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를 졸업하고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고 있는 미래의 사진가들이 있다. 치열하고 고된 작업 환경에서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해온 ‘어시스턴트 수난기’는 놀랍게도 ‘자괴감’ 그 자체다.
사진가가 되려는 자, 굴욕의 무게를 견뎌라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과 친구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 그런데 최근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며 무엇으로도 사진가라는 내 꿈을 이루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사진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실장님의 몸과 마음을 지치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왔는데,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가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심지어 내가 스튜디오에서 태업을 했다고, 졸기만 했다고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
어느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찮게 사진가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고 있는 졸업생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전시장 한 구석에서 주위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어시스턴트 생활이 너무 비참하다는 것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그 친구의 ‘어시스턴트 수난기’를 듣게 됐다. 각색한 바가 없지 않아 있지만, 지난 몇 달 간 만난 사진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들은 거의 대부분 위와 같은 뉘앙스로 심경을 토로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에 겨워 어시스턴트 생활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인격 모독, 노동력 착취, 말도 안 되게 적은 임금 등, 그 사연도 죄다 비슷했다.
사진가 어시스턴트야말로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그리고 ‘라면의 상식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시스턴트 부당 대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이상봉 열정페이’가 세간에 알려질 때만 하더라도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일말의 믿음이 있었다. 수습·인턴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턱없이 낮은 임금을 주는 업체를 특별 감독할 것이라는 고용노동부의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언론이 계속해서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변한 게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어시스턴트 임금이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2016년 최저임금 6,030 원을 기준으로 주 40시간을 일하면 최저 월급은 약 130만 원 정도가 된다. 그런데 어시스턴트 월급은 쉬는 날도 거의 없이 매일 야근을 함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30~50만 원으로 형성돼 있다. 처음 한두 달 월급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4대 보험도 먼 나라 얘기다 (물론, 양심적인 사업장도 있다!).
어시스턴트, 말 그대로 조력자다. 사진가가 최선의 컨디션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서 그를 도와주는 게 어시스턴트의 주된 역할이다. 스튜디오를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은 물론, 조명을 설치하고 후보정 작업을 하며,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한다. 축구나 농구 경기에선 골을 넣기 전 마지막 패스, 즉 어시스트를 많이 기록한 선수에게 어시스턴트 상을 준다. 그런데 몇날 며칠을 고생한 어시스턴트에게 부상으로 돌아가는 건 ‘자괴감’과 ‘회의감’뿐이라니. 그럼에도 그들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에서 장밋빛 미래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너 필드에서 나 안 만날 거야?
사진학과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교수로부터, 선배로부터, 그리고 어떤 때는 나이 많은 동기로부터. “너 필드에서 나 안 만날 거야?”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이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껄끄러워진다. 불합리함을 느끼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사진계’라는 곳이 워낙 좁다 보니 사진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 즉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전공부터가 말썽이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시대에 사진 전공자를 위한 취직자리가 다양할 리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기업 공채 때 사진 전공이 서류전형에서 걸러지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아주 드물게나마 기업 홍보팀에서 사진 전공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계약직에 취직하더라도 계약 연장의 꿈이 이뤄지는 것은 실제로 흔치 않다. 냉정하게 말해 사진 전공자의 업무능력과 경험이 타전공자에 비해 조금은 부족하다는 선입견 탓이다.
몇 개 남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 결국 가장 많은 선택을 받는 건 ‘상업 스튜디오 입사’다. 취업률 달성을 위해 학과로부터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취직을 ‘강요’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기에 꼭 덧붙여지는 말이 있다. 바로 “처음에는 다 힘들게 일한다. 젊었을 때는 무엇 보다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급여는 그 다음이다.”는 말이다. 학교에서부터 열정페이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난센스인 건 이러한 행태가 좁고 험한 사진계에서 전공자들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제식 교육’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사진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정석 코스 중 하나는, 필드에서 이름 있는 사진가를 모시고(!)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일도 배우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어서다. 그래야만 추후에 사진가로부터 일을 받는다거나 작가 추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평가와 추천이 업계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권력 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 중 하나인 A씨가 있다. 필드에서 A씨 일화는 명성이 자자하다. 어시스턴트가 장비를 고장 냈다는 이유로, 식대를 과하게 지출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평소 월급보다 깎은 금액을, 그것도 모두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이야기는 어시스턴트 사이에선 전설로 통한다. 다른 스튜디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업무량이 넘치는 건 흔하디 흔한 일이라 더 이상 특별한 것도 아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어시스턴트들도 있다. 어시스턴트 B씨는 “잦은 야근과 적은 임금에 대한 스트레스는 참을 만한데, 인격 모독은 도저히 참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 앞에서 “왜 이렇게 살이 쪘냐?”, “ 왜 화장을 안 하냐?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없는 거다.”라는 놀림을 받았을 땐 굉장히 수치스러웠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서 울 수 없어 몰래 화장실에 가 울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case 1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일당백 노예라고 해야 할까. 밤늦게까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을 돕는 건 기본, 남아서 후보정까지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실장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시험 점수도 매겨야 했다. 틈틈이 시시콜콜한 잔심부름도 해야 했다. 시간 맞춰서 실장님의 아이를 데리러 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숙제도 봐줘야 했고, 가끔씩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현대판 집사가 있다면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느껴졌다.
case 2
스튜디오 실장은 한국 스타일과 미국 스타일을 절묘하게 오가며 괴롭혔다. 그는 평소 “나는 미국 에서 공부해 오픈마인드니 힘든 점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간혹 부당한 업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바로 거친 욕설이 돌아왔다. 심지어 “여기는 한국이니까 내가 짜증을 내더라도 너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 받은 굴욕은 잊을 수가 없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를 선택했더니, 그는 “네가 원하는 걸 정확히 모르니까 넌 사진도 못 찍는 거야.”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 이후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이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