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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헛된 삶에 경종을 울리는 도상, ‘All (is) Vanity’

박수연 | 2015-06-24


자본주의의 발달과 경쟁은 자본과 물질을 지나치게 부각한다. 보이는 겉모습이 중요해지다 보니 보이지 않는 내면은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침잠한다. 이는 미디어와 SNS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시대 사람들은 미디어가 무작위로 던지는 무의미한 메시지에 함몰되었다. 무의미함. 바쁜 일상에서 절감하는 시간의 유한함,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절망감 등 현대인들은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과 마주한다. 부암동 서울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마련한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 전시는 또 다른 얼굴로 드리운 삶의 허상을 반추한다. 다소 무겁지만, 전시에서 현대인은 ‘나를 찾기 위한 과정’에 참여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만나 전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에디터 ㅣ 박수연 (sypark@jungle.co.kr)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화풍이 있다. ‘바니타스’ 회화다. 당시 네덜란드는 흑사병과 율법 중심 종교의 금욕주의로 종교 대분열 속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어두운 현실은 자연스레 ‘죽음’으로 연결됐고, 작가들은 불안하고 혼란한 심리를 캔버스에 담았다. 이때 중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그림처럼 캔버스에 스며들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저서 〈춤추는 죽음〉에 “바니타스에서 죽음은 더 이상 외부에서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 아니다. 여기서 죽음은 삶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 삶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라고 피력했다. 바니타스가 상징하는 것은 [vanité] 단어의 뜻 그대로 ‘헛됨, 공허함’이다. 바니타스 회화는 공허한 시대와 삶의 모습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도상은 현재의 시대상을 비춘다.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 전시는 이런 사회의 허상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류임상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현재화된 ‘바니타스’를 탐구하는 자리다. 바니타스의 구현은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의미를 찾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는 헛됨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전시 경험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우리가 보는 것들은 진실일까? 허상일까?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 진실임이 드러날 때가 있다. 사람은 보는 것을 믿기 보다 믿는 대로 본다. ‘소크라테스 효과’는 처음에 각인된 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그 믿음을 스스로 관철시키려 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가 일관돼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한 번 설정된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지고, 소위 말하는 선입견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들도 이면의 진실을 감추고 있을 때가 있다. 진실을 들어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빈 허상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탄식처럼 ‘헛되다’는 말을 내뱉는다.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 전시 공간은 해당 작품 존에 질문을 배치, 자신의 진실한 내면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모두 진실입니까?’
“당신은 그(그녀)의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명품’입니까?
 

