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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홍대앞은 열일곱 색깔 무지개야.

2005-12-14


‘홍대앞’은 이제 단순히 ‘홍익대학교 앞’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홍익대학교 앞이라는 특수성과 이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특유의 문화는 이제 ‘홍대앞’이라는 세 글자에 자유로운 분위기와 여기에 어울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투영하고 있다.
하지만, 홍대앞은 어떤 특정의 단어나 이론으로 규정 짓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홍대앞이라는 공간 자체가 일상적이지만 일탈적이고, 틈이 있지만 폐쇄적이고, 자유롭지만 나름대로의 틀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책 ‘홍대앞으로 와!’는 이러한 홍대의 문화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수천 만 번은 반복되었을 이 말이 지금의 홍대앞을 만들어 냈듯, 이 책은 그렇게 홍대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글자로, 사진으로,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열일곱 명의 필자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홍대앞 이야기를 서슴없이 드러냈고, 열일곱 편의 글을 담고 있는 책은 열일곱 빛깔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일사분란 하면서도 통일성을 갖춘, 자유로우면서도 정확하게 의도가 담긴 책, ‘홍대앞으로 와!’를 들여다보자.

취재 | 김유진 기자 (egkim@jungle.co.kr)

‘홍대앞으로 와!’는 홍대앞 관해서 이야기하지만, ‘홍대 문화’를 언급하면서 거창하게 문화이론을 들먹이자는 책은 아니다.
애초 홍대앞, 홍대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기획의도는 이론적인 접근이 아닌 실로 홍대에 오랫동안 거주하거나, 홍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방법으로 실현되었다.
홍대앞에 대한 이야기는 하되, 홍대문화가 정의 내려지는 것은 경계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책을 기획한 바이북스의 이혜경 편집주간은 기획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홍대에서는 일상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나는 장소죠. 그래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다양하게 분출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홍대가 뽑아내는 에너지의 원천을 정확하게 딱 규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7명의 필자들이 마치 숨을 쉬듯 겪은 홍대앞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디자인의 방향은 열일곱 명의 필자가 쓴 무형식의 글을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게 하자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포커스는 내지디자인으로 맞춰졌다.
그래서 열일곱 개의 글은 저마다의 색깔과 디자인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글마다 표지를 두어 각 글의 특성을 부각시키고, 다른 글과 확연한 구분을 두었다. 이는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홍대 문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홍대앞의 색깔은 무엇일까? 푸르른 하늘색? 정열적인 느낌을 주는 빨간색?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보라색?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노란색? 모두 정답이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이 바로 홍대앞을 말하는 가장 정확한 색깔일지도 모른다.
열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글의 개성을 드러낸 ‘홍대앞으로 와!’, 그리고 내지 디자인.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서교동 365번지를 아는가? 홍대 앞 스타벅스 건너편 허름한 가게들과 상점들이 길게 늘어져있는 골목이 그곳이다.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철거가 결정된 서교동 365번지. 이곳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서교365 모임의 홍윤주씨는 이러한 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디자인은 서교 365번지의 사진을 이용하여, 현장성을 살렸는데, 내지에는 이 곳 상점들의 이미지를 길게 이어 붙여 디자인의 묘를 살렸다.

상상공장의 대표 류재현씨는 홍대앞과 관련된 기억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정리했다. 홍대 앞 사람들의 특성, 그리고 추억이 담긴 장소, 홍대앞이 주는 소소한 의미를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일상적이고 작은 이야기들의 느낌이 손과 손에 가득 그려진 주름과 손금의 이미지로 잘 표현되었다.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인 이현주씨의 글과 그림 ‘소복이’. 이 책의 글 중 유일하게 일러스트와 글로 꾸며졌다.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캐릭터를 돋보이게 한다.

권이중씨의 ‘꿈의 정원을 찾아서’는 음악이야기, 희귀음반 이야기, 홍대 앞에 쭉 늘어선 미술학원 이야기 등 홍대 앞에서 10여 년을 살아온 필자가 써내려 간 홍대 앞에 대한 단상으로 꾸며졌다. 글의 제목과 필자의 풋풋한 감성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속 표지에 예쁘게 담았다.

까페 이리에서 열린 무료공연에 출연한 뒤 강제 출국조치 당한 사토 유키에씨의 글인 ‘불가사리에게’. 자신이 이끌어온 공연인 ‘불가사리’와 홍대앞에 대한 추억을 절절하게 풀어놓았다. 이 글의 표지 디자인은 매우 신선한데, 사토 유키에씨가 일본으로 출국 조치를 당한 이후 불가사리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글과 화면을 디자인 소스로 활용해, 그대로 속 표지에 담아왔다.


