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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좌충우돌! 디자인유학기 제1회

황현빈 런던통신원 | 2005-12-23



런던은 유럽에서 제일 크고 혼잡하고 바쁜 도시이다. 그래서 런던은 유럽이나 영국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보수적인, 오래된...그런 수식어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만약 그런 것을 기대하고 런던행을 감행한다면 런던 이외의 지역으로 가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완전히 새로운 배경에서 나오는 vibrant trends와는 다른, 탄탄하게 쌓여진 배경과 다양함, traditional과 modern의 혼재 등, 런던은 변덕스러운 이 곳의 하늘 만큼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새로운 문화와 독특한 트렌드의 발상지이며, 물론 당연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라라는 것이 런던 디자인 유학의 장점이기도 하다.


최근 2-3년 사이에 런던에 한국 디자인 유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먼저 온 유학 선배들은 말한다. 아직 많은 상업문화의 중심이 미국이고 또 그것이 갑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국이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유학생에게 매우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기에 영국의 디자인 교육 과정과 특성 그리고 내가 경험한 그것의 장, 단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ㅣ 황현빈 런던통신원(bni1218@hotmail.com)


런던의 아트나 디자인 교육 과정은 우리나라 대학교 1학년 과정에 준하는 Foundation Course, 학사 과정에 해당하는 BA Degree Course, 석사 과정인 MA Course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이곳의 아트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Foundation 과정 1년 동안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 주목하기 보단 그것과 관련된 아트와 디자인 분야 전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BA나 그 다음의 과정으로 진급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도 준비하게 된다.


이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고 싶은 전공에 따라 반이나 그룹을 배정받게 되는데, 이 과정의 중반 평가가 끝날 때쯤 처음의 선택대로 자신의 전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나의 전 기숙사 플랏 메이트도 처음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려고 맘 먹었다가 끝 무렵 그래픽 디자인으로 그녀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즉,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또 중간중간 받게 되는 평가에서 튜터(조교가 아닌 영국에서는 교수를 일컬음)와의 상담에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그가 살펴봐 주기도 한다. 그래서 2번째 학기 동안의 자신의 작업을 가지고 원하는 학교, 학과를 선택해서 지원하게 된다.
이 때 튜터들의 반응과 결정은 매우 냉정하고 정확하다. 한국처럼 이곳도 입시 경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작년에  인기가 많은 세인트 마틴의 패션 디자인 학과 BA를 꿈꾸던 학생들의 대부분이 한번씩 심한 마음의 갈등이나 충격을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3학기 중간에 지원 결과가 발표되는데 이 순간 역시 희비가 교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교차지원이 가능하고 또 추가 모집도 있기 때문에 결과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아트나 디자인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파운데이션 입학을 준비할 수 있게 지도한 프리파운데이션 코스, 파운데이션 포트폴리오 과정도 있다.



이제부터는 학사 과정에 대한 언급 하고자 한다. 그런데 각 학교와 과정에 따라 그 특성과 과정이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참 까다로운 주제이지만, 이 칼럼의 제목에 맞게 나의 5감으로 느낀 것과 내가 겪었던 과정을 중심으로 학사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편적으로 영국의 an academic year는 Autumn(9,10월부터12월 중순까지- 보통 9월엔 파운데이션 과정, 석사과정, 단기 Certificate 과정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BA와 잠시 후에 소개할 Foundation Degree 과정들이 10월에 시작의 종을 울린다.), Spring(1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Summer(4월 중순에서 6월말) 이렇게 3학기로 구성되는 데, 보통 한 학기의 길이는 10주 정도이다.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한학기가 매우 짧은 편. 그래서 나의 경우는 방학 숙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앞으로 다가올 2-3주에 대한 브리프를 받게 된다. 그 다음주에 학생들은 visual and contextual research materials를 가지고 세분화된 그룹 속에서 튜토리얼을 받게 된다. 이것은 튜터와 학생들이 한 책상에 둘러 앉아 자신의 아이디어와 진행 방향 등을 얘기하고 그와 관련된 아트와 디자인 지식에 대한 세미나 형식이다. 나는 Final presentation 보다 이 때가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한 자괴감이 제일 많이 든다. 정말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포트폴리오를 멋지게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어학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짧은 기간의 프로젝트는 그 다음 주에 반 전체가 모인 프리젠테이션을 갖게 되고, 보통의 경우는 한 주 더 이런 식의 튜토리얼을 거치고 그 다음에 돌아오는 주에 학생들은 마지막 단계인 그것을 하게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한다던가, 영국 특유의 느슨해 보이는 교육 스타일에 맘 놓고 ‘파이널 직전에 해야지’라고 맘 먹는 다면 아마 큰 코 다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3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빨리 지나가고 그 중 하나라도 미뤄놓게 된다면 의례적으로 9주차에 갖게 되는 final assessment- D-line –에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이 발전시켜온 작업과 평가 시트를 보고 자기 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혹은 그 라인을 맞추지 못해 학년 말에 어마어마한 경고장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마지막 주는 보통 feedback tutorial를 받게 된다.


