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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

2011-11-08


‘건물을 건축할 때,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며 감독을 하는 사람’.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건축가의 정의다. 신혜원 로컬디자인 대표는 건축가의 역할을 사전적 의미로 한정 짓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보다 확장된 의미로 아우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의 고민은 최근 진행했던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 ‘자율방범대 신축 프로젝트’, ‘가시리문화센터’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세 프로젝트는 공공디자인 측면에서 바라본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소박한 답변으로 건축가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서 사회,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배려와 소통을 통해 공유하는 공간의 경험과 그 속에 스며드는 삶의 모습. 그것을 그리는 일이 바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연 | 신혜원 로컬디자인 대표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건축가가 조금은 적극적으로 사회의 욕구에 반응해야 한다’는 신 대표의 생각은 2007년 시작된 한강 나들목 개선사업에서 그대로 보여진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나들목 개선 사업은 당시 ‘토끼굴’이라 불리던 한강 출입구를 쾌적한 환경으로 다시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전까지 ‘토끼굴’은 단지 통로라는 기능적 목적에만 부합된 어둡고, 칙칙한 토목 구조물에 불과했고, 이 때문에 서울의 대표 휴식처임에도 불구하고 한강에 들어서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유쾌하지 못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간 대부분의 공공시설물을 존재의 가치적 측면은 배려하지 않고, 그저 투박한 토목성 사업으로 치부했던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때문에 나들목 개선사업은 단순한 리노베이션 개념에서 그치지 않았다. ‘토목 구조물’이 ‘건축’으로 진화하는 것이었고, 여기에 사회 공익성과 감성적 디자인이 덧붙여지는 그야말로 진짜 공공디자인 사업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강 곳곳에 설치된 40여개가 넘는 나들목 중 총 25곳을 개선하라는 과제에 주어진 시간은 단 3개월. 나들목의 형태가 유사한 만큼 일정한 디자인을 25곳 각각에 적용해달라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조사를 해보니 육갑문(수문)이 달린 나들목부터 비만 오면 오면 침수되는 곳, 차도와 보도가 함께 놓여있는 곳 등 동네마다 특징과 유형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혼자서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에 신대표는 다른 건축가들과의 ‘협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간이 짧다는 핑계로 대강 마무리 짓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더라도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 결국 신 대표의 로컬디자인을 비롯, 아틀리에 리옹 서울(이소진), 제공건축(윤웅원,김정주), 시스템 랩(김찬중,홍택) 등 네 팀의 건축가들이 모였고, 로컬디자인이 나들목을 특성별로 나눈 5개 타입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들의 작업 결과는 현재 사용하는 시민들의 높은 만족도에서도 알 수 있듯, 성공한 공공디자인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신 대표가 먼저 작업한 곳은 성산, 반포, 풍납 나들목 등 세 곳이었다. 성산의 경우 천장고가 너무 낮은 것이 문제였고, 그 때문에 조명이 비껴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조명방식의 새로운 접근으로 쾌적한 공간 마련이 주된 컨셉이 되었다. 공간은 목재를 켜대로 세운 형태로 구성되었다. 조명은 이 목재 뒤로 숨었고, 켜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사용된 목재는 이곳이 자주 침수되는 지역임을 감안하여 물에 잘 견디는 것으로 선택되었다. 반포나들목은 날개 벽에 보다 다이내믹한 형태를 부여한 점이 돋보인다. 내부 또한 라운드 된 벽돌 형태로 밋밋하지 않게 처리했다. 외부 날개 벽을 두 겹으로 한 점이 눈길을 끄는 풍납 나들목은 앞선 두 나들목의 특징들을 적절히 섞은 모습이다. 또한 각 나들목에는 통행의 기능뿐 아니라 벤치를 두거나 하여 한강에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휴식의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세 곳 이후에도 신 대표의 나들목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들목 개선사업은 건축가 입장에서 비용을 따져본다면, 소위 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공디자인으로써 공간이 주는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공간의 경험을 통해 고지식했던 공공기관 인사들에게 건축, 디자인의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의 인식의 변화를 주었다는 점이 신 대표에게는 가장 고무적인 일이었다.


