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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공간다큐] “사람은 왜 고향을 떠나는가” — 로테르담 FENIX가 건축으로 기록한 ‘이주의 공간’

2026-07-22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많다. 그러나 2025년 문을 연 FENIX(Fenix Museum of Migration) 는 조금 다른 질문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람은 왜 고향을 떠나는가?”

 

이곳에는 르네상스의 명화도, 현대미술의 스타 작가를 내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도 없다. 대신 여행가방과 보따리, 낡은 현관문, 작은 난민선, 버스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사물들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들이 모두 누군가의 삶과 기억,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FENIX는 이주(Migration)를 역사적 사건이나 통계로 설명하는 박물관이 아니다. 인간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희망, 상실과 적응을 건축과 현대미술, 사진과 생활용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화공간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떠났던 창고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 박물관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장소 자체에 있다.
FENIX가 자리한 카텐드레흐트(Katendrecht)는 로테르담 항구의 오래된 부두 지역이다. 현재의 박물관 건물은 1923년 네덜란드의 해운회사인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Holland America Line)이 사용하던 대형 창고였다. 당시 수많은 유럽인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바로 이곳에서 배를 타고 미국과 캐나다, 남미로 향했다.

 

즉, 이 건물은 이주를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수백만 명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던 역사적 현장이다. 과거에는 사람과 화물이 드나들던 항만 창고였고, 지금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물인 셈이다.

 

1948년 화재를 겪었던 창고는 이후 ‘Fenix I’과 ‘Fenix II’로 나뉘었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 가운데 Fenix II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사례다. ‘FENIX’라는 이름 역시 불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를 떠올리게 한다. 쇠퇴한 항만시설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부활했다는 점에서 그 이름은 매우 상징적이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건축>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둥과 보, 천장의 거친 질감은 산업시설이었던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를 가르며 거대한 은빛 나선형 구조물이 솟아오르는데, 이것이 중국 건축가 마옌쑹(Ma Yansong)이 이끄는 MAD Architects가 설계한 ‘토네이도(Tornado)’ 다.

 

두 개의 계단은 서로 만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며 전망대로 이어진다. 직선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이 서로 교차하고 엇갈리듯 움직인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표면에는 관람객과 도시 풍경이 계속 비쳐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은 결국 ‘이동’과 ‘변화’라는 박물관의 주제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FENIX는 이주(Migration)를 역사적 사건이나 통계로 설명하는 박물관이 아니다. 인간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희망, 상실과 적응을 건축과 현대미술, 사진과 생활용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화공간이다.

 

 

<2,000개의 여행가방이 만든 거대한 기억의 미로>

 

FENIX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은 의외로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Suitcase Labyrinth(여행가방 미로)’였다.
미로를 이루고 있는 것은 벽돌도 콘크리트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증받은 2,000여 개의 실제 여행가방이다.

 

낡은 가죽 트렁크, 군용 가방, 손때가 묻은 캐리어, 오래된 여행용 가방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하나의 거대한 미로를 만든다. 가장 오래된 것은 1898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네덜란드에 도착한 트렁크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현대식 캐리어다.

 

놀라운 것은 이 가방들이 모두 실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FENIX는 네덜란드와 미국, 캐나다를 돌며 1,000명이 넘는 기증자들로부터 실제 사용했던 여행가방을 수집했다.

 

미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만약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가방에 담을 것인가?”

 

옷 몇 벌일 수도 있고, 가족사진 한 장일 수도 있다. 아이의 장난감일 수도 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작은 유품일 수도 있다.

 

여행가방은 짐을 담는 물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기억,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을 함께 담는 가장 작은 집이다.

 

미로 곳곳에는 실제 기증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디오도 준비되어 있다. 누군가는 전쟁을 피해 떠났고, 누군가는 사랑을 따라 국경을 넘었으며,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족과 작별했다.

 

관람객은 길을 찾으며 걷지만,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다.
이 공간을 지나며 문득 깨닫게 된다.
여행가방은 여행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낡은 가죽 트렁크, 군용 가방, 손때가 묻은 캐리어, 오래된 여행용 가방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하나의 거대한 미로를 만든다. 가장 오래된 것은 1898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네덜란드에 도착한 트렁크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현대식 캐리어다.

