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라 독일 통신원 | 2017-07-19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북부에 위치한 뮌스터. 이 작은 도시에서 10년마다 거대하게 열리는 조각 프로젝트에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탐험이 시작됐다. 편한 옷차림에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듯 설레는 마음으로 조형물의 위치가 적혀진 지도를 펼치며 속속들이 파헤쳐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도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여행을 위함인지, 작품 관람을 위함인지 목적을 알아볼 수 없을 그들의 미술산책은 10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올해는 유난히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에 크고 작은 예술 행사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스위스 바젤, 베니스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5년마다 열리는 독일의 가장 큰 미술 행사 ‘카셀 도큐멘타’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미술 축제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ENSTER 2017)’가 있다. 1977년을 시작으로 5번째 생일을 맞는 이 축제의 열기를 만끽해 보자.
막상 시작하려니 도시 전체에 광범위하게 즐비한 작품들 중 어느 곳부터 찾아가야 할지 난감해졌다. 무작정 한 교회 앞에 주차를 해 두고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뮌스터의 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엘베엘 미술관(LWL-Museum für Kunst und Kultur)에 발길이 닿았다. 반가운 한국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이곳에서 지도 한 장을 받아 들고 개인적인 취향을 담아 갈 곳의 순서를 정했다. 10년 전과 특별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로드해 원하는 작품의 위치와 간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편의가 제공되었다는 점이다.
미술관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트레일러, 그 앞에 놓인 조각상
엘베엘 미술관 입구를 나오다 보니 거대한 트럭 한 대가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서 있고 그 위에는 대형 나무상자 안에 담긴 작품이 지금 막 도착해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실제 운송 현장인 줄 알았던 이 광경 또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독일 작가 ‘코지마 폰 보닌(Cosima von Bonin, 1962년생 쾰른 거주)’과 미국 작가 ‘톰 버(Tom Burr, 1963년생 뉴욕 거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작품의 바로 앞에는 영국 조각의 개척자로 알려진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추상 조각이 마치 그 트럭에서 내려진 듯 세워져 있다.
한때 시에서 공공장소에 설치하려 했던 이 작품에 대해 시민들은 세금이 아깝다며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보란 듯이 뮌스터의 대표 미술관 앞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그 자태를 당당히 뽐내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각기 각색의 해석을 낳는다. 이제 길 곳곳에 놓인 작은 돌 하나까지도 작품으로 의심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섬뜩한 심리적 불안감이 밀려오는 밀실의 공간
엘베엘 미술관 입구에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이 한 줄로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쩐 일인지 입구를 지키는 안내원은 두 명 이상을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약 10분이 지나고 먼저 입장한 관객이 나오고서야 또 한 명을 들여보내 준다. 답답한 마음을 꾹 참아내고 드디어 차례가 되어 입장한 후 4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또 한 명의 안내원이 지키고 서 있다.
그가 안내하는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나는 다시 나와 “난 화장실을 찾는 것이 아니고 전시를 보러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는 “그냥 이 문을 열고 계속 직진하세요”라고 황당한 대답을 했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체념한 후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 하얀 커튼이 내려진 창문이 있는 텅 빈 방을 지나고 다음 문을 열어 기다란 옷 장이 하나 세워진 방을 지나고 화장실이 나왔다.
수돗물이 졸졸 틀어져 있는 세면대를 잠가야 할지 살짝 고민을 한 후 다시 다음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 빈 방, 그리고 옷장이 있는 방을 지나 또 화장실을 들렀다. 매 번 화장실을 갈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들른 김에 볼일이나 봐야 하나 생각할 즈음 다음 관람객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제야 ‘아차, 이것도 전시인가?’ 싶더니 아무 정보도 모르고 지나온 모든 밀폐되고 반복되는 방들의 모든 공기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무식했을 나의 이 반응이 나만 느낀 것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전시 공간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방 3개와 욕실 1개의 구조로 이루어진 아파트 공간을 꾸며 놓은 이 작품은 마치 남의 공간을 몰래 보는 듯한 은밀한 기분과 동시에 내가 훔쳐보는 이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킬 것만 같은 미묘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독일의 현대미술작가 그레고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 1969년생 독일 서부의 라이트(Rheydt) 거주)의 작품이다. 그의 작업들은 장소의 역사, 사회의 재해석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고 느낄 수 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동시에 풀어놓기도 한다. 직접적인 감정의 상태를 움직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품으로 이뤄낸 물 위를 걷는 기적
이번 축제에서 말 그대로 ‘축제’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 관람객들의 인기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 있다. 터키의 여성 작가 아이셰 에르크멘(Ayse Erkmen, 1949년생 이스탄불 & 베를린에서 거주)의 〈물 위에서(On Water)〉는 성경의 예수가 물 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보여주듯 흐르는 강가의 수면 아래 구조물을 설치해 물을 가로질러 반대편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연결했다. 어찌 보면 단순할 이 작품에서 많은 관광객들은 동심으로 돌아갔고 어린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듯 순수한 웃음으로 작품을 만끽하고 있었다.
