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연 뉴욕통신원 | 2007-02-13
AIGA(the American Institute of Graphic Arts, 미국 그래픽 디자인 협회)는 1914년에 설립된 가장 역사가 깊고, 많은 회원 수를 가지고 있는 미국 디자인 단체이다. 미 전역의 18,000명 이상의 디자이너들과 200개 이상의 학교가 AIGA에 가입해 있다. 미 전역에 50개의 지부를 가지고 있고, 본부는 뉴욕에 두고 있다.
매년 AIGA에서는 ‘365’라는 올해의 디자인 상을 선정해 발표한다. (365:AIGA ANNUAL DESIGN COMPETIOTNS). 지난 해 말 ‘365:AIGA ANNUAL DESIGN COMPETIOTNS 27’에서는 2005년도에 선보인 4,500점 이상의 시각디자인 참가작 중 79개의 뛰어난 작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디자인을 어떻게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선정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이들을 위해, 기획자 가브리엘라 미렌스키(Gabriela Mirensky)씨는 서문에서 ‘심사위원의 개인적인 미적 취향이 심사에 반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는 이와 명확하게 소통하고 디자이너가 의도한 바를 이끌어내는 효과적인 디자인의 목적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작품을 보고 나서야 ‘아~’하고 알게 되는 순간’ 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한다.
효과적인 디자인은 창의적인 것은 물론이요, 기술, 경험, 직관과 훈련의 과정을 통한 결과물이다. 제이크 바톤(Jake Barton)외 11명의 심사위원들은 각 작품의 내용, 목적, 수단, 성과, 관객의 반응 등을 고려하였다고 한다. 심사기준이 미적인 평가와 함께 효과적인 소통에 중점으로 두었음을 알 수 있다.
5번가에 위치한 AIGA 뉴욕 갤러리에서 2월 말까지 전시중 이며, 일부 작품은 콜로라도 주의 덴버 아트 뮤지엄에 소장 될 예정이다. 매년 수상작을 모아 같은 이름의 책(365)을 발간하며, 가상 갤러리(http://designarchives.aiga.org/)에서도 수상작을 감상할 수 있다.
취재ㅣ홍서연(shineart@hotmail.com) 뉴욕통신원
AIGA 뉴욕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과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전시장 풍경에, 단순히 79개의 디자인 작품들을 단순히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이번 전시 자체를 디자인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의 한 벽면에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 칠판에 붙여 있고, 색색가지의 분필로 칠판 한 가득 낙서가 되어 있었다. 마치 실제로도 학교 휴식시간마다 칠판에 가득 낙서를 했을 것만도 같은 디자이너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할까. 공식으로 표현한 이 전시의 제목이 4500개의 참가작을 분해하여 나온 79개의 선정작이 365: AIGA Annual Design Exhibition 27이라니, 그럴 듯 해 보이는 공식이다.
반대편 벽에는 화학 원소기호처럼 이번 전시의 정보를 시각화 하였는데, 총 8개의 항목(Category)으로 Ca 1. 브랜드와 아이덴티티 시스템 디자인, Ca 2. 기업이미지 통합 디자인, Ca 3. 잡지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Ca 4.체험디자인(Experience Design, 이 항목에서는 전시디자인과 웹디자인을 포함 하고 있음), Ca 5. 정보 디자인, Ca 6. 패키지 디자인, Ca 7. 프로모션 디자인과 광고, Ca 8. 타이포그래피 로 나뉘어져 있다. 각 테이블마다 놓인 비커와 유리수조, 막대 등은 과학 실험실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 안에는 8가지 다른 색으로 채워져 있어져 있어 테이블마다 분리가 잘 되어져 있었다. AIGA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아트(잡지) 애뉴얼에서도 중복 선정된 작품들이 몇 점 포함되었고, 작품이 많은 관계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작업을 할 때 고려해야 볼만한 5가지 항목으로 분류해 소개해 보겠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그러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디자인은 다른 것과는 차별 된 독특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할 때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 잡을 수 있다. 그 제안은 때로는 기존의 그래픽 시스템을 보다 유동적으로 응용하기도, 전형으로 자리잡은 디자인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가 아니라, 이해가 가능한 디자인이라야 할 때라야 되겠다.