 

 

 

<전시는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였다>

 

FENIX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개별 작품보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난민선도 있었고, 체크무늬 이민가방도 있었으며, 신문으로 만든 집과 오래된 현관문, 슬리퍼, 토마토, 보따리도 있었다. 서로 전혀 다른 재료와 표현방식을 사용한 작품들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질문으로 모였다.

 

사람은 왜 떠나는가. 그리고 떠난 사람은 무엇을 새로운 집이라고 부르게 되는가.

 

이곳에서는 이주가 더 이상 정치나 국제문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고, 평생 살던 집을 떠나는 일이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 몇 개만 챙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태운 버스>

 

전시 가운데 가장 괸심있게 보았던 작품 가운데 하나는 미국 팝아트 작가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The Bus〉였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뉴욕 시내버스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하나의 도시가 펼쳐진다. 버스 안에는 관광객과 직장인, 흑인과 백인, 노인과 아이, 노동자와 예술가, 그리고 다양한 이민자들이 함께 앉아 있다. 모두 목각으로 만든 인물들이지만 표정과 몸짓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버스는 도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출신도, 언어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잠시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이동한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민국가의 상징이라면, 이 버스는 그 도시를 축소해 놓은 하나의 사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충돌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현대 도시의 풍경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여준다.

 

 

 

 

 

 

 

 

 

 

 

버스는 도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출신도, 언어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잠시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이동한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민국가의 상징이라면, 이 버스는 그 도시를 축소해 놓은 하나의 사회다.

 

 

<한국의 보따리가 세계의 언어가 되다>

 

전시장에서는 한국 작가 김수자(Kimsooja)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낡은 트럭 위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보따리는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사를 가거나 고향을 떠날 때 이불 보따리에 삶을 싸서 옮겨 왔다.

 

김수자는 이 평범한 보따리를 통해 ‘삶을 옮긴다’는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FENIX 안에서 더욱 보편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국적은 다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싸서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난다.

 

한국의 보따리는 이곳에서 세계 모든 이주민의 여행가방과 만나며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된다.

 

 

낡은 트럭 위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보따리는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사를 가거나 고향을 떠날 때 이불 보따리에 삶을 싸서 옮겨 왔다.
김수자는 이 평범한 보따리를 통해 ‘삶을 옮긴다’는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FENIX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개별 작품보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난민선도 있었고, 체크무늬 이민가방도 있었으며, 신문으로 만든 집과 오래된 현관문, 슬리퍼, 토마토, 보따리도 있었다. 서로 전혀 다른 재료와 표현방식을 사용한 작품들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질문으로 모였다.

 

 

<건축이 기억을 담을 때 도시는 살아난다>

 

FENIX는 오래된 창고를 허물고 새 건물을 세운 프로젝트가 아니다. 과거를 지운 도시재생이 아니라 과거를 품은 도시재생이다.

 

항구 노동자들의 기억도, 신대륙을 향해 떠났던 이민자들의 발걸음도, 콘크리트 기둥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도 모두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 위에 현대 건축과 예술을 더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을 품을 때 비로소 도시의 문화가 된다.

 

미술관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기억한다.

 

그러나 FENIX는 전혀 다른 질문을 남긴다.
“만약 당신이 오늘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가방에 담겠습니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곳은 충분히 존재할 이유가 있는 공간이다.

 

 

 

 

두 개의 계단은 서로 만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며 전망대로 이어진다. 직선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이 서로 교차하고 엇갈리듯 움직인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표면에는 관람객과 도시 풍경이 계속 비쳐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은 결국 ‘이동’과 ‘변화’라는 박물관의 주제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FENIX는 오래된 창고를 허물고 새 건물을 세운 프로젝트가 아니다. 과거를 지운 도시재생이 아니라 과거를 품은 도시재생이다.
항구 노동자들의 기억도, 신대륙을 향해 떠났던 이민자들의 발걸음도, 콘크리트 기둥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도 모두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 위에 현대 건축과 예술을 더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공간다큐 한 줄>

 

FENIX는 오래된 항구 창고를 무대로 인간의 떠남과 도착, 그리고 기억과 희망을 건축과 예술, 2,000개의 여행가방에 담아낸 거대한 삶의 아카이브였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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