‘앞선 삶 이후(After a life Ahead)’
이번 프로젝트에서 감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소개하고 싶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1962년생 뉴욕 거주)의 작품은 단연 그 웅장함과 광대한 영역의 깊이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소도시인 뮌스터에서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작품들과 다르게 약 10분 이상 차를 타고 가서야 전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푯말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있는 무심한 이곳은 ‘올 사람은 알아서 다 온다’는 태도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역시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는데 이는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관객만 제한적으로 들여보내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한참을 볕에서 기다려도 별다른 불평하나 하지 않았다.
드디어 입장한 전시장은 쾌쾌한 냄새와 습한 공기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공중에는 벌떼들이 날아다니고 흙으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바닥에는 수 십 마리의 파리들이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넓은 이 공간의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심스레 한발 내딛고 있을 즈음 피라미드 모양의 천장이 열렸고, 우주선이라도 내려앉길 기다려 보지만 이내 닫히고 만다.
폐장한 아이스링크장을 재개발하여 바이오 및 미디어 기술로 개발한 이 광범위한 공간은 한화로 약 13억 원의 예산을 들여 완성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존재들 사이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변화되고 유지되는 다양한 효과들을 발견하는 것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10년이라는 기다림의 약속
카스퍼 쾨니히(Kasper Koenig) 총감독은 만인의 축제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40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이 만들어 내는 공공 미술의 중요성을 10년 주기로 일깨워 주는 이들은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권하기도 하고 주최측은 시민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작품의 질을 고민한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호 간의 노력의 흔적들은 자연스레 도시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공공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있어 10년이라는 시간은 열정이 만들어낸 기다림의 약속이 아닐까.
35개의 보물을 다 찾아내야 하는 이번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오는 10월 10일까지 열리며 올해 다 찾지 못하는 또 다른 보물을 찾기 위해 우리는 2027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참여작가 리스트
1 ARAKAWA, EI *1977 Fukushima
2 BAGHRAMIAN, NAIRY *1971 Isfahan
3 BARTHOLL, ARAM *1972 Bremen
4 VON BONIN, COSIMA *1962 Mombasa
5 BUNTE, ANDREAS *1970 Mettmann
6 BYRNE, GERARD *1969 Dublin
7 CAMP - Anand, Shaina *1975 Mumbai & Sukumaran, Ashok *1974 Hokkaido
8 DEAN, MICHAEL *1977 Newcastle Upon Tyne
9 DELLER, JEREMY *1966 London
10 EISENMAN, NICOLE *1965 Verdun
11 ERKMEN, AYSE *1949 Istanbul
12 FAVARETTO, LARA *1973 Treviso
13 FRIÐFINNSSON, HREINN *1943 Bær í Dölum
14 Gintersdorfer, Monika *1967 Lima & Klassen, Knut *1967 Münster
15 HUYGHE, PIERRE *1962 Paris
16 KNIGHT, JOHN *1945 Los Angeles
17 MATHERLY, JUSTIN *1972 New York
18 NYHOLM, SAMUEL (SANY) *1973 Lund
19 ODZUCK, CHRISTIAN *1978 Halle
20 OGBOH, EMEKA *1977 Enugu
21 PELES EMPIRE - Wolff, Barbara *1980 Fogarasch & Stoever, Katharina *1982 Giessen
22 PIRICI, ALEXANDRA *1982 Bukarest
23 ROTTENBERG, MIKA *1976 Buenos Aires
24 LE ROY, XAVIER *1963 Juvisy sur Orge & YU, SCARLET *1978 Hong Kong
25 SCHNEIDER, GREGOR *1969 Rheydt
26 SCHULTZ, NORA *1975 Frankfurt/Main
27 SCHÜTTE, THOMAS *1954 Oldenburg
28 SMITH, MICHAEL *1951 Chicago
29 STEYERL, HITO *1966 Muenchen
30 TANAKA, KOKI *1975 Tochigi
31 TUAZON, OSCAR *1975 Seattle
32 TUERLINCKX, JOOELLE *1958 Bruessel
33 Wagner, Bárbara *1980 Brasília & de Búrca, Benjamin *1975 Muenchen
34 WYN EVANS, CERITH *1958 Llanelli-Wales
35 YOUMBI, HERVÉ *1973 Bangui
글_ 남달라 독일 통신원(namdalr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