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5
유행하는 퍼프 소매의 원피스도, 멋진 장식이 달린 모자도 없이 주일학교를 털레털레 가던 앤에게 길가의 꽃이 준 순간의 로맨틱한 장식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 신기하리만치 빨간 머리 색을 한 아이, 괴짜라고 소문이 난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좀 더 당당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앤이 선택한 것은 모자 장식이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지만 그 모자 장식은 앤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꽁블(conble)’의 모자를 보면서 빨강머리 앤의 꽃장식 모자가 떠올랐다. 각기 다른 장식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것들은 하나하나 각자의 드라마를 품고 있는 듯 했다. 소녀의 수줍은 첫 데이트, 노신사의 평온한 오후, 파티에 홀로 앉은 여자 등이 느껴지는 모자들의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꽁블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그 속에서 모자디자이너 최혜정의 작지만 강하고, 느리지만 쉼 없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취재| 이동숙 기자 (dslee@jungle.co.kr)
꽁블은 96년 홍대에서 시작했다. 독특한 문화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홍대는 미술을 전공하던 그녀에게 낯설지만은 않았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특이한 장식을 한 모자가 스스럼없이 어울릴만한 곳을 선택하면서 홍대를 선택했으리라. 하지만 점점 홍대는 클럽의 들썩들썩한 리듬으로 들어차고 그녀는 좀더 꽁블스러운 곳을 찾아 조용하고 느리지만 쉼 없는 문화기류가 일어나고 있는 삼청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는 장소적인 느낌이 주는 부분뿐 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과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확연하게 구분한 이분법적인 작업을 하던 초기와 달리 좀 더 여유롭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상호 보완해 나가는 작업 스타일로 변하게 되면서 튀는 문화 홍대에서 생활 속 예술의 삼청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 것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멋진 모자는 한 소녀에게 모자에 대한 로망을 가져다 주었고 그 로망은 현실에서 그녀 앞에 낱낱이 파헤쳐졌다. 미술학도로 프랑스 파리에 유학을 간 그녀가 모자를 만드는 작업을 만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평면작업을 항상 뛰어넘으려는 그녀의 조형에 대한 갈증과 모자의 구조적이고 섬세한 입체 작업은 한 눈에 서로 반해버렸고 그녀에게 모자 디자이너라는 숙명을 안겨주었다.
핸드메이드로 이루어진 모자의 메이킹 과정은 그야말로 그녀에겐 세상에 눈을 뜨고 본 가장 아름다운 과정이었으리라. 그 과정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 앉아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모자의 속사정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했다.
파리에서 모자 디자인을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녀는 프랑스에서조차 생소한 모자 디자이너의 작업을 배운 대로 온전히 살릴 만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일반 회사는 그녀가 공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모자 디자이너를 원했고 그녀는 자신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리기로 맘 먹는다. 96년 오픈 이후 그녀는 쉼 없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일 외에 다른 휴식은 꿈도 못꾼다는 그녀에게 모자는 그녀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모자도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만들어 내어 그녀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처음 매장을 오픈했을 당시에는 그녀는 창작과 단순 맞춤 작업에 대한 딜레마를 깨트리지 못하고 고민하며 힘겹게 작업을 했다고 한다. 손님이 직업 들고 온 모자를 똑같이 만들어 낸다거나 하는 식의 작업은 초기 젊은 디자이너에게 자존심이 상하기만 하는 노동에 불과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작업들이 테크닉적인 발전을 도와주는 데 일조를 했다. 내가 디자인 한 것이든 아니든 자신의 손을 거친 그 것들은 꽁블의 맛이 살아 있고 그녀의 감성이 녹아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10년의 꽁블은 하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선 작업실을 들어가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모자의 디자인 틀인 떼뜨. 머리를 뜻한다는 프랑스어 떼뜨라 불리는 이것은 최혜경씨가 파리로 가서 직접 디자인한 모자의 틀을 나무로 작업을 해온다. 파리에도 딱 두 곳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이 떼뜨는 그녀가 욕심내는 것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것들은 소재를 모아놓은 박스와 갖가지 재료들을 넣은 박스, 그리고 10년 동안 함께한 모자들이다. 그 것들은 먼지가 앉거나 약간의 뒤틀림으로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자 디자이너라 하면 일반적으로 고상하게 다 만들어진 모자에 꽃이나 달고 장식이나 다는 게 다라고 생각한다. 그 ''다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모자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중요한 과정으로 굉장한 노동(!)이 요구된다.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에 맞는 목형에 심지를 씌워 분무기와 다리미를 이용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형과 심지를 붙여야 한다. 요즘 같은 더위에 커다란 다리미를 들고 그 딱딱한 목형에 심지를 붙이는 작업을 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심지를 붙이고 나면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 그것을 모르고 덤빈 수강생들 여럿 고생했다고 한다.