Walker Expanded: 워커 아트 센터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다. 기존의 아이덴티티의 개념은 고정된 그래픽 형태를 가지는데 반해,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인 그래픽이 통일 된 느낌을 갖고 있기에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읽히는데 무리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각 전시의 성격에 따라 적용이 가능하기에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Paprika Stationery: 파프리카는 그래픽 디자인 회사로 명함 및 서식류 디자인을 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그들 회사 정보를 가지고 바코드와 같은 느낌의 그래픽 패턴을 만들어냈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일부러 불필요한 그래픽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MTV 2: 힙합과 락을 사랑하는 젊은 시청자들은 MTV2가 단순히 MTV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그러한 평가를 피하기 위해 MTV2에서는 조금 더 신선하고, 강한 아이덴티티가 필요했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개는 파격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한 MTV2 의 성격을 잘나타내주고 있다. MTV 2의 타겟 연령층이 젊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들의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0 Cane Rum: 주황색 라벨 밑에 보이는 일러스트는 전통적인 양주병 패키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키지이나, 다소 엉뚱해 보이기도 한 사선으로 붙여진 라벨은 심플함과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고객들에게 쉽게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디자인으로서 전통적인 느낌과 현대적인 느낌의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디자인은 미적인 아름다움도 충족시켜야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개선해야 효과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주변 어르신들이 제품설명서에 글이 작아서 안 보인다는 불평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생활 속의 불편을 디자인 아이디어로 활용한 예를 살펴보자.
Target ClearRx: 데보라 애들러(Deborh Adler)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약을 혼돈하여 드시는 것을 보고, 그 문제점을 바로 실생활에 적용 해 약병의 라벨디자인을 새로 디자인했다. 사실 노인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빼 곡하게 약병 뒤에 적혀있는 설명서를 쉽게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료 및 정보 수집 단계에서 무려 60%의 미국인들이 약을 제대로 복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자는 커졌고,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하여 상단에는 가장 중요한 약품의 이름을 하단에는 약품의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다. 뒤쪽에 반듯이 알아야 할 주의사항이 간단하게 나와있고, 더 자세한 약품의 설명은 하늘색 텍을 잡아 빼면 나와있다. 어린이가 쉽게 열 수 없도록 디자인된 뚜껑(Child Safety Cap)은 확실한 칼라코딩으로 한 눈에 어떤 약인지 알아볼 수 있게 한 것 또한 이 디자인의 강점이다.
우리는 도처에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정보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테이션 디자이너의 임무이다.
획일화된 디자인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사실은 당신만을 위해 디자인 된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당신만을 위해 이것이 디자인 되었다는 친밀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러스트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일본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듯한 디자인도 찾아 볼 수 있었다.
Good Day Cafe: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와 갓 구운 빵을 즐기는 컨셉을 보는 즉시 느낄 수 있는 로고이다. 일러스트의 사용으로 로고에 맛과 향을 더해주고 있다.
Michael Austin: 이러한 와인 패키지가 진열장에 꽂혀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손 맛이 나는 이러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와인병은 젊은 소비자층에게 어필할 것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의 패키지 디자인과 더불어 다소 장난스러운듯한 이름들(High Flyer;
높이 나는 비행기, Grape Tamer; 포도 조련사(Tamer는 보통 야수를 길들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Moral Compass; 도덕적 잣대, Bad Habit; 나쁜 습관)은 소비자들에게 선택하는 즐거움을 준다.
Kimono Rose: 새로운 향수 프로모션 패키지로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봄을 연상시키는 하늘하늘 거리는 느낌의 디자인이다. 특히, 패키지의 여닫는 방식이 일본식 종이 접기를 연상시키게끔 디자인 되어 있다.
