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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리뷰

개념 아닌 디자인이 답

2015-10-23


쓰레기가 너무 많다. 사무실에서도, 가정에서도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식상하고 탐탁지 않은 표현이지만 지구는 몸살을 앓고 죽어간다. 과거에 비해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만큼 물건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또 버려진다. ‘패피’까진 아니더라도 빠지지 않게 옷을 입으려면 유행을 무시할 수 없고 고장 나진 않았지만 새로운 기기가 탄생하면 바꿔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버려지는, 너무 많은 것들
더 이상 분리수거가 문제가 아니다. 버려지는 많은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으고 분류된 쓰레기들을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시스템이 됐다. 이젠 재활용품들이 새로운 원료로 재생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또 다른 오염과 비용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해야 한다. 애초에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첫 번째 재료의 생성에서 발생되는 에너지와 비용보다 재활용 과정에서 더 큰 소모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소모의 과정을 거쳤든 기껏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물건들 중에는 찰나의 사용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아예 포장조차 벗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폐기처분 되는 경우도 있다.

‘버리는’ 행위는 싼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더 쉽고 별것 아닌 일이 됐다. 플라스틱 조각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액세서리, 어떠한 실과 원단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옷과 신발들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로 하여금 쉽게 지갑을 열게 한다. SPA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쇼핑이 부담 없어지고 편리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패스트패션’이라는 이름답게 빨리 나왔다 빨리 사라지는(폐기처분되는) 패션아이템들은 그들의 운명을, 이 지구의 처지를 참으로 안쓰럽게 만든다.  


개념만으론 부족한 업사이클링 디자인
업사이클링은 수명이 다한, 쓰임을 다하고 폐기처분을 앞둔 물건들에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키는 작업이다. 그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졌지만 ‘에코백’만큼 친하진 않다. 물론 에코백이 또 다른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우려를 낳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다는 사실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쨌든 업사이클링이 에코백 만큼이나 대중들과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업사이클링의 취지는 무엇보다 환경적으로 큰 손실을 일으키는 불필요한 것, 너무 많은 것들의 생산 혹은 재생산을 조금이라도 막아보자는 것이다. 업사이클링을 생활화하려면 업사이클링을 몸소 체험하고 ‘좋음’을 느껴야 한다. 에코백은 저렴한 제작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어 체험을 유도했지만 업사이클링 디자인 제품은 다르다. 제작 과정과 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업사이클링을 표방하고 나섰다가 오래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업사이클링을 지키고 업사이클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시각적, 운영적 측면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탄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업사이클링 디자인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버려진 것들, 버려질 것들, 냉정하게 말하면 쓰레기, 좋게 말하면 재활용품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스스로 변화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개념과 인식도 변화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여지는 비쥬얼적인 결과들이다. ‘에코’, ‘친환경’이라는 개념보다 디자인을 먼저 보여주는, 업사이클링도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업사이클링
우리나라엔 2000년도 중후반부터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코파티메아리는 국내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시초라 할 수 있다. 2006년 아름다운 가게에 소속된 재활용 디자인 사업부로 첫 선을 보인 후 2007년 출범했다. 2008년 터치포굿, 리블랭크가 각각 론칭했고 이후 업사이클링 디자인 기업이 하나둘 생겨났다. 업사이클링 브랜드들이 론칭 이후 모두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활동을 줄이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는 아니지만 다른 디자인 활동으로 갈아탄 기업도 있다. 대부분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경제적인 문제들 때문일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자선사업은 아니니까 말이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지금은 다시 신생업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도 생겼다. 국내 업사이클 산업과 이 분야 전문 디자이너들의 발전을 위해 창단됐으며 현재 20개의 브랜드가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환경부 등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7년 성동구에 서울재사용플라자를, 장안평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업사이클 타운을 조성해 업사이클에 관심이 있는 젊은 예술가와 사회적기업이 입주, 제품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업사이클링 관련된 전시와 각종 프로젝트, 행사도 많아졌다. 2010년 아트업페스티벌, 업사이클 공모전과 업사이클링페어를 개최됐으며 이후 각종 업사이클링 전시회와 공모전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10월 초 현대백화점에서도 업사이클링 전시회가 열렸고 여수엑스포 업사이클링 페스티벌, 2015 청계천 업사이클 페스티벌 류가 진행됐다. 롯데백화점 갤러리 또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전시를 열고 있으며 지난 6월 개관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클래스를 운영, 입주작가를 모집하기도 했다.  