이 때 튜터와 깊은 대화를 1:1로 할 수 있어서 매우 좋다. 한국에서 늘 9주나 10주차에 매너리즘에 빠졌던 나의 경우엔 이런 식으로 짧은 학기를 열심히 바쁘게 몰입해서 보내고, 다가오는 4주의 짧은 방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다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영국으로 발길을 향한 것도 있다.



미국식 커리큘럼과 스타일을 가진 나는 한국에서의 디자인 학교와 미국에서 유학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미국 디자인 교육과정은 영국과 같은 언어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것도 불구하고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미국과 한국 과정은 ‘공부를 시키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면 영국은 공부하도록 ‘방목’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전자가 보통 실력 이상의 많은 예비디자이너를 양성하는 반면에, 영국은 소수의 천재 아티스트-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와 다수의 그렇지 못한 그냥 디자인 과정 졸업생으로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그 차이가 극렬하게 나눠질 수 있다.


물론 나의 의도는 그렇다고 전자에서 천재 디자이너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또 후자에서 보통 실력 이상의 예비디자이너가 아예 양성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차이점을 전하기 위한 나의 귀여운 과장이다.  또, 한국이나 미국처럼 출석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나오지 않는다고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심지어 튜터조차 ‘너 왜 저번주에 나오지 않았니?’라고 절대 물어보지도 않는다. 솔직히 성적에 출석성적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다. 다만 나의 아이디어 진행 과정을 튜터가 알아야 하고 그것이 마지막 기말 평가에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출석이 의미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반친구들 중에서 학기 내내 얼굴을 보지 못하다가 마지막 기말 평가 날에서야 그의 얼굴과 작업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미국식과 비교했을 때 수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곳의 교육 방식은 4시간 수업을 듣고 나면 2-3배에 달하는 시간을 self-study로 잡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또 커리큘러 브리프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잘하는 학생의 경우 한 프로젝트의 폭이나 깊이는 놀랄 만큼 엄청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경우는 그저 종이 한 두 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만큼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세스북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곳에는 모든 것이 기록가능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노력의 시각적 증거물이다. 처음 편입해서 적응할 시기 아무도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나의 과정의 경우엔 하나의 디자인 스투디오 과목에 3명의 튜터가 들어온다. 물론 그만큼 반의 학생도 많고 스투디오 과목 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 장점도 많다.
그 중 하나는 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날, 가끔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그 동안 과정을 보아온 튜터와 그렇지 않는 튜터들 사이에서의 야기된 논쟁을 보게 된다.
비록 가끔이지만 그들은 서로 얼굴이 벌게 질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교수들 사이에서 서로 존중이 당연시되는 한국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튜터의 의견을 받아들이건 그것은 그 작업의 주인인 학생의 몫이다.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이 그 프로젝트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끝은 학기나 학년말 과제 제출이지만, 간혹 1,2 학년 때의 프로젝트를 3학년 졸업작업으로 진행시키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거나 한계에 부딪혀 그만 두는 단계가 그들이 보는 그 끝이다.
실상 이 곳의 교육의 주체, 모든 교육기관의 이상향 혹은 슬로건은  ‘학생’이다. 또한 영국은 아트와 디자인 BA 과정 학생도 보통 8,000자에서 10,000자 정도의 길이의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 한국에서는 조금은 간과되는 현실이자만, 이곳은 한 디자이너의 아트 워크나 만들어 내는 능력만큼 그것을 문화적이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디자이너의 지식 수준와 theory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 어마어마한 괴물을 처리한다고 칼럼 연재의 시작이 늦어지기도 했다. )

파운데이션 과정과 학사과정 말고도 Foundation Degree라는 2년 과정이 있다.
굳이 한국식으로 생각을 하자면 전문대학 과정과 비슷한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에 중심을  두고 그 분야의 범위와 정의를 새롭게 하기 위한 실험을 강조하는 이곳의 BA와 비교 해 봤을 때, 작업이나 교육스타일로 보자면 vocational school에 가깝다.
즉, 졸업 후 곧장 새내기 디자이너로도 손색 없을 정도의 학생을 양성하는 것이 이 과정의 주 목적인 만큼 과제나 수업도 많고 기술-프로그램 익히기 같은 수업- 에 중심을 둔 수업도 있다.