Pangea Organics: 달걀 케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비누 패키지를 비롯한 35가지의 제품 패키지는 모두 100%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만든 ‘지속가능한 (Sustainable) 디자인’ 제품이다. 심플한 일러스트는 손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군을 분리하는 동시에, 전체로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통합하고 있다.
미국 디자인의 경향이라고 까지 말할 건 없지만, 이곳의 디자이너들이 늘 열광하는 것은 군더더기 없는 타이포그래피의 간결함이다. 이 간결함은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말하는 것으로, 타이포그래피의 기본인 ‘자간’, ‘여백’, ‘전체적인 레이아웃의 균형’ 등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이러한 기본기를 무시하거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의 기본사항인 ‘이미지와 여백과의 관계’ 등은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Commissaires, Poster: 캐나다 몬트레올에 위치한 갤러리의 ‘“Quelques designers des Pays¬Bas”(네델란드에서 온 디자이너들) 전시 오프닝 홍보용 포스터이다. 의자 디자이너인 마틴 바스(Martin Bass)의 작업 중의 일부분을 타이포그래피로 채워 넣어 군더더기 없는 전시 홍보용 포스터를 만들었다. 오른편 하단으로 약간 사선으로 놓여져 있는 한 줄은 의자와 균형을 잘 맞추고 있어, 시각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Commissaires, Poster: 같은 갤러리의 두 번째 전시를 위한 VIP 초청장이다. 검은 티슈
종이에 실크 스크린 인쇄 방식으로 검은 종이에 검은 글씨로 되어있어, 강하면서도 동시에 조용한 느낌이 든다. 눈에 띄기 위해 과도하게 덧칠 되고 있는 요즘의 많은이미지물 들 중에서, 오히려 검은색의 어두움이 호소력을 지닌다. 종이의 재질이 티슈페이퍼라 손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불빛에 반사해서 글을 읽어보는 재미를 가져다 준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는 그래픽 작업의 1/3은 ‘자신을 위한 작업’, 1/3은 ‘기업을 위한 작업’, 나머지 1/3은 ‘공공을 위한 작업’ 으로 균형을 맞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그래픽디자이너가 영혼을 잃지 않고 작업하는 법’(How to be a graphic designer, without losing your soul)이란 책이 나온 것 처럼,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제품을 생산해 내고 홍보하는 최전방에 서있는 디자이너로서 양심과 개인의 철학을 갖고 항상 작업하기란 여간해서 쉬운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스타일에만 신경쓴다고 말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수의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The Hurricane Poster Project: 이 포스터는 태풍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한 성금 모금행사의 일환으로, 같은 이름의 웹사이트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포스터를 판매했다. 판매한 수익금은 전부 미국 적십자 협회에 전달되었다. 이 포스터는 간단한 일러스트를 이용해 시적인 방법으로 재해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다.
Tsunami: A Document of Devastation: 또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큰 재해로 ‘쓰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료의 포맷은 보통 사이즈보다 크게 디자인되었고, 종이들은 제본되지 않고 낱장으로 포개져 있어 말아서 통 속에 넣어 보관하도록 되어있다. 이 자료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전달되어, 쓰나미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배포되었다.
AIGA에서 선정한 디자인작업을 직접 만져보고 보는 것은,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에게는 물론 현직 디자이너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AIGA는 미국 디자이너들 간의 교류, 디자이너와 학생들의 교류에 더 큰 역할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매달 열리는 컨퍼런스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디자인 화두를 던진다. ‘지속가능한 디자인’, ‘왜 디자인에 있어서 상호작용이 중요한가’, ‘패션이 그래픽과 만났을때’ 등 온라인 상에서도 그들의 비젼을 공유하고 토론해가면서, 그들만의 견고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의 수가 미국 디자이너 다음으로 많다는 기사를 언제가 읽은 기억이 난다.
단순히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이 많은 디자이너들 간의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를 복돋아 줄 수 있는 협력관계 또한 디자인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