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27
어둡고 고요한 밤, 유난히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질 때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은 분명하게 존재했던 시작지점을 흐릿하게 하고 그것을 대신할 결론 아닌 결론으로 우릴 이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생각이 거치는 모든 지점은 ‘나’에 존재하는 ’기억’의 부분이다.
특정한 텍스트 혹은 특정사건에서 시작된 기억과 그 기억의 연쇄과정을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는 작가 지히킴의 전시가 4월 28일 송은 아트큐브에서 개최된다.
송은 아트큐브 2016-2017 전시지원 공모 프로그램 선정작가 지히킴은 버려지거나 기부받은 책의 특정 페이지에서 단어나 문장을 발췌하고 이와 연관된 기억을 찾아 그 기억에 의해 연상되는 이미지를 책 위에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지난해 개인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는 텍스트에 의해 떠오르는 기억과 경험을 북 드로잉과 구슬 등의 오브제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 ‘오늘 밤, 태풍이 온다. Jihee Kim : The typhoon breaks tonight’에서는 신작 〈오늘 밤, 태풍이 온다.〉 등을 선보인다.
〈오늘 밤, 태풍이 온다.〉는 지난해 여름 대만에서 태풍이 휘몰아쳤던 당시 작가가 느꼈던 공포와 차분함이라는 양립된 감정에서 시작된 기억의 연쇄 과정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밤의 태풍’이라는 사건을 하나의 기폭제로 삼아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중 특정한 순간을 선택해 드로잉과 이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내는 작가는 책에서 찾은 특정 단어나 문장 또는 특별한 경험들을 기억과 연관짓고 드로잉으로 확장시킨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기억의 연쇄과정은 그물에 물고기들이 딸려 올라오듯 연속해서 이어졌고, 이러한 종류의 사슬은 태풍이 시작점이 되었지만 연쇄의 단계가 거듭될수록 어느덧 맨 처음 단계인 태풍의 존재를 망각하게 되고, 나의 기억 속 인물, 사건, 경험, 냄새, 소리, 대화, 주고받았던 문자, 소설/영화의 한 장면 따위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었다’고 밝히며 ‘우연을 실체로 착각하고, 결과를 원인으로, 수단을 목적으로, 우리들의 몸과 지성을 우리들 자신으로, 우리들 자신은 무언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해 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관객과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전시는 6월 1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송은 아트큐브(www.songeunartspa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