그밖에,
W리더 배영준과 배영준의 자아 ‘나’와의 인터뷰 ‘놀이터의 비유를 말하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전갈과 홍대앞의 자유를 갈망하는 김용진의 ‘전갈의 우화’
10년째 클럽 프리버드를 운영해온 김버드씨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얘들아, 즐기면서 제대로 해’
스매싱 펌킨스에 대한 추억, 백정호의 ‘끝은 끝의 시작이다’
이방인으로서, 홍대 문화를 향유하는 거주자로서 홍대앞에 관한 자유로운 단상을 늘어놓은 영어강사 알렉의 ‘홍대 앞에서 하루를 걷다’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불판을 찾아 다니며, 변화한 홍대 문화에 대한 유머러스한 불평을 담은 류한길의 ‘불판을 찾아서’
음악 칼럼을 기고하는 김작가가 써내려 가는 홍대앞 ‘아지트의 역사’
전천후 아르바이트생 이제원의 홍대앞 생활에 대한 짧은 이야기 ‘바텐더의 생활’
이상 총 열일곱 가지 이야기가 제 각각의 속 표지와 함께 들어있다.

이제 책을 덮고 겉모습을 하나하나 뜯어 볼 차례다.

> 판형
책을 보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판형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신국판이나, 단순한 변형판도 아니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손에 딱 쥐고 싶게 만드는 모양과 크기다.
종이는 이라이트 80을 사용했다. 300여 페이지나 되는 책이지만, 종이가 가벼워 부담 없이 들고 다니기에 적합하다.

> 표지
기획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제목 ‘홍대앞으로 와!’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표지에는 이 제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지 컬러가 화려하기 때문에, 표지 디자인은 깔끔하고 단순하게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반영해야 했다.
결론은 타이포였다. 디자인팀의 박은화씨가 직접 쓴 이 타이포는, 먹을 연상케 하는 검정색 글씨로 강렬함을 더했다. 검정색 타이포는 노란색 바탕에 쓰여져 높은 명시도로 더 주목을 끄는데, 눈에 확 띄게 만들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적절하게 반영된 것이다.
특히 이 타이포는 방향성을 띠는데, 타이포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면서 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의도는 살아 숨쉬는 듯한 홍대앞의 분위기라든지, ‘홍대앞으로 와!’라는 생생한 구어체의 제목이 잘 전달되는 효과를 주었다.
표지만 보다가는 ‘홍대앞으로 가’ 버릴 지경이다.
재미있는 것은 방향성을 갖는 타이포가 모이는 부분이다. 표지 우측 중간으로 수렴되는 부분에는 ‘홍대문화’라는 글자가 액자 속에 들어있다. 홍대문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면서도, 본격적으로 홍대문화를 분석한다거나 이 단어 자체의 언급을 자제하는 편집 방향이, 액자 안에 넣어진 채로 표지에 명시되어있는 것이다.


내지의 컬러를 책의 측면인 내지 단면으로 이어간 점, 그리고 이 컬러의 느낌을 확장하여 측면 표지에 활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한 빛깔을 가진 홍대 문화를 드러내려는 의도다. 노란색 표지를 둘러싼 4개의 측면은 그런 한 색깔로 규정지을 수 없는 홍대의 진정한 빛깔인 것이다.

엮은이로 이름을 올린 이동준씨는 홍대에 대해 말할 꺼리가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을 시작했고, 스물 몇 명을 만나서 여러 공을 들인 끝에 열일곱 명의 필자를 모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첫째, 이쪽에서 글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은 빼자. 둘째,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여 년까지 홍대와 인연을 맺을 사람을 선정한다. 셋째, 글의 주제를 다양화 하기 위해 사람들이 속해있는 분야를 다양화 하자.
이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 중 7,80%는 비전문 필자였다. 소위 ‘글 빨’ 있는 사람들의 정형화된 내용으로 지면을 메우기 싫었고, 무의미한 홍대 예찬론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원치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홍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소소한 어려움도 있었다. 처음에 잡은 주제와 다른 글이 오기도 했고, 글을 받기 힘들어서 직접 5시간 동안 녹취를 통해 이동준씨가 직접 내용을 받아 적어 완성한 글(프리버드을 운영하고 계신 김버드씨의 ‘얘들아, 즐기면서 제대로 해’)도 있었다.
여전히 홍대 앞에 있는 사람들, 홍대가 싫어 떠난 사람들이었지만, 글을 받고 보니 대부분 홍대에 대한 아련함이 묻어있었다고 한다.


그 어떤 장소에 관한 책이 나오더라도, 이토록 애정 어린 불만과 애틋한 향수로 꾸며지기는 드물 것이다. 이 때문에, 홍대에 관한 문화 비평서보다도 이 책이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으면, 홍대를 조금은 더 알게 되어 반갑다는 마음에 앞서, 아직 부족한 홍대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뭐 어떠한가. 제목처럼 그냥 ‘홍대앞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쉽게 움직였다면 아마도 기획과 디자인과 글을 써낸 필자들의 힘일 것이다. ‘홍대앞으로 와!’ 이렇게 시작된 하루하루가 또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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