이에 반해 BA는 자기가 필요한 컴퓨터나 아트 기술이 필요하면 학교의 bolt-on이라는 과외의 수업을 스스로 신청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을 2년 마치고 BA로 편입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우수한 학생의 경우 3학년으로 진급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BA 2학년을 다시 해야 한다.
같은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라고 해도 작업이나 수업스타일이 완전 다르기 때문에 편입한 이후에 힘들어하거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하고 혼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동기가 부족한 사람의 경우에게 이 과정으로 유학을 와서 과정을 마친 다음 BA 3학년으로 편입하거나 MA로(매우 우수한…) 시험을 볼 기회를 가지는 것을 추천하는 바다.



요즘 부쩍 들어 디자인 석사 과정의 유학생들이 많이 늘었다. 한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의 경우 10%가 한국사람인 곳도 있었다. 영국 MA의 장점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석사 학위를 위해 2년이 소요되는 반면 1년 풀코스로 마스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지만, 현지의 전반적인 추세가 MA 과정을 2년으로 늘이는 것이기에, 만약 1년 석사 과정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2배의 시간으로 길어지기 전에 (실제로는 45주 과정이 60주로 조금 늘어나는 것이지만 학사와 같은 학사년도 운영으로 30주씩 2년을 공부 해야 한다. 그만큼 체류비용과 소요시간이 더 들게 된다.) 빨리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MA 과정은 보통 입학 심사 조건에 3년 이상의 동일 직종의 직장경험을 가진 사람을 우선으로 하거나 선호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Postgraduate으로 입학가능하다.(한국 말로는 다 똑같은 석사이지만) 보통 BA를 바로 졸업한 학생들이 이 과정으로 진급하거나 취업을 한다. MA의 경우 각 과정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다기 보다는 정말 80% 이상 개인에 따라 그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학교의 같은 코스라도 해마다 졸업 전시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그 말은 BA 코스보다 더욱 Self-study에 중심을 둘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 역시 대부분 졸업논문 심사가 있고, 그것을 통과한 다음에서야 학위가 나온다. 또한 석사과정의 유학생인 경우 많은 학교가 IELTS 7.0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높은 디자인 지식만큼 영어실력 또한 중요하다. 꼭 입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에 자신이 없을 경우, 늘 무엇인가 언어 때문에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각 학교마다 특성에 따른 단기 코스도 있다. 보통 1년 정도 길이인데,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어학연수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코스를 적극 추천한다. 어학연수보다 더 많이 영국이나 유럽인들을 접할 기회도 많아 영어도 늘일 수 있고, 더욱 더 좋은 곳은 이것을 수료하면 ‘증’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해듣기에는 어학연수를 위한 현지 학원비도 만만치 않다고 하고 또 그곳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나면 영어공부를 한‘증’을 갖게 되는데, 이것보다는 자신의 커리어에도 도움되고 조금은 더 모험적인 영국 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만약 비슷한 분야의 숏코스를 듣게 된다면 그리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눈치껏 기본기로 위기를 모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또, 이 과정을 끝내고 다른 Degree과정으로 입학하게 된다면 막 한국에서 날아와서 시작하는 사람들보다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지금 런던에서의 디자인 교육의 추세는 기존의 정의에 대한 물음과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의 연장이다. 그래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이곳에서 만큼은 닭과 달걀 사이의 시간과 노력이 정답이다.
 과정이란 꼭 발상 자체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브리프를 받아 들고 난 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과정에 속한다. 특히 마지막 크리틱을 끝내고 난 뒤에도 그 과정은 계속 된다. 이곳의 학생들은 많은 실험을 하고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한다. 꼭 그것이 의도한 방향과 주제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도 시도해보고 아트 및 디자인 과정에서 최고의 교육 목표로 생각하는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정말로 하는 중이다.
친구들 때문에 파이널 크리틱이 있는 날은 언제나 부푼 기대를 안고 학교로 향하곤 한다.
아무리 평범한 발상이라 할 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많은 이미지 실험과 운이 좋아 해피 액시던트도 덤으로 얻게 되면 정말 말 그대로 기발한 결과물을 얻게 된다. 일단 졸업전시를 제외한 일반적인 학기 과정 중 결과물이 깨끗하거나 상업적인 완벽한 모습을 가질 필요는 우선은 없다. 아직 모두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_황현빈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Typography and Graphic Design 3rd year student
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 Communication Design 3years program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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