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3
크고 작은 정원을 직접 만들고, 찾아 다니며, 식물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일까? 가속화된 현대문명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그것에 역행하는 듯한 속도와 행위를 동반하는 식물과의 일, 정원을 꿈꾸는가?
‘정원사의 시간’은 정원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성에 주목한다. 한 뙈기의 작은 땅이라도 그 공간에서 흙을 일구고 식물을 가꾸며 돌보는 행위는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듯 반복되기만 할 뿐인 현대인들의 일상에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시킨다. 직선적으로 빠르게 소모되는 것만 같은 시간이 정원에서는 느리고 영원한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봄에서 시작하는 문명의 시간질서와 달리, 정원사의 사계절은 가을을 출발점으로 본다. 정원사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밀려나는 현재를 붙드는 현대의 시간성과 달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보다 단단하고 근원적인 흐름 위에 일상을 위치시킨다.
담장이 쳐진 닫힌 공간 속 식물과의 일을 벌이는 정원에서 왜 시간은 느려지고 풍부해지는가? 5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공간의 골격을 추상화한 전시장에서 식물의 자리에 들어간 작품들을 통해 이 같은 물음에 답해본다.
강운은 구름 그림을 통해 인간이 만든 유한한 공간에 자연의 무한함을 담는 정원과 캔버스의 유사함으로 정원과 예술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임택의 프레임 안 대나무 정원은 복잡한 인간사의 거울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그 시작과 끝이 없는 정원의 서사적인 시간을 보여준다.
빈 그릇에 전시장 근처의 흙을 담아 잡초일지 꽃일지 모를 싹을 틔우는 김원정은 긴 호흡의 기다림, 그 예측 불가능함, 사회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기에 분석되지 않는 식물의 느린 시간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정원에서 일어나는 돌봄의 행위에 주목하는 김이박과 땅 속의 일과 그 경계를 이야기하는 최성임의 작품들은 유, 무형으로 쌓여가며 이어지고 움직이는 관계의 언어로 정원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정원사의 시간
기간: 2017.4.1~6.25
장소: 블루메미술관
사진제공_ 블루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