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주(mjkim@jungle.co.kr) | 2015-12-04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디자인을 마주하고 새롭게 발견한다. 내가 밤에 눕고 아침에 일어나 앉는 침대부터 책상 위 마우스까지, 우리 삶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없다. 우리의 가장 밀접한 일상을 설계하는 디자인과 공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울산에 위치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하 유니스트)은 신소재와 차세대 에너지, 디자인 공학 등을 연구하는 과학 인재들의 산실로 특히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디자인 아이디어와 인체 공학적 기술을 중심의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다.
모두 함께 그리는 디자인+공학의 융합은 산업계와 연계된 연구실적들과 가열찬 에너지로 이미 초록불이다. 이곳을 총 지휘하는 디자인 석학, 헨리 교수를 만나 유니스트 인재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나홀로족 김모씨는 자신의 싱글 주거 공간을 감각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그동안 점 찍어뒀던 비비드한 컬러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던한 라인을 뽐내는 의자를 구입했다. 그런데 아뿔싸, 내 허리는 유독 다른 사람보다 예민해서 꼿꼿한 등받이 의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쏟아지는 요통 때문에 의자는 자신의 집에서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는 이 같이 평범한 일상 앞에서 어떤 솔루션을 찾아야 할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경험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상황아래 오랜 기간 유지해온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일까, 아니면 디자인 시야를 넓혀 그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디자이너는 예술가일까, 전략가일까
우리는 정말 의자를 갖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 선택의 문제에 있어 오답과 정답의 정의를 내리긴 힘들다. 문제가 되는 근본 원인을 찾고, 의자의 구조적인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고민하고 어떤 선택이 더 편안한 삶이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물건일수록 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됐다면,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용하지 않듯 우리는 자신과 꼭 알맞은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찾기 마련이다. 디자인에 있어 이 ‘사용성’이란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에 기반해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변화시킬 공학적 지식이 뒷받침 된다면 우리가 이러한 피치 못할 요통을 겪을 만큼 ‘아픈’ 제품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합적 사고력에 집중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들은 우리 미래에 보다 나은 디자인을 기대케 한다.
헨리 크리스티안(Henri Christiaans) 박사는 심리학과 디자인 공학을 공부하고 지난 30여 년간 디자인에 관한 인지과학 인체공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활동과 저널리스트로서 활약한 디자인 석학이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에서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디자이너들을 가르쳐 온 그가 지난 9월 한국의 유니스트에 자리를 잡았다. 유니스트는 이미 2009년부터 개교와 더불어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를 개설했고, 이 학부 내에는 ‘통합 산업디자인’, ‘감성 및 인간공학’, ‘공학시스템 디자인’의 3개 트랙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이 같은 학부의 구성이 내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과 인간 및 시스템 공학(Human and Systems Engineering)의 2개 트랙으로 집중되었으며, 이번 학기 학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헨리 교수는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의 신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 디자인-공학 미래 인재들과 소통 중이다.
Focus On Education # 1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까지 완수하는 디자이너 역할론
Jungle : 그동안 꽤 다양한 나라(남미,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창의적 디자인 과정과 연구, 디자인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왜 한국행을 선택했나? 그리고 이 학교(UNIST)에 부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외국에서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그램을 설립과 관련한 일들을 주로 진행했다. 대학원에서는 기업들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브라질에서는 서방의 선진기업들과 어떻게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2000년대부터 대학원 내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불과 2년전인 2013년에는 한국의 7개 대학과 삼성, 현대를 방문해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유니스트 또한 워크숍을 진행한 학교 중 하나였다. 또한 작년 3개월여 동안은 방문교수로 신분으로 유니스트에 체류하게 됐는데, 그간의 이 곳에서 경험한 생각들을 학교의 총장님과 공유하게 됐고, 그 때 학교 교육프로그램에 필요한 지점들을 같이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학부장의 자리를 맡게 됐다.
