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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이중적 언어유희를 즐기는 한없이 우아한 디자人

박수연(sypark@jungle.co.kr) | 2015-08-14


미국의 비평가 겸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모든 인간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웃음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역사 속 사람들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웃음’에 주목했다. 역사가로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통찰이 ‘웃음’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위트 있는 말과 행동 때문에 분위기가 전환된 경험을 여러번 겪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위트 한 조각에 ‘피식’ 웃음이 새고, 그 순간 조이던 숨통이 트이지 않던가. 위트는 인간관계를 긍정적이고 즐겁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위트가 디자인과 연결되면 어떨까? 제품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에디터 ㅣ 박수연 (sypark@jungle.co.kr)
 

'수동 바람', ‘이런 십육 기가’, ‘깨우면 안대’, ‘까먹지 말자’, ‘난 너의 든든한 빽’, ‘머그컵 같은 연필꽂이’는 친숙하지만 어딘지 조금 어색한 문장들이다. 이는 각각 우아한형제들에서 만든 부채, USB, 수면안대, 메모잇, 에코백, 연필꽂이를 지칭한다. 우아한형제들의 브랜드 제품을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풋’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유희의 한없는 가벼움이 디자인을 친근한 대상으로 바꿨다. 그러나 언어유희가 가지는 이중적 의미처럼, 우아한형제들의 위트는 ‘웃음’ 이면의 현대인에 대한 페이소스를 자극하고, 디자인 뒤에 가려진 사회와 주변을 환기한다. 김봉진 대표는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상기해야 한다”며, “우아한형제들의 디자인이 현대인의 삶에 작은 여유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모든 것은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김봉진 대표는 ‘정의 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정의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을 ‘평등,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구분했다. 고전에서 말한 ‘각 개인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나 ‘동등한 자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평등에 기인한다. 인간에게 ‘정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한다. 정의는 다양한 사전적 의미를 갖는데, 위에서 말한 ‘정의(定義)’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한다’는 뜻이다. 에디터는 인터뷰 중 그의 생각에 다양한 정의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정의(定義):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또는 그 뜻]
우아한형제들은 ‘푸드테크’ 기업이다.


Jungle : 모든 일의 시작은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라고 했는데요. 어떤 과정이 수반되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지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과 앉는 것을 디자인하는 것은 다른 거죠. 문학의 경우 수많은 감정이나 행동 표현을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응축합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개의 단어로 감정을 표현하죠. 이는 한 번 정의되고 정리된 틀에 감정을 가둔 결과입니다. 의자도 정형화된 정의에 따르면 획일화된 모양만 나옵니다. 지금 인터뷰하는 회의실도 마찬가지죠. 회의실을 만들 때, ‘회의’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오피스 가구를 사다 놓고 가운데 컨퍼런스콜 장비를 세팅하면 회의실일까요? 우리가 아는 대부분 회의실은 그런 식이죠. 회의는 같은 회사에서 동료들과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얘기하는 자리고, 같은 뱡향으로 맞춰나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러면 대립적인 관계에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식과 구도로 얘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고등학교 캠퍼스 느낌의 계단식 구성과 편한 분위기를 위해 캠핑 소품들로 꾸몄습니다. 그 덕에 훨씬 자유롭고 유연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죠.
 

저는 올해 초 회사를 국내 최초로 ‘푸드테크’라는 단어로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O2O(Online to Offline)로 바라보는데, 저와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죠.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온 흐름을 바탕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푸드테크’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가 시장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정리되더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깊게 들어가고 하지 말아야 할 수평적인 것들이 정리된 셈입니다. 가령, 택배사업은 하면 안 됩니다. 푸드테크는 물건 운송이나 이삿짐 배송, 꽃 배달과는 다르니까요. 우리는 무조건 음식 배달만 합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원하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 서비스 정의입니다. 정의는 기업의 비전이 되고 잘게 쪼개져 디테일한 디자인에도 반영됩니다.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하여진 정]
한국인만 디자인할 수 있는 한국적인 디자인


Jungle : 우아한형제를 통해 보여주는 디자인은 단순히 배달의민족 앱과 서비스의 범주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아한형제들이 지향하는 디자인은 무엇입니까?

배달의민족 앱을 디자인할 때 ‘배달음식’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중국집 배달을 예로 들면, 많은 사람이 먹지만 주문은 늘 막내가 하죠. 배달의민족 앱에 막내들이 좋아하는 문화 코드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키치한 B급, 패러디, 위트 같은 것을 접목했고 그런 느낌을 UI적으로도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은 형태와 기능을 벗어난 감성이라고 봅니다.

저도 디자인학과를 나왔지만, 학생 때 공통으로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기 위해 태극 문양, 처마 밑 형태, 기와 생김새, 한복의 곡선 등을 살피죠. 그러나 ‘한국적’인 디자인은 정해진 포맷이 없어요. ‘배달의민족’만큼 한국적인 디자인이 있을까요? 한국 사람만 이해할 수 있고, 한국인만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인 말이에요. 실제 외국 사람들은 저희가 만든 광고나 문구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낯선 문화, 낯선 콘텐츠일 뿐이죠. 저희의 디자인은 현대 한국적 디자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어요. 우아한형제들은 그런 점에 자부심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디자인의 핵심은 한글의 묘미입니다. 어휘를 통한 해학, 풍자, 위트, 중위적 표현의 말장난이죠. 이를 비주얼로 표현하기보다 감성적으로 느끼게끔 하는 것이 포인트예요. 저는 올해로 15년 차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했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디테일은 기본이고 ‘예쁜 걸 디자인할 것이냐, 사랑스러운 걸 디자인할 것이냐’죠. 예쁜 것과 사랑스러운 건 엄연히 다릅니다. 대부분 디자이너는 예쁘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디자인이 타인의 감성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아요. 저는 후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의(情義): 따뜻한 마음과 의리]
일상의 쉼, 여유를 선사하는 디자인


Jungle : 감성으로 다가가는 디자인은 디자인에 담긴 메시지나 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우아한형제들의 디자인을 통해 어떤 감성적 소통을 하기 원하시나요?