디자인 vs 디자인
예전엔 버려진 옷이나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정도가 다였는데 이제 업사이클링은 그 분야도,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가방, 지갑, 열쇠고리 등은 물론 옷과 신발,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의 액세서리, 가구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에 공간까지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대상이 다양화됐다고 해서 업사이클링이 살아남을 확률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디자인’이 관건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사이클링 디자인 브랜드는 독특한 자신들만의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업사이클링을 대표하는 스위스의 ‘프라이탁(freitag)’은 1993년에 탄생, 타폴린이라는 트럭 덮개와 자동차의 안전벨트, 자전거의 폐타이어를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사실 프라이탁의 마커스와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비에 젖은 어느 날 비에 젖지 않는 메신저백을 고안하다 프라이탁을 탄생시켰는데 업사이클링이라는 사실보다 원색적이고 빈티지한 프라이탁의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던 것도 이러한 이들의 디자인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 때문으로 여겨진다.  


프라이탁을 롤모델로 2008년 론칭한 ‘리블랭크(reblank)’도 타폴린을 사용한다. 하나같이 다른 디자인도 독특하지만 타폴린 특유의 소재감이 주는 느낌과 색감, 전체적인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버려지는 가죽을 가지고 만든 제품도 선보인다. ‘프롬’도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타폴린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타폴린과 안전벨트로 배낭, 노트북 가방 등의 각종 가방을 만든다. ‘컬트백(kult bag)’은 1996년에 만들어진 독일 브랜드로 타폴린이나 에어백, 소파 천 등의 소재를 그대로 살려 제품을 만든다.


영국의 ‘엘비스 앤 크레세(ELVIS & KRESSE)’는 영국 소방단의 fire horse로 제품을 만든다. 이들이 사용하는 소방호스는 “25년 이상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제 할 일을 다 한 것들이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소방호스의 소재로 인해 내구성이 뛰어나다. 영국 소방단체로부터 호스를 공급받으며 제품의 이익 중 50%는 소방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부상을 당하거나 순직한 소방관을 지원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글로브 호프(Globe Hope)’는 핀란드 업사이클링 업계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디자이너 세이아 루깔라(Seija Lukkala)가 10년 넘게 패션 업계에서 일하면서 유행에 따라 빨리, 생산과 폐기의 반복, 또 너무 쉽게 제품들을 버리는 것에 질려 2001년에 아이디어를 냈고 2003년 첫 제품으로 론칭했다. ‘글로베 호프’라는 단어는 ‘재활용 제품 사용을 통해 불필요한 제품들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들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자’는 이상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이미 한번 사용된 옷감이나 헌 물건, 남은 재료들로 옷이나 액세서리를 만들며 모든 제품에 물품의 원재료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태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정키 스타일링(junky styling)'은 헌옷을 새옷으로 만드는 브랜드로 소꿉친구였던 두 친구가 자신들의 옷을 고쳐 입다가 빈티지 부띠크를 차린 것이 시초가 됐다.


이탈리아 핸드백 브랜드 ‘모마보마(momaboma)’는 마우리치오 롱가티(Maurizio Longati)가 인도여행 중에 보았던 시멘트 포대에서 영감을 받아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오래된 잡지와 신문을 사용하면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주재료로 가죽을 사용하고 소비자의 사진이나 편지 등을 가지고 단 한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가방제작을 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내 브랜드 ‘슬로우바이쌈지’는 버려진 신문지를 코팅하고 건조해 직접 소재를 개발, 가방과 지갑류를 만들어 선보였다.

업사이클링은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앤드디파트먼트(The end department)’는 버려진 가구들을 이용해 새로운 가구를 만드는 일본의 업사이클링 가구브랜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업사이클링 브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에코와 데코레이션의 합성어인 ‘에코레이션’은 업사이클링 가구와 친환경적인 데코레이션, 친환경적 재료의 아이템들의 조합으로 최근에는 공간에 에코레이션을 적용시키는 시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종로구에 위치한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의 옥상 정원은 업사이클링 가구와 소품으로 공간이 꾸며진, 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해서 만든 의미 있는 공간이다.
도시 자체를 업사이클링 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해 공공적인 변화를 이끌고 사람들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버려진 것을 다시 활용하고 살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오래도록 버리고 싶지 않을 만큼 예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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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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