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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파스텔 색채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2018-02-13

 


 

아직은 이른 봄의 길목, 황홀한 색채와 함께 미리 봄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 전시는 추운 겨울과 함께 시작됐지만 그 아름답고 포근한 색채의 향연을 즐기기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바로 황홀한 색채로 파리의 여성들을 화폭에 담았던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의 전시다. 부드럽고 온화한 파스텔 톤의 감성. 비단 색채뿐 아니라 형태 등 그림 곳곳에서 따스한 그 느낌이 전해진다. 

마리 로랑생전 전시전경

마리 로랑생전 전시전경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마리 로랑생의 삶의 궤정을 따라 전시가 펼쳐진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마리 로랑생의 삶의 궤적을 따라 전시가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마리 로랑생의 20대 무명작가 시절부터 대가가 되어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 시기의 작품을 삶의 궤적에 따라 추적해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흐름이 마리 로랑생의 삶을 따라 펼쳐지는 만큼 그의 삶을 살펴보면 작품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마리 로랑생
한국인들에게 마리 로랑생은 프랑스의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 다리〉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마리 로랑생은 마크 샤갈과 더불어 세계 미술사에서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가로 꼽힌다. 입체파와 야수파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유럽 화단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해내기도 한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시인, 북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했다. 

(좌)〈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24, (우)〈샤를델마스부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38

(좌)〈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24, (우)〈샤를델마스부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38



가장 주목할 점은 단연 색채에 대한 그만의 매혹적인 감각이다. 황홀한 핑크, 옅은 블루, 청록색과 우수가 감도는 회색 등 마리 로랑생의 색감은 마법 같은 힘을 지녔다.  

1, 2차 세계대전의 풍랑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마리 로랑생은 여성 화가가 드물었던 약 100여 년 전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입체파의 창시자 조르주 브라크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으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고 피카소의 작업실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세탁선(洗濯船: Bateau-Lavoir)을 드나들며 본격적으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갔다. 

‘벨 에포크’ 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던 파리의 시기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예술가의 예술가’로 불렸던 마리 로랑생은 1, 2차 세계대전 전후에 피카소, 아폴리네르,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마리아 릴케, 코코 샤넬, 헬레나 루빈스타인, 서머셋 몸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피카소와 샤넬을 그렸고, ‘입체파의 소녀’, ‘몽마르트의 뮤즈’로 불렸다.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와는 피카소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그들의 5년간의 사랑은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연루되면서 끝이 났다.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마리 로랑생은 독일 귀족 출신의 화가 남작과 결혼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실연과 아픔, 상실감을 담은 〈미라보 다리〉는 1912년 발표되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가 됐다.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독일인 남작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마리 로랑생은 섬세하고 미묘한 색채 사용과 독특한 기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쌓아 나간다.

〈키스〉 캔버스에 유채 1927

〈키스〉 캔버스에 유채 1927



1920년부터 1930년까지 10년간 예술 활동에 집중한 그에게 명사들의 초상화 주문은 끊이지 않았고 의상과 무대 디자인뿐 아니라 도서와 잡지 표지 작업도 맡았다. 마리 로랑생은 여성 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고히 했고 1920년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 1953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 1953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그의 작품은 정형화되기 시작, 1950년대에는 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일흔이 넘은 노 작가가 되어서도 그는 매일 그림을 그리며 죽기 며칠 전까지도 예술혼을 불태웠다. 마리 로랑생은 195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흰색 장미와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받은 편지 다발을 든 채 오스카 와일드와 쇼팽 등이 잠든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Pere Lachaise Cemetery)에 안장됐다. 

마리 로랑생의 삶의 궤적 따라가는 국내 첫 회고전
70여 점의 유화와 석판화, 수채화, 사진, 일러스트 등 총 1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는 마리 로랑생과 관련된 19점의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1부 ‘청춘시대’에서는 마리 로랑생이 파리의 아카데미 앙베르에 다녔던 시절 그렸던 풍경화와 정물화, 자신의 초상화 피카소의 초상화 등이 전시되고 2부 ‘열애시대’에서는 입체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마리 로랑생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을 한 시기의 작품이기도 하다. 

3부 ‘망명시대’에서는 고통과 비애, 외로움 등이 자신의 색으로 더 강하게 표현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기욤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후 급하게 독일인 남작과 결혼하지만 1개월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신혼생활이 시작되기도 전 망명을 떠난 시기이기도 하다. 스페인에서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속에서 마리 로랑생은 그림과 문학에 의지한다. 

마리 로랑생만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마리 로랑생만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마리 로랑생은 자신만의 색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마리 로랑생은 자신만의 색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4부 ‘열정의 시대’에서는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마리 로랑생을 알리게 된 유화 작품들이 전시된다. 독일인 남편과의 이혼 뒤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시기로, 수채화, 명사들의 초상화, 의상,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시킨다. 1924년 마리 로랑생이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담당해 큰 성공을 거둔 발레 〈암사슴들〉의 에칭 시리즈와 공연 영상, 의상 도안도 볼 수 있다. 

5부 ‘콜라보레이션’에서는 38점의 수채화와 일러스트 작품들이 전시, 북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했던 마리 로랑생을 만날 수 있다. 마리 로랑생은 작가 앙드레 지드가 쓴 〈사랑의 시도〉,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알렉산더 뒤마의 〈춘희〉,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잡지 〈보그〉 등 마리 로랑생이 북 커버와 책 안의 일러스트를 맡았다. 마리 로랑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과 마리 로랑생이 1942년 출간한 시집 겸 수필집 〈밤의 수첩〉 등도 함께 전시되며, 시를 직접 필사해보고 시 낭송을 감상해보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전남대학교 미술사학과 정금희 교수는 “마리 로랑생은 윤곽선을 없앤 1차원적 평면성과 부드럽게 녹아드는 듯한 파스텔 색채만으로 평안함을 주는 형태를 완성했다”며 “이는 그림을 통해 세상의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던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예술은 계획이나 계산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본능과 직관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보면 예술은 그래야 하는 것임을 더 확실히 알게 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성이 중요시되고 있다. 획일적인 스펙보다 본인만의 독창성이 점차 돋보이는 있는 이때, 당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를 찾아 아름다운 세계를 완성한 마리 로랑생의 작품 세계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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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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