Jungle : 유니스트에 부임하고 이번달로 3개월여가 지났다. 첫 학기를 마치지 않은 시점이라 성급한 질문이겠지만, 본인이 처음 목표로 했던 바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산업의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유니스트에서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디자인’이란 큰 카테고리 안에서 예술이나 미학뿐 아니라 공학과 인간공학을 포함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이 이를 목표로 제품 제작 아이데이션(ideation)에서 생산과 판매까지 전 과정을 경험하고 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를 기르고, 이를 사용하는 실제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할 것을 목표로 했다.
학생들이 주입을 강조하는 틀 안의 교육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에 디자인 과제를 통해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다음단계의 목표는 디자인 연구다. 학부(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에는 25명의 교수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교육뿐 아니라 연구 또한 큰 영역을 차지한다. 현재는 각기 다른 주제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공통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반 모빌리티(Urban Mobility)’인데, 이는 단순히 교통수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헬스케어, 통신, 노인보호구역의 솔루션, 빅데이터 등의 사회전반에 걸친 해결과제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학내에서의 연구뿐 아니라 기업과 협력 연구를 통해서 연계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공동 연구 공간을 교내에 만드는 것도 목표로 두고 있다. 유럽의 디자인 대학 내 디자인랩이나 미국 MIT의 디자인팩토리 같은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Jungle : 변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대부분의 디자인 학교들은 디자인 미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니스트의 디자인 과정은 이와 조금 다르다. 학교에 부임해서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커리큘럼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수용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했고, 창의성에 바탕을 둔 디자인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뿐 아니라 각 분야별 교수진들에게 있어서도 학생들에게 잠재된 창의력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시 되고 있다.
Focus On Education # 2
심화된 디자인과 공학이론+워킹 프로토타입까지 마스터 과정
Jungle : 그렇다면, 현재 유니스트에서는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인가?
실제로 융합대학원 수업에서는 울산에 기업 3곳(중소기업연합회)과 학생들간의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결과는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주제들이다. 가정 환경 내 세균제거 기술과 야외용 샤워기, 실내(자동차, 냉장고, 옷장 내)의 공기질을 다른 기기들과 연동시켜 감지하고 이를 컨트롤하는 기기 개발을 대학원 학생들이 3개의 팀을 이뤄 연구를 진행했다. 금번 1학년들의 통합 디자인 프로젝트는 1학기에는 프로젝트 리서치를, 2학기에는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실제 사용 가능한 제품(working prototype)들은 오는 12월에 일반인들도 살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Jungle :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은 일반 디자인 대학원과 교육방식이 다른 듯 하다.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안에 제품제작에 필요한 설비를 다량 갖춘 것 또한 독특하다.
디자인적 사고에 필요한 문제해결능력과 공학지식과 산업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기반으로 실무에 강한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것이 교과과정의 핵심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심화된 이론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강력한 힘을 낼지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교수진이 디자인 트랙 내에서 이들의 멘토가 되어 현장의 지식들까지 습득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강점이라 생각한다. 특히 기업과 함께 실제 신제품을 개발하는 통합디자인 · 졸업 디자인 프로젝트1)를 통해 매년 자신의 독립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이를 실물로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학교 내 제품개발의 인프라까지 뒷받침되어있다. 현장에 대한 이해를 갖춘 전문디자이너이자 연구자를 배출하는 것이 유니스트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의 특별한 지점이다.
1) *산업자원부의 디자인-공학 융합대학원 지원사업으로 학생들은 전원 학비 면제와 월 일정 금액의 장학금 혜택을 받게 되며, 소속된 랩의 프로젝트에 따라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Focus On Education #3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힘은 영역의 확장
Jungle : 심리학을 전공한 후 공학에 이르렀다. 본 학문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이를 인간심리와 디자인 공학의 교육에 어떻게 접목시켰나?
알다시피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학 내에서도 창의력 교육에 관한 연구에 집중했다. 석사학위 취득 후 교육 관련 국가기관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에 집중했다. 이후 델프트대학에서 자신들의 디자인 교과과정에 대해 조언해줄 것을 요청해 이들의 초청에 응했으며, 박사학위를 이곳(델프트공대)에서 디자인공학으로 취득 한 후, 교내에 남아 교수로 재직했다. 교과과정을 통해 창의력을 증진하는 것, 이는 창의적 디자인스쿨에 필요한 대한 핵심이 됐고, 인간심리를 통한 창의성 발현 그리고 디자인-공학은 자연스럽게 이를 조화로운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이곳 유니스트로 연결됐다.
