, 시간의 압력이 있고, 반복된 행위의 흔적이 있다.
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문득 그의 건축들이 떠오른다.
양평의 ‘땅집‘이 그렇고, ‘지평집‘이 그렇다. 그 건축들은 늘 땅과 하늘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을 위치시켰다. 과장하지 않았고, 풍경을 압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의 몸이 공간을 어떻게 감각하는지를 더 오래 생각했다.
이번 회화에서도 같은 태도가 읽힌다.
그는 화면을 장식하지 않는다. 비워두고, 기다리고, 재료가 스스로 말하게 둔다.
건축은 그 사유가 입체가 된 형태였고, 회화는 그 질문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온 기록일지도 모른다. 좋은 전시는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전시 보도자료는 조병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막’을 이야기한다.
조병수에게 ‘막’은 대충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의 욕망을 덜어내고 재료와 상황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비워두는 상태에 가깝다.
이 설명을 읽는 순간 그의 건축이 다시 떠오른다.
그의 공간들이 왜 그렇게 절제되어 있었는지, 왜 재료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는지, 왜 빛과 바람이 건축의 일부처럼 느껴졌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회화 역시 그렇다.
붓질은 손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 남긴 기록처럼 보이고, 화면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수행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가 단지 그림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 공간에는 드로잉과 건축 모형, 재료 샘플,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마치 한 건축가의 작업실이 통째로 옮겨온 듯한 장면이다.
그곳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선명하다.
좋은 창작자의 작업실은 늘 흥미롭다. 완성된 작품보다 생각의 흔적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성북동의 이 작은 전시는, 한 건축가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질문 하나를 조용히 펼쳐 보여준다.
조병수의 이 전시도 그렇다.
건축가의 결과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만들어지기 전의 생각과 감각을 들여다보는 경험에 가깝다.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들은 그의 이야기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왜 회화를 계속 그려왔는지, 왜 특정 재료를 선택하는지, 왜 반복적인 행위를 이어가는지. 그의 설명은 이론적이기보다 담담했다. 오랜 시간 자기 질문을 놓지 않은 사람 특유의 단단함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병수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부터 공간을 사유하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건축은 그 사유가 입체가 된 형태였고, 회화는 그 질문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온 기록일지도 모른다.
좋은 전시는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성북동의 이 작은 전시는, 한 건축가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질문 하나를 조용히 펼쳐 보여준다.
공간은 어떻게 존재를 드러내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건축이 끝난 자리에서도 계속된다.
<전시정보>
- 조병수 개인전 《공간이 繪화가 될 때 (When Space Becomes Painting)》
- 전시기간: 2026.5.16 – 6.20
- 전시장소: BB&M Contemporary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0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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