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3
우리는 ‘한글은 신비롭고 뛰어난 문자’라고 배워왔지만 배운 만큼 느껴온 것 같진 않다. 외국인의 눈엔 그토록 아름다워 보인다는 한글이 우리에겐 달라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글, 이제 어떻게 보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스러운 ‘디자인’을 뽐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한글의 달이다. 꼭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10월이라면, 적어도 이달만큼은 한글을 충분히 느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한글 관련 전시들을 통해 한글 디자인을 즐겨보자.
한글 書 : 라틴 타이포그래피 - 동서 문자문명의 대화
2016 AGI(국제그래픽연맹, 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 서울총회를 맞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한글 書 : 라틴 타이포그래피 - 동서 문자문명의 대화’는 ‘동서 문자문명의 대화’를 주제로 한글서예와 AGI 타이포그래피를 선보이고 있다. 색다른 전시 구성으로 한국의 서예작가들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외국의 타이포그래피 작가 및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눈길을 끌고 있다.
동서의 문자의 대화를 꾀하는 이번 전시는 급변하는 문명 속에서 존재하는 서예의 모습을 통해 디지털 문자영상 시대의 서예와 디자인의 만남, 서예와 동시대 문화예술과의 조우 등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총 60여 명의 작가들은 서울서예박물관, AGI KOREA, (사)문자문명연구회가 공동으로 선정했다.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타이포그래피가 어떤 만남을 이루어낼지에 대한 의문은 장르를 허문 신선한 작품설치로 해소된다.
국내 서예 분야에서는 유승호, 박금준, 김영배, 박세호, 송현수 등 원로작가와 신진작가가 함께 참여해 한글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하며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는 포카리스웨트 로고를 제작한 헬무트 슈미트와 앨런 키칭 등 26명의 세계 각국의 AGI 소속작가가 참여,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들의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서예에는 과거 동아시아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다. 이러한 서예의 전통적인 감성과 함께 곳곳에 설치된 비디오 영상 작품들이 눈에 띈다. 글자(type)로 시작되지만 시각적 그래픽을 넘어 사회문화적인 디자인 작업을 펼치는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작업들은 그들의 글자(type)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전한다.
폰트의 유전학
570돌 한글날을 기념해 광화문 한글누리에서 열리고 있는 ‘폰트의 유전학’은 한글 글꼴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다.
한글 폰트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담고 있는 ‘폰트의 유전학’은 폰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폰트는 고도의 작동체계를 바탕으로 한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정밀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 과정의 세부적인 체계를 매우 정교한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다.
유기적인 세부적인 체계, 일관된 논리를 따르는 한글 폰트 작업의 각 부분들은 알파벳 작업과는 다른 한글 폰트 제작 과정의 특수성으로 디자이너의 땀과 시간, 프로그래머의 노력, 심미적 요소와 기계적 요소의 만남이 빚어내는 폰트 탄생과정이 전시에 담겨있다.
글꼴의 기획, 디자인, 디지털 개발, 매체별 적용까지 한글의 글꼴이 완성되기까지의 전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 폰트의 디자인 과정, 폰트 디자인의 디지털화 과정 등을 폰트디자이너의 일과와 함께 책, 자료, 영상 등으로 보여준다.
‘아이데이션-리서치-스케치-폰트 디자인 최종회의’의 과정을 거쳐 디자인된 폰트는 ‘스캔&디지털화-폰트 파일 제작-폰트 파일 검수-폰트 개발 최종회의’를 거쳐 완성에 이르게 된다. 폰트 디자이너의 책상을 전시장으로 옮겨 설치한 ‘폰트 디자이너의 책상’은 실제로 디자이너가 모니터에서 했던 작업을 녹화, 마우스의 움직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디자인 작업 과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스케치한 폰트 디자인을 디지털화하고 한글의 11,172자의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폰트의 형태를 다듬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 폰트디자인 작업 과정은 폰트를 완성시키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긴 호흡’을 전한다.
화면에서 글씨가 작게 보여져도 선명하게 보이게 다듬어주는 ‘힌팅’ 과정도 경험할 수 있다. 뭉쳐보이는 작은 글씨를 확대, 겹쳐진 자모는 나누어주고 떨어진 자모는 모아주는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선명하고 깔끔하게 보이는 폰트가 완성된다.
대중적인 맑은고딕과 나눔고딕, 조선일보, SBS 서체 등의 언론사 글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한 카카오프렌즈, CJ 제일제당 등의 기업 전용 글꼴 등 다양한 글꼴의 개발 과정 등도 볼 수 있다.
‘한글 書 : 라틴 타이포그래피-동서 문자문명의 대화’전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10월 19일까지, 성산아트홀(창원순회전)에서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진행되며, ‘폰트의 유전학’은 광화문 한글누리에서 오는 10월 21일까지 개최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서울디자인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