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8
우리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대로 보여야 하고 또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눈과는 다른 구조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여러 방향의 ‘낱눈’의 시선으로 본 것은 우리가 보아온 것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세상이었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사비나미술관(www.savinamuseum.com)
‘낱눈’은 하나의 눈을 뜻하지만 어떤 겹눈보다도 입체적이다. 수없이 많은 방향에서 바라본 시선이 모여 전혀 새로운 입체적인 시점을 낳기 때문이다. 주도양 작가의 전시 ‘시선의 기원, 곤충의 눈’은 곤충의 눈과 시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카메라를 통해 여러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홑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개의 바늘구멍으로 이루어진 핀홀카메라를 활용, 세상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주도양 작가는 우리보다 수억 년 전에 태어난 생명체인 곤충을 ‘겹눈을 가진 대표적인 생명체’라 여기고 그들이 여러 방향에서 본 시선을 입체적인 시선으로 본다. 그리고 여러 ‘낱눈’이 본 입체적인 시선, 즉 곤충의 눈을 ‘보는 것에 대한 기원’이라 말한다.
그는 전시에서 2만 개가 넘는 겹눈으로 땅과 하늘, 풀잎 위에서 세상을 넓게 보는 잠자리, 땅 위와 물의 표면에서 세상을 보는 딱정벌레와 소금쟁이의 시선에 착안한 충감도(蟲瞰圖)를 선보인다.
곤충이 바라보는 시각을 담는 작업은 곤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곤충학자들의 자문을 통해 곤충의 시야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했으며 곤충의 서식지를 고려해 촬영을 진행했다. 자문에는 한영식 곤충생태교육연구소장, 정종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 한경덕 고려대학교 곤충연구소 교육부장이 참여했다.
곤충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C-프린트 방식과 핀홀 카메라로 촬영된 필름을 검프린트 방식으로 인화한 2가지 촬영기법을 선보인다. 옵스큐라의 원리를 이용한 핀홀 카메라의 작품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작품과 함께 전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의 대조를 보여주고, 검프린트로 인화된 사진은 그 안에 담긴 풍경의 색채와 구도를 통해 몽환적이고 낯선 이미지를 선사한다.
작가는 원근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사진의 광학적 원리를 이용했다. 사진의 고전적인 방법과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러한 작업은 카메라 옵스큐라, 핀홀카메라, 비은염사진, 렌즈와 거울 등 사진의 기원적 부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치물을 전시, 작가의 작업 방식과 더불어 회화와 사진의 재현 방식, 보는 방식의 개념의 전환과 기술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의 구성도 특색 있다. 작품전시 및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치와 함께 작가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들였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감, 화학약품, 비커 등의 각종 기구가 진열됐고 ‘촬영-수정-인화-원본 파기’ 등의 작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도 옮겨졌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재현하는 미술에서 벗어나 세상을 좀 더 독창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작가는 보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사진을 독학했다. 이론적, 기술적 실험을 통해 입체적인 시각으로 대상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면서 비틀거나 왜곡시키는 시각을 다차원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곤충의 눈을 통해 인간이 아닌 미물의 시각적 경험을 유도하고 ‘제한된 시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보는 방식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킬 ‘시선의 기원, 곤충의 눈’은 사비나미술관에서 오는 3월 18일까지 개최된다.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카메라의 원리와 인화 체험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 ‘주도양 작가와 함께하는 곤충의 눈 사진학교’도 함께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