2010년 신 대표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건축가이자 아티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그가 맡은 것은 ‘자율방범대 신축 프로젝트’로 다름아닌 방범대원을 클라이언트로 둔 일이었다. 특히나 이곳의 자율방범대 초소들은 주민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등 동네 커뮤니티가 이뤄지는 장소였고, 그들은 초소들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신 대표가 프로젝트를 맡고 처음 했던 일도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게 될 대상인 주민들, 그 중에서도 자율방범대원 등 지역 커뮤니티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쓸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 공공디자인의 시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기존의 초소로 활용되던 낙후된 컨테이너를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로의 변모시켜 주변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컨셉이었다. 컨셉을 잡아나갈 때부터 시작된 주민들과의 대화는 디자인 과정 내내 이어졌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디자인을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의견 충돌이 없지는 않았다. 컨테이너의 심플한 모듈을 선호했던 신 대표의 의견과는 달리 그들은 지붕에 대한 강한 요구를 드러냈다. 건축가 입장에서 자신의 주된 컨셉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까다로움을 느낄 수도 있었으나, 신 대표는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앞서도 말했듯 소통은 디자인의 필수 과정이기에. 주민들의 참여는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더욱 적극적이었고, 결국 방범대 초소는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형태를 갖게 되었다. 밝은 분위기의 컬러, 지붕과 처마, 서있든 앉아있든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두 줄의 창문, 그리고 주민행사가 있을 때는 그것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가변성 등.

처음 생각이었던 컨테이너 모듈의 보존과는 많이 달라진 결과물이었지만, 신 대표는 공공여론을 통한 공간조성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를 깊게 부여했다. 사용자들을 위한 기능이나 장치가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제주도 서귀포 가시리에 위치한 ‘가시리문화센터’는 올해 완공된 프로젝트다. 공공프로젝트는 좋은 취지와는 달리 항상 예산의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가시리문화센터 역시 너무 적은 예산으로 처음에는 아무도 맡으려는 이가 없었고, 거의 부탁에 의해 신 대표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지역문화활동의 중심지로서의 기능과 마을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클라이언트의 처음 요구는 어린이집, 음악실, 공연장 등이 포함된 2층 건물로 주어진 예산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럴 때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하고, 설득하는 것도 디자인의 과정으로 신 대표는 예산에 맞는 설계를 제안했다. 우선 단층이어야 하고, 재료는 저렴하며, 디테일과 유지관리가 쉬운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원래 계획이었던 맞지붕은 취소되고, 제주돌과 같은 고급재료들도 바뀌는 등 많은 변경사항이 생겼지만, 지역문화커뮤니티라는 큰 맥락은 변함이 없었다.

가시리는 유독 마을 행사가 많았던 곳이었고, 자연스레 가시리문화센터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이에 대한 고민은 ‘ㄱ’자 배치를 통해 생긴 앞마당과 열림과 닫힘이 자유로운 건물의 가변성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또한 건물의 재료는 저렴했지만, 그 기능마저 불편하지는 않았다. 외부 벽체와 내부 벽체를 따로 두어 이중으로 단열효과를 가져왔으며, 벽체 사이에는 통로를 놓아 겨울에는 온실과도 같은 효과를 낸 점이 그 예이다. 예산의 한계를 디자인으로 극복하고자 한 노력이다. 가시리문화센터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건축가가 시도하는 조그마한 변화가 공간과 지역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 디자인으로 사는 세상(기획: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소장)은 구 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중인 ‘카운트다운’ 프로젝트의 강연 프로그램이다. 디자인, 건축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디자인과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또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순히 ‘디자인 만들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학적인(interdisciplinary) 방법, 다각적인 대상과 연동하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들과 함께 이들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 사이의 사회, 디자인, 도시의 변화를 읽고 있는지 들어 본다. 또한 공유, 소통, 참여, 자발적 움직임 등과 같은 오늘날의 주제에 대해 이들이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방식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강연은 12월 1일까지 매주 목요일 문화역 284 RTO 공간에서 열린다.
http://www.countdown2011.org/kr/Lecture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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