Jungle : ‘모든 것이 헛되다’ 상당히 추상적인 주제입니다.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관람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모든 것이 헛되다’ 전시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바니타스 화풍에 대한 얘기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당시 종교 전쟁, 흑사병으로 만연한 암울한 현실을 해골, 성경책, 꺼진 초 등의 소재를 이용해 표현했죠. 여기서 해골은 죽음의 상징이라기보다 ‘덧없는 삶’을 대변합니다. 전시 기획 포인트로 사용한 작품은 지금의 시대상과 오마주 되고요. 제목만 듣고 많은 사람이 삶의 회의, 허무주의 등을 예상하는데, 전시 의도는 작품을 보며 관람객들이 정서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여유롭게 관찰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관람객 스스로 그 지점에서 궁극적으로 삶의 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Jungle : 주제를 선택한 이유와 전시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고도의 물질화, 자본주의의 시행착오 등이 겹겹이 쌓여 현시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회의적’인 정서가 가득합니다. 이는 이번 전시 주제이기도 한 ‘바니타스’ 정서와 맥락을 같이 하죠.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 화풍은 오랫동안 지속된 종교전쟁에서 온 금욕주의의 피로감과 흑사병이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던 당시 유럽인들의 실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풍경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미묘하게 오버랩되면서 ‘바니타스화를 현대의 작가들이 재현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Jungle : 해당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 선정에 심혈을 기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작가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죽음, 시간, 허무 등의 정서를 표현한 작가들의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호주 작가 샘 징크(Sam Jinks)의 경우, 극사실적인 묘사로 인체를 묘사하는 작가인데요. 생생하게 재현된 인체와 그 작업이 담고 있는 메시지(탄생-죽음)를 통해 관람객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전시 주제를 경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한승구 작가의 〈Mirror Mask〉의 경우 SNS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점점 본인과는 다른 이미지를 축적해 나가는 현대인을 풍자하며, 이병호 작가의 〈Vanitas Bust〉는 실시간으로 인간의 노화를 재현하여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짐 캠벨의 〈Low resolution works〉 시리즈는 현대인이 곧이곧대로 믿는 인터넷과 미디어 정보가 실은 언제든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작품을 통해 미디어 지식의 헛됨과 역설적으로 진실을 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죠. 정현목 작가의 〈still of snob〉은 많은 현대인이 자기를 외형적으로 포장하느라 잃어버린 본질을 상기하고 진짜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김태은 작가의 〈the message〉는 목적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해, 거대한 시소를 세상으로 보고 ‘자신만의 자아 찾기’를 하지 않으면 로봇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각각의 전시는 작품 자체가 품은 함의를 메시지로 전달합니다. 이외에도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업을 물 흐르듯 전시 주제에 규합하도록 연출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돈된 시나리오에 잘 맞는 배우들을 섭외한 거죠. 무엇보다 이 전시는 작가가 중요합니다. 다소 모호한 전시 주제가 작가들의 작품으로 표현되면서 조금씩 선명해지고 마침내 전하고자 하는 주제로 완성되었어요.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Jungle : ‘바니타스화’가 표현하는 세속적인 삶과 물질이 의미하는 바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욕망과 관련 있는 듯합니다. 상징하는 소재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나요?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업 중 정현목 작가의 〈Still of Snob〉작업은 사진으로 당시의 바니타스 회화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작품 속 해골은 바니타스 회화를 상징하는 소재죠. 그 밖에도 바니타스 회화 소재로 이용되는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한 촛불(꺼진 촛불)은 시간의 유한함을, 사일로랩 〈묘화〉 작품에 장식된 ‘드라이 플라워’는 젊음의 유한함을 상징합니다. 또 책은 세상 지식의 허무함, 보석은 재물의 헛됨을 상징하는 소재로 쓰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현목 작가 작품의 반전은 고상하게 피사체로 자리 잡고 있는 명품 가방이 ‘가짜’라는 겁니다. 진짜라고 믿는 제품이 실은 가짜이고, 이는 자신과 타인을 기만하는 진실성의 상실로도 볼 수 있죠. 우리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구입한다고 합시다. 실은 우리가 구입하는 건 그 가방의 내구성이나 품질이 아닌 그 브랜드가 지닌 ‘가치’입니다. 많은 현대인이 브랜드 가치를 본인의 가치로 단순 치환하고 있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획득하는 행위죠.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바로 그 지점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헛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이에요.
 

Jungle : 입구에 서 있는 얼굴 작품부터 전시 작품들이 대부분 감춰진 인간 내면, 즉 나 자신을 반추하게 합니다. 전시가 보통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반면, 이번 전시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요. 이번 전시 경험을 전시 디자인의 확장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시는 기본적으로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미술과 같은 예술 작업은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자극에 관람객이 직접적인 반응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보는 이의 감정에 닿는 감성 영역이 더 중요합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전시 설계가 중요한 이유죠. 저는 이와 같은 작업을 AX(Art eXperience), 즉 ‘예술 경험’ 설계라고 합니다. 입구에서부터 시각-촉각-청각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경험이 ‘예술적인 감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합니다. 이번 전시에 작품별로 질문을 배치한 것이나 해설 부분을 어둡게 해두고 관람객에게 지급하는 손전등으로 직접 찾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생의 순간순간에 대한 대답 역시 일정한 수고를 들여야 찾을 수 있듯이 손전등으로 직접 답을 찾는 행위를 ‘경험’하게 디자인했습니다.
 

Jungle : 이번 전시 기획과 총괄 진행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시 진행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교과서 같은 답이지만, 특히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전시’는 기획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가 ‘전시’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전시를 한 번에 찾아갈지, 고생하며 찾을지는 철저히 개인적인 능력에 따른 것이고요. 차후 진행될 전시들을 잘 찾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르스 등 여러 국내외 이슈로 점점 삶이 척박해지고 무미건조해지고 있는데, 현대인들이 새로운 ‘예술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전시가 삶을 돌아보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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