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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병원은 왜 심심해야 할까

2013-07-02


지난 6월 19일 시민 참여 디자인 워크숍 디자인잼(Design Jam)이 서울의료원에서 열렸다. 주제는 ‘서울의료원을 위한 서비스디자인 워크숍'으로 서울의료원의 환자들과 보호자, 자원봉사자,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토론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번 디자인잼의 목적은 서울의료원 내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활용 방안을 찾고자 함에 있었다. 병원 이용자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시민을 위한 대표적 공공 병원으로 지난 2011년 강남구에서 중랑구로 확장 이전한 서울의료원. 새롭게 지어진 건물로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지닌 그곳에 과연 무엇이 더 필요했기에 디자인잼이 열리게 되었을까.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디자인잼 워크숍은 5개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각 조마다 환자, 보호자, 자원봉사자, 시민이 골고루 배치되었다. 병원을 이용하는 목적에 따라 필요 공간도 달라지기에, 다양한 이용자들을 한 조에 묶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참여자 간 토론에서 발표까지 워크숍은 총 2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공간에 실제 적용할 만한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러나 다양한 병원 구성원들이 모여 나눈 대화에는 그동안 알면서도 지나친, 혹은 서로의 포지션이 달라 몰랐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어쩌면 서울의료원이 제기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여기에 담겨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비단 서울의료원만이 아닌 다른 대형 병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글에서는 이날 워크숍 자리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병원은 왜 심심해야 할까

병원은 심심한 곳이다.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으면 대기 시간이 심심하고, 환자들은 TV 시청 외에는 딱히 할 거리가 없다. 병문안을 온 이들의 무료함은 또 어떻고. 병원이 재미를 위한 공간은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 무료함을 탈피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우선 병원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무언가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에 대한 정보와 건강 관리를 위한 강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어떨까. 건강 세미나 또는 자가 치료 체험 프로그램과 같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퇴원 후 필요한 건강 관리에 대해 병원에서 미리 숙지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또한 미술이나 음악, 공작 등 환자들의 취미를 병원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악기를 연습해 병원 로비에서 연주회를 연다거나, 미술 활동 후 복도에 갤러리처럼 전시를 한다면, 환자 외에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가능할 것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 기능의 북카페도 하나의 방안이다. 여기에 공부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열람실을 두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외에도 퇴원시 남는 물품들이 다른 병실에 쓰일 수 있도록 나눔 장터를 마련하는 것도 병원의 무료함을 덜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설들이 병원의 가장 기본 기능인 진료와 치료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 가지 더 유념할 것은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환자 입장에서 짜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해도 환자들의 높은 참여도는 기대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가

서울의료원과 같이 최근 지어진 병원들은 깨끗한 환경과 시설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질적 효용성 문제에서는 한번 짚어봐야 한다. 예로 서울의료원을 들어보자면, 우선 편의 시설들이 지층에 집중되어 있다. 고층 병실의 환자들의 경우 커피 한잔을 마실려 해도 지층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서울의료원의 경우 커피자판기가 층층마다 설치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서울의료원 환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문제로 꼽은 것 중 하나가 이 점이다. 환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커피숍이나 베이커리가 아닌 근처에서 쉽고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 이었다. 휠체어 환자 수에 비해 장애인 화장실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물론 필요 기준에 맞추었겠지만, 병원 상황에 따라 환자의 편의를 좀 더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병문안객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비단 서울의료원 뿐만 아니라 병원 병실은 서너명이 문안 하기에도 좁은 곳이 대부분이다. 복도에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사실 이마저도 환자수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분위기에 눌려 자유롭게 대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병원의 빈 공간을 활용해 병문안객들과 환자가 즐겁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별도 휴게공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병문안을 위해 가져온 음식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여 방문객들이 병실에 들고 가지 않아도 될 짐들은 따로 보관할 수 있도록 물품 보관함이 로비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또한 층간 이동에 있어서 대기 시간이 긴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 계단의 활용 방안도 고려해보자. 지금처럼 폐쇄된 느낌이 아닌 적절한 환경 조성으로 1~2층 간의 이동 정도는 비상 계단을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병원은 친절하지 않다?, 소통의 부재

서울의료원으로 비추어 본 대형 병원은 두 가지 면에서 소통 부재의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했다. 사람과 공간,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다. 먼저 병원 공간은 처음 방문하는 이에게는 미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기존의 사인시스템만으로는 안내 기능이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를 보조해 줄 인포스테이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정표는 여기저기 붙어 있다지만, 그것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단지 서울의료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병원에서의 혼잡한 안내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동선과 공간 구성에 맞춘 그 병원만의 스마트한 사인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직관적인 바닥 사인이나 컬러 사용 등 공간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안내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병원 공간은 보다 이용자들에게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또한 병원은 환자들과 병원관계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 사실 환자들이 병원에서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들은 어떻게 보면 소소한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듯이 커피 한 잔을 자유롭게 마시고 싶다거나, 또는 휠체어로 들어가기 편하게 화장실 문턱이 낮았으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병원마다 환자들의 의견을 듣는 통로도 있을 테고, 양측 간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단언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서로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자주 제공된다면, 환자들의 건의 사항 상당수는 자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일 것이다. 소통이라 해서 꼭 명확한 자리가 준비되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환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차갑고 삭막한 분위기가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건네주는 정서적 위안이 아닐까.


*디자인잼은 모두에게 열린 시민 주최 디자인 워크숍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디자인과 사회적 이슈에 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자 하는 소통의 모임이다. 참여 및 자세한 내용은 ‘디자인이. 서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하 디서무)' 페이스북 그룹(https://www.facebook.com/groups/DesignSeoul)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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