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
‘올레(Olleh)’라는 경쾌한 구호로 친숙한 통신기업 KT. 지난 2009년 기업의 핵심 전략으로 ‘디자인경영’을 내세운 이후 그들의 디자인 행보는 CI, BI, 기업서체 등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비롯하여 올레스퀘어 같은 공간 아이덴티티까지 쉴 틈 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최근, 그들은 또 하나의 디자인경영 적용 사례 발표로 세간의 주목을 이끌었다. 비주얼과 공간에 이어 이번 주인공은 ‘제품’이었다. KT 제품들에 일관된 디자인을 입혀 브랜드 이미지 효과를 높이고자 한 프로덕트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 PI)를 발표한 것이다. 통신업체의 제품이라야 모뎀, 허브 등 어떻게 보면 사용자들에게는 비주류의 디바이스일텐데, 여기에 공격적인 디자인경영을 적용했다니. 사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그 이야기를 KT 디자인정책팀 강수연 선임디자이너로부터 들어본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KT
KT Product Identity
KT의 PI(Product Identity)는 지난 2009년부터 기업이 추구해온 디자인경영의 실체적 결과물 중 하나다. 모뎀, 셋톱박스, 위성안테나, 중계기 등 56종에 달하는 KT의 디바이스들에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디자인을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고객들이 KT의 어떤 디바이스를 보더라도 바로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KT 브랜드 이미지를 선호하게끔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주요 디바이스인 모뎀, 셋톱박스, 리모컨, 홈허브 4종의 디자인은 상용화 단계에 있다. 또한 이외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10종의 디바이스들에 대해서는 목업(mock-up)까지는 아니더라도 렌더링 이미지로는 완성되어 있는 상태다. 이들을 바탕으로 차후 KT의 다른 디바이스들에도 지속해서 적용해 나갈 수 있도록 PI 디자인정책(가이드라인)을 구축해놓았다.
저가형 제품에 프리미엄 디자인을
KT의 제품들은 크게 판매형과 임대형으로 나눌 수 있다. 판매형은 핸드폰 같은 기기가 될 것이고, 모뎀이나 셋톱박스 등의 제품들이 임대형으로 분류된다. 이중 PI 프로젝트가 먼저 적용되는 쪽은 임대형이다. 사실 임대형 디바이스들은 그 자체의 상품화 가치는 미미한 편이다. 통신 서비스를 신청하면 함께 공급되는 것들로 돈 주고 사는 개념의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가형으로 제작하다 보니 디자인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형태 또한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스마트기기들이 늘어나면서 한 가정이 보유하게 되는 임대형 디바이스들의 숫자 또한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이 놓여지는 곳은 너저분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스마트폰, TV 등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의 디자인은 날로 발전하는 가운데, 그것들과 함께하는 저가형 임대 제품들의 디자인은 제자리 걸음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임대형 디바이스들에도 프리미엄 디자인을 적용한 이번 PI 프로젝트에는 스마트 환경 속에서 KT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드러내고자 한 의도도 담겨있다. 프리미엄 디자인을 통해 숨기고 싶은 통신기기가 아닌 꺼내놓고 싶은 통신기기로 소비자 인식을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통신기업이 제품디자인으로 브랜딩 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꽤나 발칙한 도전이었다.
디자인의 중심은 소비자
PI 프로젝트에서 특히 중요시 했던 과정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니즈(needs) 파악이었다. 때문에 소비자인사이트(Customer Insight) 발굴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이었다. 이를 위해 일반고객뿐만 아니라 설치기사들도 대상에 포함된 꼼꼼한 조사와 분석이 이뤄졌고, 몇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소비자들이 IT기기들의 천편일률적인 하이테크적 이미지에 싫증을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PI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성능은 하이테크지만 디자인은 친근감 있는 디테크(de-tech)적 제품으로 공간 인테리어와 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셋톱박스, 모뎀, 홈허브 이 세가지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주목했다. 때문에 PI가 일차적용 된 것도 이들 제품이었고, 세 기기를 쌓이거나 세워지는 형태로 공간에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폰에서의 화이트 컬러 선호 현상과는 달리 이들 설치기기에는 어두운 컬러(블랙)를 요구하는 성향이 강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발견이었는데, 이는 고스란히 PI의 기본 컬러로 이어졌다.
이후 PI 프로젝트는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과 KT 내 유관부서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덧붙여지며 진행되었다. 특히 작년 봄에는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인 iF, 레드닷, IDEA의 CEO들을 직접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참고로 리모컨의 경우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과 함께 사용성 조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한번 설치하면 끝나는 모뎀 같은 경우와 달리 리모컨은 매일 같이 만져지는 제품으로 보다 사용성을 좋게 하기 위한 별도의 연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올레’에서 파생된 PI 디자인
PI 프로젝트의 디자인은 KT의 BI인 ‘올레’ 로고에서 파생된다. 로고 아웃라인의 커브값을 제품 크기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로고의 일정부분을 제품에 투영시켜 일관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올레’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제품 외관뿐만 아니라 전원버튼, 네비게이션 키, 아이콘 등 제품을 구성하는 디테일한 요소들 역시 서로 동일한 디자인을 적용시켰다.
이번 PI 프로젝트는 제품만이 아니라 패키지 디자인에도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 소비자인사이트를 위해 가정을 방문하면 스마트기기들이 놓인 주변이 전선으로 인해 상당히 지저분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를 패키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설치기사가 KT 제품을 가정에 설치한 뒤, 패키지를 활용해 전선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고객 만족도가 높은 아이디어였다. 전선정리가 필요 없으면 패키지를 수납함으로도 사용 할 수 있다.
이번 PI 프로젝트로만 글로벌 어워드에서 6개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제품디자인에서 브로셔, 컨셉, 패키지까지 그야말로 PI 프로젝트 전 분야가 디자인적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패키지의 경우 레드닷에서 전체 출품작 1%에게만 수여되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통신기업에서는 최초의 수상사례라고 한다.
KT 디자인경영과 디자인정책팀
디자인정책팀은 KT의 모든 디자인의 정책(가이드)을 수립, 배포하고, 완성된 표현물들에 대한 관리를 맡아 하는 곳이다. KT 디자인경영의 모토가 사용자들이 ‘올레스러움’을 인지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그 전략을 짜내는 팀이라고 보면 된다. ‘올레스러움’은 혁신적이고,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KT의 브랜드 이미지이기도 하다. 디자인정책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CI, BI, SI (Space Identity), 그리고 이번 PI등 KT의 토탈 아이덴티티(Total Identity)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