Jungle : 디자인공학 관련 저널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같은 퍼블리싱의 경험은 창의적 교육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네덜란드의 디자인공학저널2)을 공동 설립한 바 있다. 저널을 발행했던 것은 출판을 통해 관계자들 및 대중들에게 디자인의 미래 비전을 알리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이론가가 아니기에 자신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과정들을 연구 리포트로 남기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이 같은 디자인 연구는 후에 디자인 교육이나 일반인들에게 디자인 과정을 알리기 위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영역 밖 일이기에 쉽지 않게 여겨지겠으나, 디자인공학 또한 전문적인 저널을 발행해 연구논문으로서 가치 있는 일들을 담고 있기에 이를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Journal of Design Research
(www.inderscience.com)
Focus On Education #4
디자이너는 형상을 만드는 자가 아닌 산업을 이끌 전략적 파트너
Jungle : 한국은 지난 2000년 이후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서 디자인을 미래 산업을 이끌 핵심요소로 주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실제 산업 내 역할에 비해 지엽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으며, 하드웨어(현상이나 외관)에만 주목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창조산업이란 무엇이고, 혁신을 이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한국은 산업적 성장과 발전속도가 놀라운 나라다. 허나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산업의 규모에 비해 디자인에 대한 시각과 기여도에 대한 평가가 현저히 낮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란 제품개발에서부터 판매까지 전체 과정을 마스터링 하는 사람이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실제로 디자이너가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마케팅, 엔지니어링 등 전체 조직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지난 2009년 산업 내 신규개발 프로세스를 총괄하는 역할을 디자이너가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리포트가 공식 발표된 바 있다. 한국 또한 기존의 제한된 시각과 경계를 허물고 마스터로서 역할을 위해 그 준비과정을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디자이너는 산업을 움직이는 전략을 완성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디자이너가 스타일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젊은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디자인 행사에 가보면 이 같은 경향들에 머물러 있어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유니스트는 이러한 산업 내 디자인에 대한 인식에 변화에 앞장서려 한다. 산업디자인 교육을 마쳤을 때 스타일 목업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 전체 제품에 대한 과정의 전반부터 결과물을 기업에 적극 홍보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의 투자를 통해 제품이 실제 산업 내에서 유용함을 인정받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산업 내 혁신은 ‘창의’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교육과정에서부터 통합적 사고에 익숙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니스트뿐 아니라 대부분의 디자인 대학에서도 이 같은 필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이와 관련된 교육을 목표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교육방식의 변화 보다 더 큰 궁극적 문제는 디자이너의 제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잘 수용해 좋은 결과를 같이 만들어야 할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과 ‘협력’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사회 시스템 자체가 디자이너와 마케터, 엔지니어 조직은 서로의 업무를 공유하고 이해하기 힘든 보이지 않는 ‘벽’, 즉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디자이너 스스로의 역할이란, 자신만의 강력한 도구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디자인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분위기로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산업 내에서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Jungle : 디자인공학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디자이너의 근본적인 역할이란 인간의 삶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디자인공학 또한 이와 일맥상통하다. 이는 산업의 혁신, 경제 발전에 영향을 준다. 산업 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의존적인 관계를 보이는데 이를 개선하고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생산방식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혁신을 주는 것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경제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며, 이는 개인뿐 아니라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디자인공학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큰 요인은 제품을 통한 삶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델프트공대는 800명의 학생이 있고, 해마다 약 250여 명의 학생이 졸업을 하는데, 각 학생마다 개별 프로젝트를 기업과 진행하고 졸업을 한다. 250여 개의 기업은 학생들의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지원하는데, 이 같은 기업과 예비 디자이너간의 움직임이 나아가 미래 우리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제품으로 탄생하고 우리는 이를 사용하며 직접적인 변화를 몸으로 겪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의 삶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