감성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 탓이죠. 디자인은 시각적인 부분을 다루지만, 그것을 통해 마음이 차가워질 수도 있고 따뜻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미의 기준도 변했습니다. 시각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면서 보이는 이면의 스토리텔링 등 복합적인 정보를 취하는 데 익숙해졌죠. 사람들은 제작 스토리를 보고 듣기 원합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리사 프로젝트는 첫째 딸 이름인 ‘리사’를 따서 만든 거죠. 안상수 선생의 ‘미르체’, ‘마노체’는 두 자녀의 이름을 딴 거고요. 그래서 우아한형제들 서체를 만들 때 많은 고민 끝에 제 딸들의 이름을 땄습니다. 그 서체가 바로 ‘한나체’, ‘주아체’입니다. 이제 곧 출시하는 세 번째 서체인 ‘도현체’는 직원들의 아이 이름 중 추첨을 통해 뽑았습니다. 내년에 나올 ‘나위나언체’도 직원 아이 이름인데, 쌍둥이인 관계로 함께 썼습니다. 이런 스토리는 애정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디자인이 가볍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어린이날 딸 한나와 이마트에 갔는데, ‘한나체’로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아이가 그것을 보고 무척 좋아했는데, 디자인하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디자인으로 숨 막히는 세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여유를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합니다. 디자인에 의미를 담는 건 이미 선배 세대에서 많이 했다고 봅니다. 제 역할은 ‘디자인이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구나’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의(正意): 바른 뜻. 또는 올바른 생각]
오랜 숙련 과정이 토해내는 창의력을 키워라


Jungle : 대학 입시부터 디자인과 학생들은 획일화된 테크닉에 치중하면서 오히려 창의력이 반감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 나오면 바로 결과물을 만들라고 하는데 큰 부담이죠. 학교 수업과 실무의 간극이 커서 그런 건 아닐까요?

실무에서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개인적으로 숙련되지 않은 창의성은 창의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숙련되려면 반드시 오랜 기간이 필요하죠. 처음에 좋은 디렉터에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머지 디자인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제가 2~3년 차 디자이너일 때는 시안을 굉장히 많이 잡았습니다. PT를 이틀 앞두고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어요. 마지막 디테일 작업만 남겨둔 상황이었죠. 당시 저를 디렉팅했던 실장님이 있는데, 제게 원래 PT 들어가기로 했던 날까지 완성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중간에 프로젝트가 무산되더라도 작업을 완성해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요. 당시는 불만이었지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일 취소될 때마다 작업에서 손을 놨다면, 하나하나 매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놓쳤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에게 똑같이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게 많기 때문에 끝까지 만드는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게끔 독려합니다.
 

Jungle : ‘자기다움’에 대해 강조하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남과 다른 ‘자기다움’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자기다운 디자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자인과 브랜드의 핵심은 ‘자기다움’입니다. 자기다움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와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죠. 다른 것에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권하지만, 일주일에 몇 시간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은 떼로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기가 더 어려운 게 사실이거든요.

디자이너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업해놓고 ‘이거 어떤 거 같아?’라고 물어보기 일쑤죠. 그런 이유로 디자이너에게 더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왜 디자인을 하는지’, ‘추구하는 스타일은 뭔지’,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이 내 안에서 나온 건지’, 나아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남과 다르기 위해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름은 본질적으로 자기다움과 달라요. 다름은 남을 의식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도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내 안에서 시작된 것으로 해야지 더 배울 게 많죠. 성공하더라고 더 크게 성공하고요.
 

[정의(正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철학)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디자이너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의식해야 한다


Jungle : 김봉진 대표는 자기만의 시간에 무엇을 하나요? 그 시간에 디자이너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자기만의 시간은 진공 상태의 시간입니다. 혼자만 있는 시간, 즉 타인과 단절되는 시간이죠. 극장에 가는 것도 그런 시간의 일종입니다. 저는 디자이너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바로 결과물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녹아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책이 몇 권 있는데, 로저 마틴의 〈디자인 씽킹〉,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다니엘 핑크 〈드라이브〉, 이타마르 시몬슨, 엠마뉴엘 로젠의 〈절대 가치〉, 마리아 쥬디스의 〈DEO의 시대가 온다〉 등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디자인을 시각적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본문에 ‘산업디자인보다 더 유해한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차를 하나 디자인하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습니까? 그 점을 디자이너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일갈합니다. 또 저자인 빅터 파파넥은 “디자이너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의식해야만 한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상품과 환경, 나아가 디자이너 자신까지도 형성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수첩 제일 앞에 붙여놓고 수시로 보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더더욱 사회적·도덕적 책임감을 의식해야 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죽을 때 비석에 ‘디자이너 김봉진’이라고 새겨지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마지막까지 디자이너란 이름을 가지고 죽는 사람은 몇 안 되죠. 디자이너가 되는 것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동료뿐만 아니라 후배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지켜나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합니다. 힘들어도 계속해 나가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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