심지를 붙인 뒤 원하는 천으로 입체재단을 한다. 입체재단을 한 모자는 쓰는 사람이 바로 느낄 정도로 그 착용감은 뛰어나다. 모자를 쓰면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압박은 꽁블의 모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재단 작업을 끝내면 장식을 하게 되는데, 이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장식 하나에도 미묘한 느낌 차이가 나고 디자이너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도 그 표현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한다. 보는 사람은 심플한 디자인의 모자일 지라도 그렇게 심플하게 끔 연출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고민을 거듭하며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작업이 바로 이 장식 작업이라고 한다.
이렇게 고된 작업과 섬세한 손길을 거쳐 완성된 작품들은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같은 모습은 없지만 서로 꽁블의 느낌으로 어우러진 모습으로 지나가는 행인의 발길을 끈다. 쇼윈도에 배꼼이 내민 모자들은 역시나 쇼윈도 안을 들여다 보는 행인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매장을 들린 사람들은 모자를 선뜻 사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디자인의 모자들을 써보면서 자신도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것으로도 웃음을 짓는 그녀다.
Jungle : ‘꽁블’이란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최혜정(이하 최) : 정상, 꼭대기, 다락방이란 뜻이 있지만 가장 정확한 뜻은 가장 절정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신랑이 지어주었다. 파리에서 연애를 하고 먼저 들어와서 오픈 할 당시 작업실 이름을 고민하던 중에 전화통화로 꽁블이란 이름을 제안했다. 모자의 우리 몸에서의 위치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의미가 맞아 사용하게 되었다.
Jungle : 자신에게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가?
최 : 일이 많을 때는 항상 빨리 가고 싶은 공간이지만 일이 없을 땐 두려움이 앞서는 곳. 머리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휴식시간이 필요한데 가정도 있다보니 시간에 쫓겨 힘들다. 비워놓고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낼 수 없어 늘 꽉 차있는 머릿속. 그렇다 보니 딱히 쉴 곳은 작업실뿐이더라. 쉼터 같은 공간이었다 공장이기도 한 곳이 이 작업실이다.
Jungle : 예전에 인터뷰에서도 읽었지만(2003년 정글 특집기사 중), 모자를 선택한, 굳이 모자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딱 보고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있나?
최 :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딱 모자여야만 했던 이유는 없었지만, 모자는 보여지는 결과물에서는 그 뒤에 담긴 과정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모자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머리에 쓰면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만드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입체 작업 과정에서 형태 자체가 주는 조형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모자가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좋았다. 영화의 소품으로 하나의 상징적인 소품으로인물을 표현해 내는 탁월한 아이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자의 감성적인 부분도 함께 작용을 한 듯하다.
Jungle : 오픈 당시에 비해 이런 아뜰리에 개념의 모자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나?
최 : 모자가 10년 전보다는 보편화가 되어서 그때보다 많이 어렵진 않다. 그때는 어떤 모자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일반적인 것과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이 자신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서 딜레마도 겪었다. 지금은 그 때보다는 편하게 작업하고 있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 자체에 의미가 없고 난 내가 만들고 싶은 모자를 열심히 만들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아뜰리에 개념의 모자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생소한 듯 하다. 유럽에서는 장인의 손길을 거친 작품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두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핸드메이드는 명품보다 아래의 것이란 인식이 있다. 특별한 디자인의 모자라는 것에는 변함 없지만 예전의 디자인이 지금에 와서 보면 평범해 보이는 것을 봐서는 그만큼 재료나 소재, 표현 면에서 그 때보다는 많이 자유로워 지고 보편화 됐음을 느낀다.
Jungle : 자신에게 있어 ‘모자’는 어떤 의미인가?
최 : 모자는 생활이다. 먹고 자고 그림 그리고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생활.
디자인의 아이디어도 대단한 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 가면서 만들어 간다. 아이디어를 특별히 얻으려고 찾아 다니지는 않는다. 젊을 때는 일부러 영화 등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예전의 디자인에서 발전하는 모습, 시간에서 묻어나는 꽁블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