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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그림 모으던 소년, 새로운 꿈을 꾸다

2010-12-28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그가 그림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은 이렇다 할 도록이나 전시가 없던 시절. 소년은 한 두 푼의 동전을 아껴 청계천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청계천에 늘어선 헌책방은 그의 보물창고였다. 여성잡지 부록으로 나온 화보를 모으며 소년은 수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소년은 ‘걸어 다니는 미술 박물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소년은 아직도 그림을 수집하고 자료를 모은다. 그의 이름은 김달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미술관련 자료를 보유한 김달진미술연구소의 소장이자, 한국미술정보센터의 관장이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김달진 관장에게 있어 2010년은 가장 뜻 깊은 해이다. 40여 년간의 미술자료 아카이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고 더불어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이라는 책을 낸 해이기 때문이다. ‘이중섭’과 ‘박수근’만 기억하는 대중들을 위해 자칫하면 묻힐 수도 있는 미술인들의 자취를 정리한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은 그에게 있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업이다. 또한 그는 올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가 보유한 대한민국 미술사의 모든 것이 담긴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미술사를 위해 끊임없는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달진 관장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Jungle : 김달진 관장님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수많은 정보들을 가장 많이 알고 계시는 분으로 유명하십니다 이렇게 미술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아카이빙을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엔 ‘아카이브’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지금처럼 서양의 유명한 블록버스터 전시도 없었고 인쇄술이 떨어져 이렇다 할 화집도 볼 수 없었죠. 그냥 중, 고등학교 때 지금은 없어진 여성잡지인 여원이나 여상 등에서 이달의 명화 칼라화보를 뜯어서 수집하던 것이 그 시작이었어요. 미술이 뭔지도 아카이브가 뭔지도 몰랐죠.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인 1972년도의 일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00년에서부터 1960년까지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총 정리하는 ‘한국근대미술60년전’이라는 전시를 진행했어요. 그 전까지는 서양명화들만 모았었는데 그 전시를 우리나라 근대작가들의 그림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김환기나 이중섭처럼 유명한 작가들의 자료들 외에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도 자료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우리나라 근, 현대 작가들의 자료를 찾아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 계기였죠.

Jungle : 서울아트가이드는 어떻게 발간하시게 되셨나요?

81년부터 15년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자료담당 업무를 하다가 96년에 가나화랑의 자료실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만들었던 게 ‘화랑미술관 전시회 가이드’라는 8쪽 접지 간행물이었어요. 곳곳에 위치한 화랑들의 전시일정을 소개하는 책자였죠. 이걸 통권 40호까지 격월간으로 만들다가 2002년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하면서부터 정기간행물로 등록을 했어요. 그게 바로 현재 발간하고 있는 ‘서울아트가이드’입니다. 기초가 된 화랑미술관 전시회 가이드를 시초로 치자면 15년이고 서울아트가이드라는 이름의 간행물 역사만 따지자면 9년 동안 발간한 것이죠. 지금은 칼럼 같은 텍스트 콘텐츠가 추가되어 잡지형태로 발간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구역별로 전시일정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Jungle : 앞으로 서울아트가이드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서울아트가이드는 변화하는 속도가 느립니다. 2009년까지도 중철 제본으로 발행했었지요. 책의 볼륨이 두꺼워지면 읽는 사람으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지질은 모조지였습니다. 그러다가 광고주의 요청으로 지금의 얇은 아트지로 바꾸게 되었죠. 빠르게 변화하고 앞서 가는 것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종이매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종이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고 봐요. 그런 장점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것에 충실히 소구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요즘엔 화랑지도를 세분화시키고 있어요. 예전엔 청담동 지역에 함께 묶여있던 삼성동을 분리시켰고, 서초동도 더 자세하게 나누어 편리하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른 잡지들은 외국 소식 같은 경우, 유럽이나 미국 위주의 콘텐츠만을 다룹니다. 하지만 저희는 영국, 독일, 미국을 비롯해서 일본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있는 국가들의 전시까지 소개하고 있지요. 우리의 방향성은 비록 더디지만 독자의 요구나 생각에 맞춰 끌고 가자는 겁니다.

Jungle : 한국미술정보센터 기획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간 운영해오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미술 분야의 아카이빙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과 소통하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 사실이었죠.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확대하여 자료를 공유하자는 맥락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예술전용공간 임차지원사업공모에 지원했고 선정되어 한국미술정보센터를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좀 아쉬운 것은 이 지원이 장기적인 것이 아니라 2년마다 계속 사업자를 바꾸게 된다는 점입니다.

Jungle : 관장님에게 있어 아카이빙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아카이빙은 하나의 역사입니다. 단지 자료를 많이 수집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집한 자료에 대한 의미부여가 필요해요. 수집한 자료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바로 그 것이죠. 예를 들어 전시회 티켓 같은 경우를 봅시다. 기본적으로 티켓엔 전시의 대표작을 싣게 되기 마련이죠. 거기에 더불어 티켓 자체의 디자인과 당시의 입장료 등 모든 사항이 일종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구체적인 자료 없이 뭘 얘기할 수는 없는 거죠. 근거가 되는 자료가 있어야만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Jungle : 지금 수집품 중에 유독 아끼시는 것이 있습니까?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개관전 ‘기록, 자료 그리고 아카이브’는 자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전시물 중, 1921년도에 발행된 ‘서화협회회보’는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은 최초의 미술잡지에요. 미술학자들도 자료가 없어서 복사본으로 연구하던 것인데 이번에 코베이 경매를 통해 큰 돈을 주고 구매했지요. 그리고 1929년에 독일인 에카르트가 쓴 ‘조선미술사’도 상당히 중요한 자료 중 하나입니다.

Jungle : 김달진 미술 연구소와 한국미술정보센터를 통해 구상하고 계시는 미래의 계획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아카이브라는 용어는 ‘보관소’와 ‘자료’를 아우르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시작한 후 2007년에 경복궁역 근처의 통의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수집했었던 자료를 일반공개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2008년부터는 법적인 요건을 충족시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라는 이종박물관을 서울시에 등록하게 되었죠. 그걸 토대로 이번에 한국미술자료센터를 개관한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일반인들에게 더 편하게 열람시키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행히도 우리가 보유한 컨텐츠와 신뢰도 덕분에 외부에서 MOU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내년부터는 네이버와 교보문고와 함께 전시정보를 서비스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앞으로 보유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시키는 것이 필수인데 여기에 막대한 재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서울아트가이드의 광고료만으로는 직원들 월급과 제작비, 운영비만 감당하기도 벅찹니다. 국가적인 지원이 있지 않고서는 힘들죠. 그런 것들이 사실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큰 과제에요. 아카이브 사업 발전과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영구적인 공간확보가 필수입니다. 앞으로는 지속적인 아카이빙 작업과 더불어 이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 할 수 있는 수익모델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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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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